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혐의 기본 조건 ‘대가성’ 부정
“공사 설립, 김용 설득할 필요 없었어”
“위례·대장동 사업, 김용 역할 없어”
“뇌물 덕에 가고 싶은 자리 골라 가”
검·유, 한입으로 “좌우지간 뇌물이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지난 주 공판에 이어 20일 공판에서도 검찰을 또 한 번 충격에 빠뜨렸다.
유 전 본부장은 지난 13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에 대한 18차 공판에서 2013년 ‘설·추석 떡값’ 2천만원에 대해, “김용에게 돈을 주긴 줬는데 그게 명절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며 혐의의 기초를 흔들어 검찰을 당혹하게 했다. 그런데 20일 19차 공판에서는 “김용은 공사 설립을 위한 로비 대상이 아니었고, 위례·대장동 사업에서도 역할이 없었다”며 ‘뇌물’ 혐의의 기본적인 성립 요건인 ‘대가성’마저 부정했다.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뇌물의 대가’는 ‘공사 설립 조례안과 위례·대장동 사업에 대한 성남시의회 직무와 관련된 각종 편의 제공’이었다. 그런데 유 전 본부장이 “공사 설립과 위례·대장동 사업과 관련해 김 전 부원장에게 뇌물을 줄 이유가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이다.
유 전 본부장은 지난 주 공판에서는 수동적으로 후퇴하는 자세로 “명절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진술을 내놨지만, 20일 공판에서는 이를 만회하려는 듯 잔뜩 독이 오른 자세로 증인신문에 임했다. 그러나 변호인단의 차분한 논리 전개에 ‘대가성’을 부정하는 진술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공사 설립, 김용 설득할 필요 없었어”
김 전 부원장에게 제기된 뇌물 혐의는 ▲2013년 설과 추석 떡값 각 1천만원 ▲2013년 3월 7천만원 ▲2014년 4월 1억원 등 총 1억9천만원이다. 변호인단은 2013년 설·추석 떡값은 이미 공소기각 혹은 공소취소 대상으로 더 따질 이유가 없다는 듯 간략한 언급으로 그치고, 곧바로 공사설립 과정에서 유 전 본부장이 김 전 부원장에게 뇌물을 제공할 이유가 있었는지에 대해 신문을 시작했다.
변호인(이하 ‘변’) 당시 공사 설립이 어려웠던 것은 새누리당의 반대 때문이지 다른 것 때문은 아니었죠?
유동규(이하 ‘유’) 네.
변 김용과 정진상은 이재명 시장의 복심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두 사람의 마음을 바꾸도록 설득할 필요는 없었죠? 공사설립 과정에서.
유 네.
변 굳이 이 사람들에게 더 열심히 해달라고 요청할 필요는 없었다, 다시 한 번, 맞죠?
유 네.
변 남욱은 “당시 성남시에서 민주당은 도개공 설립이 당론이고 새누리당은 반대 입장이었다. 당시 최윤길 등을 설득해 캐스팅보트 3명이 당적을 바꿔 도개공 설립 조례안을 통과시켰다”고 얘기했는데, 남욱 진술만 봐도 증인이 별도로 김용을 상대로 도개공의 편익을 위해 로비할 필요는 없었죠?
유 도개공 설립은 서로 이해관계가 맞는 내용이었습니다.
변호인은 공사설립 조례 제정 당시 최윤길 의장 등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현금으로 로비한 사실들을 짚어나가며, 이들에 대해서는 로비를 하고 설득을 할 필요가 있었지만 정진상과 김용에 대해서는 로비 필요성이 전혀 없었다는 취지로 질문을 이어나갔고, 유 전 본부장은 “김용은 우리 쪽 사람이라고 생각해 로비할 필요가 없었다”며 순순히 수긍했다.
“위례·대장동 사업, 김용 역할 없어”
변호인단은 이어 위례 사업과 대장동 사업에 있어서 김용 전 부원장의 역할에 대해서 물었다.
변 위례나 대장동 사업에서 공모지침서는 시의회 의결을 거치지 않죠? 그러면 공모지침서를 가지고 의원들에게 로비하거나 자금 제공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유 공모지침서를 떠나서요, 시의원들은 어떤 권한이 있냐 하면 예산뿐 아니라 감사 기능도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중략)
변 그건 아는데, 공모지침서는 의원들에게 특별히 로비할 필요 없지 않냐는 말씀입니다.
유 그건… 특별히 로비 대상은 아닙니다.
변 증인의 2022년 10월 31일자 피신조서를 제시합니다. 검사가 “당시는 대장동 개발방식으로 수용으로 할지 환지로 할지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김용이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라고 묻자, “사실 김용이 별다른 역할을 담당한 것은 없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결정 있었는데 이는 시와 공사간 의사소통을 통해서 하는 것이라, 시의회를 담당하는 김용이 개입할 건 아닙니다”라고 했죠?
유 네.
변 “1공단이나 대장동 결합개발 사건에서 1공단 분리한 것과 관련해 김용이 관여한 사실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 부분에도 없습니다” 이렇게 진술했죠?
유 네, 맞습니다.
이로써 ‘공사 설립과 위례·대장동 사업에 대한 각종 편의 제공’이라는 ‘뇌물의 대가’에 대한 검찰의 공소 사실은 유 전 본부장에 의해 완전히 부정됐다. 특히 검찰이 이미 조사 과정에서 이러한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 검찰 신문조서를 통해 확인됐다. 말 그대로 ‘억지 기소’였던 것이다.
“뇌물 덕에 가고 싶은 자리 골라 가”
유 전 본부장은 그래도 대가성과 연결하기 위해 자신의 입지에 뇌물이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9일 정진상 전 민주당대표실 정무실장의 공판에 증인으로 나가 “‘동생 칭호’가 뇌물 대가”라고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변 검사님이 여기에 포인트를 두는 것 같은데, 남욱에게 돈을 요구할 때 증인이 “나도 좀 커야 하니까”라고 말했는데 그 돈을 갖고 증인이 사용해서 승진을 하는 데 쓰겠다는 취지로 보이는데, 증인이 이 돈을 받아서 어떻게 큰다는 것인가요?
유 (잠시 침묵) 제가 12년을 저 사람들과 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 자리를 갈 때 제가 선택해서 갔습니다. 만약 그런 사이가 아니면 그럴 수 있었을까요?
재판장(이하 ‘재’) 잠깐만요. 증인, 지금 변호인 질문이 증인이 어떤 역할을 하거나, 자리를 가거나, 이런 의도로 돈을 갖다 준 의도가 있었느냐는 것이거든요. 예컨대 정진상에게 갖다주면 증인이 더 클 수 있는, 좋은 자리 갈 수 있는 그런.
유 그런 개념보다는 돈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컸고, 그 다음에 물론 정진상을 주면 좋아하겠죠, 당연히.
재 갖다 주면 증인에게 뭔가 이익이 있는지, 대가성 관련해서 고민해야 되는 부분인데요,
유 다시 말하면 줘야 해서, 받기로 해서 같이 쓰기로 해서 받은 부분도 있고, 뭐 저도 아무래도 (김용이) 의원이고 정진상은 거의 이재명과 동급이기에 그런 부분도 있고…(중략)
재 김용에게 피고인이 돈을 갖다주면 크는 데 뭐가 도움이 있어요?
유 (답변 못함)
유 전 본부장은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공판과 김용·정진상의 공판 등에 10여 차례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하면서 흥분해서 고성을 지르는 일이 잦았다. 이날은 특히 더했다. 재판장과 변호인단은 이날 하루에만도 몇 차례씩 유 전 본부장을 달래기 바빴다.
검·유, 한입으로 “좌우지간 뇌물이야!”
검찰은 지난 공판에서처럼 휴정을 요구해 대책회의를 여는 등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지만 표정에는 당혹한 빛이 역력했다. 검찰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증인신문 종료 직전 유 전 본부장이 “어디 자리를 갈 때 제가 선택해서 갔다”고 한 부분을 잡아 질문을 던졌다.
공소장에도 없는 ‘인사 영향력’이라도 어떻게든 ‘대가성’과 연결시키려고 최후의 노력을 퍼부은 것이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유 전 본부장의 횡설수설과 고성뿐이었다.
검사(이하 ‘검’) 김용·정진상에게 준 돈의 대가성과 관련해 오전 증언에서 “제가 어느 자리를 갈 때 자리를 선택해서 갔다. 정진상 김용과의 관계가 아니면 그렇게 하겠냐”고 한 구체적 의미가 무엇인가요?
유 (목소리 높아지며) 그러니까 모든 걸 공유하고, 제가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리면, 대장동 예를 들면 김만배는 정진상 김용과 다 통하는 사이인데, 저만 김만배를 아는 사이면…(중략)
재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닌데…
유 모든 걸 함께 공유해서 갈 수 있었던 겁니다.
검 답변의 의미가 정진상 김용과의 관계가 공기업 중책에 임용되거나 시설공단 직급에도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인가요?
유 이재명이 다 밀어줬습니다. 정진상 하고만 얘기하면.
검 김용·정진상이 영향력을 갖는 게 시에서 밀어줬기 때문에 김용이 (증인이) 크는 데 도움을 줬다는 뜻인가요?
유 네. 그렇습니다. (목소리 더욱 높이며) 나쁜 짓도 다 같이 한 겁니다. 시행하기로 하고 다 한 겁니다.
검 증인이 김용에게 준 돈은 뇌물이고, 정진상에게 준 돈도 뇌물이고, 그래서 이걸 다 공유할 필요가 없다, 이런 거 아닌가요?
유 그거 다 뇌물이고! 다 같이 썼고!(격분)
마지막 검사의 질문과 유 전 본부장의 대답은 차례로 문답을 주고받는 식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흥분한 유 전 본부장이 검사의 질문에 고성을 지르며 끼어들어 검사의 질문과 유 전 본부장의 아우성이 뒤죽박죽으로 엉켜들었다. 유 전 본부장에 대한 검찰의 마지막 증인 신문은 검사와 유 전 본부장이 서로 얽혀 “좌우지간 뇌물이야!”를 함께 외치는 모양새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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