[정진상 재판] 유 "남욱이 준 돈, 김용 줬는지 내가 썼는지…"

재판장 "남욱 이전 돈 받은 거 없다며?…유 "업자에게 빌려"

유, 철거업자에게 술값 대납…고 유한기로부터 빌려 변제

검, 유에게 '진술 가이드라인' 제시…재판장 "엄중 경고"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5.1. 연합뉴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5.1. 연합뉴스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공판과 김용·정진상의 정치자금법과 뇌물 혐의 공판, 그리고 곧 본격 개시될 이재명 대표의 배임 혐의 공판 등 이재명 대표와 관련된 모든 재판은 모두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하 직함 생략)의 '입' 하나로 시작해 그의 입만 바라보고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실장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는 재판 개시 시점부터 "유동규 증언의 신빙성이 핵심"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모든 재판 때마다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에도 불분명하고 오락가락하던 유동규의 증언은 최근에 이르러 한계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소위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는 2022년 9월 26일 이전과 이후의 진술이 달라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이후의 검찰 진술도 달라진 부분이 발견되고, 검찰에서의 진술을 재판정에 와서 뒤집거나 부인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더욱이 워낙 많은 말을 내뱉다보니 이제 자기가 언제 무슨 말을 했는지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급기야 12일 공판에서는 자신의 진술을 바탕으로 기소까지 이뤄진 내용에 대해 오락가락하며 사실상 진술을 부정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변 "정진상 1천, 김용 1천 진술"…유 "기억 안나"

유동규는 검찰 조사에서 "2013년 1월 혹은 2월 설 전에 남욱으로 받은 2천만 원을 정진상과 김용에게 각각 1천만 원씩 줬다"고 진술했다. 이것은 김용 전 부원장과 정진상 전 실장의 뇌물 수수 혐의 중 첫 번째 뇌물로 기소됐다. 그런데 유동규는 12일 공판에서 "정진상에게 1천만원을 준 것은 맞는데 나머지 1천만 원은 김용을 줬는지 내가 썼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증언한 것이다. 

변호인(이하 '변') 남욱으로부터 2천만 원을 받아서 어디에 사용했습니까?

유동규(이하 '유') 일단 정진상에게 설 명절에 1천만 원 줬던 것 같고요. 나머지 1천만원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제가… 김용 줬든지 했을 겁니다. 

증인은 이 부분에 대해 검찰 진술 단계에서 1천만 원은 정진상을 주고 1천만 원은 김용을 줬다고 진술하지 않았나요?

김용 아니면 제가 썼을 겁니다. 그런데 변호사님. 제가 웬만큼 기억나는 것 외에도 수시로 돈을 갖다줬습니다. 

묻는 말에 먼저 대답해주세요.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2천만 원 중에 1천만 원은 정진상 주고 1천만 원은 김용 줬다고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은 잘 안 납니다. 

이 진술은 법정 진술에서도 확인됐습니다.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정진상에게 1천만 원을 주고, 또 김용에게 1천만 원 줬다고 진술했다고요.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진술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재판장이 직접 신문에 나섰다. 정진상 전 실장 공판의 재판장은 김용 전 부원장 사건도 함께 맡고 있다. 

재판장(이하 '재') 이와 관련해서 2013년 설 경에 별도로 1천만 원 교부했다는 취지로 별도 사건(김용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 부분이 남욱으로부터 받아서 줬는지, 줬는지 아닌지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건가요?

제가 줬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100% 그 시점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80%는 준 것 같은데 20%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2023.5.11. 연합뉴스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2023.5.11. 연합뉴스

재판장 "남욱 이전 돈 받은 거 없다며?…유 "업자에게 빌려"

직접 질문에 나선 재판장은 그와 관련한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질문을 이어갔다. 유동규는 검찰 주신문에서 "업자들에게 돈을 받은 것은 2013년 설 무렵이 처음이고 그 이전에는 업자들에게 돈을 받은 적이 없다", "2013년 설 이전에도 정진상에게 명절 떡값을 계속 줘왔다"고 진술했다. 재판장은 이 부분에 대해 물었다. 그때부터 유동규의 진술은 본격적으로 산으로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2013년 1~2월 경에 남욱이 처음 2천만 원을 갖다줬고 이전에 돈 받은 적은 없다고 했죠? 그런데 이전에 지중해나 킹콩을 가서 술값을 몇천씩 지출했는데 이 돈은 어디서 나온 건가요?

빌려서도 내고, 집 팔아서 4천만 원 정도 만들어서 갚고 했습니다. 

그리고 증인은 정진상 피고인에게 이른바 명절 떡값으로 준 돈이 2013년 설 무렵에 1천만 원이 있지만, 그전에도 계속 줬고, 많이 준 것은 500만 원씩은 갖다줬다는 취지로 이 법정에서 진술했습니다. 그때 500만 원씩 줄 때는 누구로부터 돈을 받아서 준 겁니까?

(머뭇) 대출받은 것도 있고, 어떻게든 가급적 만들어 줬습니다. 

그런데 증인은 2013년 1월 경 혹은 2012년부터라도 대장동 위례 업자 외에 다른 민간업자들로부터 상납이나 돈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이잖아요. 

네. 그런데 빌린 돈은 있습니다. 나중에 다 갚았습니다. 그때 유한기에게 1억을 빌린 적이 있습니다. 

(못 미더운 표정으로)빌린 돈으로 떡값을 줬다는 건가요?

네. 1억 빌려서 갚고, 술값도 갚고, 남은 돈 있으면 (정진상에게) 주고…

이때부터 법정에 제출된 검찰 신문조서와 공판 진술에서는 그동안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얘기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한다. 유한기 씨는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으로 대장동 수사를 받던 중 영장실질심사를 나흘 앞둔 2021년 12월 10일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실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2023.5.11. 연합뉴스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실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2023.5.11. 연합뉴스

유, 철거업자에게 술값 대납…고 유한기로부터 빌려 변제

유한기 전 본부장은 성남도개공 설립 당시 유동규가 직접 영입한 인물로서, 검찰 수사 당시 유한기 전 본부장은 유동규와의 금전 수수 건에 대해 심하게 추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에 대해 사건 관련자들은 알고 있었지만 외부에 알려진 적이 없다. 검찰이 밝힌 적도 없고 검찰 조서에도 고 유한기 씨는 단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유동규가 느닷없이 얘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의미있는 진술을 하셨는데, 유한기 본부장으로부터 1억 원을 빌리셨나요?

네.

지금 이 돈을 누군가의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유한기로부터 1억을 빌려서 변제했다고 하셨잖아요. 

4천인가…

누구한테 빌리셨나요?

친구…

친구 누구?

철거하는 회사…

철거업자입니까?

네. 정진상도 알고 있습니다. 

이 철거업자는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가요?

사회에서 만나게 된 건데 (정진상과 김용의) 술값 때문에 고민을 털어놓으니까 대납해주겠다고 하면서 성남에 있는 철거 나오는 것 있으면 달라고 요청했고, 제가 정진상에게 그 철거 좀 해줄 수 있냐고 해서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술값을 대납해줬는데 정진상이 나중에 그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 친구가 9천을 요구했습니다. 그때 유한기에게 1억을 빌려서 그걸 변제해줬습니다. 

유동규는 "김용과 정진상이 유흥주점에서 술을 먹고 나서 내 이름으로 외상을 달아놔 그게 4천에서 6천 정도가 됐다"고 여러 번 주장해왔다. 물론 김 전 부원장과 정 전 실장 측은 "택도 없는 소리"라고 부인하고 있다. 그런 일도 없었거니와 당시 김 전 본부장과 정 전 실장이 유동규와 관련해서 갔던 주점이 그 정도 큰 돈이 나올 정도의 형태와 규모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유동규는 검찰 조사에서 "2013년 1~2월 남욱이 2천만 원을 주길래 그걸 김용과 정진상에게 1천만 원씩 줬다"고 진술했다가, 법정에서는 기소까지 이뤄진 김용 건에 대해 "김용을 줬는지 내가 썼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변해 검찰을 뜨악하게 만들더니, 남욱으로부터 돈을 받기 전에는 업자들에게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가, 빌려서 주기도 했다고 하더니, 유한기 전 본부장에게 1억을 빌린 얘기가 나오고, 그 이전에 철거업자로부터 술값을 대납받은 얘기까지 나온 것이다. 유동규는 또한 집을 팔아서 술값을 갚기도 했다는 말도 했다. 

즉, 소위 '명절 떡값'에 대해 묻는데, 갑자기 밀린 술값 갚는 얘기로 가버리더니 , 철거업자로부터 청탁성 돈을 받고, 수사 중 사망한 유한기 전 본부장으로부터 거액을 빌렸던 사실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12일 열린 정진상 전 실장에 대한 뇌물 사건 공판에서 검찰은 유동규의 오락가락 진술이 극에 달하자 진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다가 재판장으로부터 엄중한 경고를 받았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12일 열린 정진상 전 실장에 대한 뇌물 사건 공판에서 검찰은 유동규의 오락가락 진술이 극에 달하자 진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다가 재판장으로부터 엄중한 경고를 받았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검, '진술 가이드라인' 제시…재판장으로부터 '엄중 경고'

이런 핵폭탄급 진술이 나오기 전, 유동규는 오전 공판에서도 검찰 조서에 기재된 진술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그렇게 말하지 않은 것 같다" 혹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등의 답변으로 진술 자체를 부인하고, "네,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것도 뭐든 장황하게 설명을 하려 들고, 늘 그랬듯 전혀 관계없는 얘기를 늘어놓기도 해 변호인들과 여러 번 고성을 주고받는 충돌이 벌어졌다.  

검찰 또한 수시로 변호인의 질문을 가로막고 유동규의 역성을 들어 정진상 실장 측 변호인이  "검사가 유동규 변호인이냐"고 항의를 하기도 했다. 재판장은 여러 번 유동규를 달래듯이 "질문을 잘 듣고 묻는 내용에 대해 답변을 하고, 너무 장황하지 않게 네, 아니오로만 답하라"고 주문했다. 

고성이 오가는 충돌도 문제였지만, 검찰로서는 그보다 유동규가 검찰 조사에서의 진술에 대해 오전 내내 어떤 것은 인정하고 어떤 것은 부인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통에 검찰이 주장하는 사실관계들이 다 뒤죽박죽이 돼버린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이에 검찰은 오후 공판이 시작되자마자 변호인 신문에 앞서 "의견 개진할 것이 있다"며 재판장으로부터 발언권을 얻었다.

검사(이하 '검') 재판장님. 오전 증인신문 관련해서 한 말씀만 의견을 개진하려고 합니다. 변호인들의 오후 증인신문 사항을 방금 받아왔는데, 2013년 개발방식 경과에 대해 집중적으로 신문하신 것 같습니다. 변호인들께서 기록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후 검사는 개발 방식에 대해 업자들이 요구했던 환지 방식 혹은 혼용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수용 방식으로 결정된 과정을 설명했다. 변호인이 유동규로부터 답변을 듣고 확인하고자 하는 내용을 검사가 나서서 미리 정리해 제시한 것이다. 오락가락하는 유동규에 대한 '진술 가이드라인'이었다. 변호인은 이에 즉각적으로 항의했고, 재판장은 "앞으로 그런 이의는 허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재판장 절차 의견 내주시거나 전제가 착오가 있다거나 하는 것은 소송 지휘상 필요하다고 하겠는데, 지금은 신문하기 이전에 사실관계 부분 진술하시면 증인이 혼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 하지 마시기를 바라구요.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그런 이의는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유동규가 재판마다 반복되는 오락가락 횡설수설 진술에 이어, 검찰 조사에서의 진술과 법정 진술의 핵심적인 내용까지 부인하고, 검찰 주장 전체를 다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지경에 이르자 궁지에 몰린 검찰이 증인 신문에 앞서 유동규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가 재판장으로부터 말 그대로 '엄중 경고'를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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