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국총회에 대한 한국 언론의 관심 매우 부족

정부 탄소감축 목표를 ‘자해’로 몬 수구세력의 ‘자해’행위

유엔 사무총장 “도덕적 실패” 기후위기 본질 확인

“2030년대 초반 기온 상승폭 1.5도 목표 넘어간다”

장기주의의 제도적 장착 위한 다각적 노력 필요

2025년 11월 21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제30차 유엔 기후변화총회(COP30)에서 활동가들이 지구본 아래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2025.11.21. AP 연합뉴스
2025년 11월 21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제30차 유엔 기후변화총회(COP30)에서 활동가들이 지구본 아래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2025.11.21. AP 연합뉴스

기후문제 다룬 초대형 국제회의 COP30 폐막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11월 10일부터 10여 일간 브라질의 도시 벨렘에서 열렸다. 인류 공동의 미래와 직결된 기후 문제를 다루고자 세계 각국 대표단과 전문가, 민간 주체들 5만여 명이 모인 초대형 국제회의였다.

현장의 소식들을 종합해 보면, 이번 COP30 회의가 가진 의미는 다양했다. 먼저, 이번 회의가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 이후 10년째에 열리는 만큼, 탄소중립을 통해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C로 제한하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이 주요하게 다뤄졌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강화와 실행 재원 마련, 기후 재난 취약 국가들에 대한 손실 및 피해 보상 방안 등이 주요 의제가 되었다.

이번 COP30 회의의 또 다른 의미로 기후 문제 해결과 관련해 열대우림을 비롯한 자연생태계와 생물다양성 보호의 중요성과 원주민들의 역할이 강조된 점을 들 수 있다. 여기에는 회의 개최 장소가 벌목과 불법 채굴, 산불 등으로 기후·생태 문제가 집약되고 있는 아마존 인근 지역이었던 점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아마존을 비롯한 세계 원주민들이 수천 년 동안 숲을 지켜온 당사자이자 기후 위기의 직접적인 피해자로, 이들의 권리 보호와 함께 전통 지식을 활용한 문제 해결 노력이 강조된 점도 마찬가지다. 이런 움직임은 기후 문제를 탄소 배출에 대한 기술적 관리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경향에서 벗어나 관심과 논의 의제를 확장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원주민들이 11월 17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COP30) 기간 동안 기후 정의와 영토 보호를 촉구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2025.11.17. 로이터 연합뉴스
원주민들이 11월 17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COP30) 기간 동안 기후 정의와 영토 보호를 촉구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2025.11.17. 로이터 연합뉴스

그런데 이번 COP30 회의에서 다뤄진 주요 내용들에 대한 국내 언론의 보도 비중은 크지 않았다. 각종 의식조사에서 다가올 미래의 가장 큰 위협 요인으로 기후 문제가 지목되는 것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언론의 주된 관심은 경주 APEC 정상회의와 한미 정상회담, 한미 관세 협상 타결과 대미 투자 약정 등의 경제적 이슈와 대장동 항소 포기를 둘러싼 검찰 및 정치권의 갈등, 내란 세력 단죄 요구와 이에 대한 조직적 반격 등의 정치적 이슈에 맞춰져 있었다. 시민들의 관심 또한 물가나 부동산, 주식시장 변동 등 경제 문제에 쏠렸고, 정치적 이슈는 시민적 열망과 희망을 담기보다 분노와 짜증, 피로감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 이슈는 유난히 예민한 사람들 일부의 문제로 취급되고, 우선순위로 다뤄야 할 절박한 과제로부터 뒷전으로 밀려나기 십상이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폭염과 폭설, 한파, 가뭄, 홍수 등의 극단적 기상변동이 발생했을 때 기후 이슈가 잠깐 주목을 끌 뿐이다. 그러다 보니 COP30 회의가 우리로부터 1만 마일 넘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열린 만큼, 회의 소식 또한 주요 관심사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이런 가운데 기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우리의 인식을 환기시켜 줄 언론의 역할도 매우 부족했다.

 

COP30 의장 안드레 코레아 두 라고(오른쪽)가 2025년 11월 21일 금요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COP30 유엔 기후정상회의 본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2025.11.21. AP 연합뉴스
COP30 의장 안드레 코레아 두 라고(오른쪽)가 2025년 11월 21일 금요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COP30 유엔 기후정상회의 본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2025.11.21. AP 연합뉴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11월 20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COP30) 기간 중 기자 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2025.11.20. 로이터 연합뉴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11월 20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COP30) 기간 중 기자 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2025.11.20. 로이터 연합뉴스

기후 위기의 본질을 확인시켜 준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

이번 COP30 회의는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최종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합의문 초안에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에 대한 내용이 누락되자 태평양 도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항의가 있었다. 2년 전 회의(COP28)에서의 합의를 바탕으로 화석연료의 퇴출을 위한 로드맵이 이번 회의의 핵심 쟁점이었는데, 산유국을 중심으로 한 국가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21일로 예정된 폐막일을 연기했고, 최종 합의문에는 화석연료에 대한 언급이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합의제에 기반한 유엔의 기후총회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오고 있다.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와 해수면 상승의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도서국가 등 현실적 입장과 이해관계가 다른 국가들로부터 도출된 합의의 수준은 아주 낮거나 상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후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합의제 방식을 인류의 미래를 인질로 삼는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이 대목에서 이번 COP30 회의를 개최하게 된 근본 목적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관련해서 이번 회의에서 나온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본회의 전인 11월 6일에 열린 세계 지도자 기후 정상회의(Leaders’ Summit) 개회 총회에서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과 용기 있는 선택 및 힘 있는 실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발언을 내용 중심으로 재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25년 11월 21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제30차 유엔 기후변화총회(COP30)에서 활동가들이 "섭씨 1.5도 상승 위협: 행동할 때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5.11.21.AP 연합뉴스
2025년 11월 21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제30차 유엔 기후변화총회(COP30)에서 활동가들이 "섭씨 1.5도 상승 위협: 행동할 때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5.11.21.AP 연합뉴스

먼저, 현실 진단과 관련한 부분이다.

“냉혹한 진실은 우리가 1.5도 이하를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입니다. 과학은 이제 203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1.5도 한계를 일시적으로 초과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합니다. … 일시적인 초과조차도 극심한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 너머로 밀어내고, 수십 억 인구를 살기 어려운 환경에 노출시키며, 평화와 안보에 대한 위협을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온도가 0.1도 상승할 때마다 기아, 이주, 손실이 가중됩니다. 특히 가장 책임이 적은 이들에게 더욱 그렇습니다. 이는 ‘도덕적 실패’(moral failure)이자 ‘치명적 과실’(deadly negligence)입니다. … 기후 위기는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매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5°C 한계는 인류가 넘어서는 안 될 최후의 한계선(red-line)으로, 1.5°C 목표는 반드시 달성해야 합니다.”

이어서 용기 있는 선택과 실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많은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행동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이제 말이 아니라 실행의 시간입니다. 1.5도 목표를 살리기 위해 남은 시간은 단 한 세기도 채 되지 않습니다. … 우리는 자연의 경고를 무시했고, 정치적 용기를 내지 못한 채 미뤄온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막대한 보조금을 받고 있는 화석연료 체계, 기후 파괴로 사상 최대의 이익을 얻는 기업들의 로비 등 뿌리 깊은 이익집단에 많은 지도자들이 포로가 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은 기대와 희망을 잃고 있습니다. … 정치적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더 신속하게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이제 협상의 시기는 지났습니다. 이제는 실행의 시기입니다. … 우리는 선도할 것인가, 혹은 파멸로 이끌릴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기후 위기는 미래세대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 우리의 문제입니다. … 과학자들은 즉각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기를 가속화하고, 메탄 배출을 대폭 줄이며, 자연의 탄소 흡수원인 산림과 해양을 보호하는 등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폭 감축해 2050년까지 전 세계 순배출 제로(net-zero)를 달성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적응 및 회복력 강화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고, 태양광과 풍력으로 에너지 혁명을 실현해야 합니다. 국가들은 1.5도 목표 달성을 위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대한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COP29에서 합의된 대로 기후 재정을 달성하기 위한 명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경로를 제시해야 합니다. … 정의를 위해, 미래세대를 위해 COP30이 실질적 행동으로 바꿔내는 전환점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18일(현지시간)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30) 한국홍보관에서 K-POP 팬들의 기후행동 참여를 독려하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5.11.19. 연합뉴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18일(현지시간)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30) 한국홍보관에서 K-POP 팬들의 기후행동 참여를 독려하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5.11.19. 연합뉴스

한국 정부의 대응과 부정적 반응에 담긴 의미

이번 COP30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2035 NDC)를 53~61%로 결정해 발표했다. 파리 기후변화협약에 따라 2050년까지의 탄소중립을 목표로 각국이 정한 NDC를 5년마다 유엔에 제출해야 하는 데 따른 것으로, 우리나라는 2021년에 세운,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40% 줄이는 목표를 이번에 2035년까지 53~61%로 상향한 것이다.

우리의 이번 감축목표 설정 과정에서는 입장 차이에 따른 논쟁과 갈등이 적지 않았다. 정부(기후부)는 산업계 요구를 반영한 48%, 2018~2050년 연평균 선형 경로에 따른 53%, 국제사회 권고안인 61%, 시민사회 권고안인 65% 등 4가지 목표치를 두고 논의를 진행했으나, 결국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단일 목표치 대신 53~61%라는 범위를 정해 유엔에 지출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수치는 목표치 하향을 주장한 산업계나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위해 목표치 상향을 주장한 시민사회 모두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였다.

기후 문제 해결과 관련해 이제 남은 과제는 2035년까지 향후 10년간 지금 수준보다 더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줄이고, 가급적 목표 설정 범위 내에서도 53%보다 61%에 근접하게 달성하도록 하는 일이다.

그런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실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우리 역시 약속한 온실가스감축목표를 달성하려면 그동안 익숙한 채 의지해 온 기존의 생산과 소비, 생활양식 자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당연히 이러한 변화 과정이 동반하는 충격과 비용은 클 수밖에 없고, 그만큼 갈등과 저항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심상찮은 조짐이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의 ‘탈석탄동맹(PPCA)’ 가입을 놓고 문제 제기가 나온다. 이번 COP30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석탄 발전의 단계적 폐지를 목표로 하는 국제적 협력 구상인 ‘탈석탄동맹(PPCA)’ 가입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 9월 발표한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39번)에 2040년까지 석탄 화력발전 폐지를 추진하기로 한 것을 이번에 국제사회에 공표한 것인데, 이에 대한 조직적 반격의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산업계 당사자보다 현 정부와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진영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듯하다. 지난 정부에서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정책에 비판적이었던 흐름과도 맥을 같이한다.

 

11월 17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COP30) 정상회의 기간 중 'Don't Gas Asia' 시위에서 한국의 전통 모자 갓을 쓴 활동가들이 "독성 LNG 선박 수출 중단"이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2025.11.17. AP 연합뉴스
11월 17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COP30) 정상회의 기간 중 'Don't Gas Asia' 시위에서 한국의 전통 모자 갓을 쓴 활동가들이 "독성 LNG 선박 수출 중단"이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2025.11.17. AP 연합뉴스

정부 탄소삭감 목표를 ‘자해’로 몬 수구언론의 ‘자해’

대표적 보수언론은 탄소 배출량 61% 목표도 비현실적인 데다 탈석탄동맹 가입은 산업보다 환경 시민단체들을 더 의식해 스스로 ‘족쇄’를 채운 행위로, AI 혁명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전체 전력 생산량의 30%가 넘는 석탄 화력발전 폐지는 ‘자해’ 행위라고 비판한다. '기후변화'를 최대 사기극이라고 비판한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중국, 인도, 러시아 등 화석연료 최대 배출국의 지도자들이 이번 COP30 회의에 불참한 가운데, 우리나라의 ‘탈석탄동맹’ 가입은 섣부르다는 평가도 내놓는다.

하지만 세계 과학자들이 앞장서서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세계 각국의 책임있는 대응을 촉구했듯이, 화석연료에 의존한 성장 방식으로는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어렵고, 문제 해결의 시간을 늦추는 것은 결국 부담을 가중시켜 미래로 떠넘기면서 문제 해결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행위다. 따라서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에 소극적인 국가들의 태도는 비판의 대상이지 동조하고 따라야 할 것이 아니다.

이번에 발표한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달성하려면 기업들은 추가 투자와 함께 성장 방식도 바꿔야 하고, 시민들 역시 기존의 소비·생활 방식에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기후 재앙을 줄이거나 피하려면 긴 안목과 인내를 갖고 지속적인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부담스럽더라도 필요한 일을 해내는 용기와 결단도 중요하다. 기후위기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더 새롭게’ 할 것인가는 물론이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와도 깊이 연결된 문제다. 기존의 경험, 관성, 기득권을 붙들어 맨 채 새로운 차원을 열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기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탄소 배출 관리를 위한 기술 혁신과 산업 체계 정비,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합의 기반 확대 노력과 함께, 정치적 의사결정 구조와 우선순위의 변화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에서 기후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구조적 저항 요인(화석연료 보조금, 기업 로비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정책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권력구조와 뿌리 깊은 이해관계 문제를 다룰 것을 강조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11월 17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COP30) 정상회의에서 원주민들이 기후 정의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2025.11.17. AP 연합뉴스
지난 11월 17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COP30) 정상회의에서 원주민들이 기후 정의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2025.11.17. AP 연합뉴스

단기주의로 인한 근시안적 접근을 넘어서야

앞서 언급한 유력 보수신문은 정부의 이번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발표와 탈석탄동맹 가입을 두고 “5년 정권이 15년 뒤의 중차대한 국가적 결정을 함부로 내려서도 안 된다. 나라는 환경 탈레반들의 놀이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것은 기득권 논리에 편승한 채 기후 문제의 본질을 덮어버리는 의도된 악의적 비판이다. 정권 임기를 넘어선 중장기 국가 과제를 다루기 위한 대안은 전혀 내놓지 않은 채 마음에 들지 않는 정권을 비판하기 위한 전형적인 꼬투리 잡기로, 현 정권에 비판적인 집단들은 이런 주장을 정치적 공세의 빌미로 삼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기후 재앙의 임계점을 향한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2035 NDC 목표까지는 10년, 2050 탄소중립 목표까지는 25년이 남았다. 기존 정권과의 과도한 차별화로 정책적 단절이 특히 심한 우리 현실에서 5년 임기의 정권을 창출하는 지금의 선거 정치 구조로는 중장기 과제를 책임있게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 지금처럼 현재의 이익과 성과를 최우선시하는 ‘단기주의’(short-termism)가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기후 문제 해결과 지속가능한 미래의 실현은 요원하다. 분기별 실적, 주주 가치 극대화, 자본의 빠른 수익률 추구와 같은 경제 논리와 차기 선거에서 승리를 위해 임기 내 성과에 집중하는 선거 정치 구조는 단기주의를 강력하게 작동시켜 정치사회 체제 전반을 근시안적(short-sighted)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런 단기주의의 한계가 지금 기후 문제를 둘러싸고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장기주의’(long-termism)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윌리엄 맥어스킬은 『우리는 미래를 가져다 쓰고 있다』(2023)라는 책을 통해 ‘장기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지금 시대의 도덕적 우선순위로 삼는 것’을 장기주의라고 부른다. 주목할 점은 장기주의가 현재 시간의 단순한 연장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현재를 성찰하고 전환적 태도를 촉구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린피스 인도네시아 활동가들이 11월 18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를 맞아 자카르타의 무아라 카랑 가스 화력 발전소 앞에서 해상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국가 에너지 정책의 불일치를 항의하고 화석 연료 의존 종식을 촉구하고 있다.2025.11.18. AFP 연합뉴스
그린피스 인도네시아 활동가들이 11월 18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를 맞아 자카르타의 무아라 카랑 가스 화력 발전소 앞에서 해상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국가 에너지 정책의 불일치를 항의하고 화석 연료 의존 종식을 촉구하고 있다.2025.11.18. AFP 연합뉴스

장기주의의 제도적 장착을 위한 다각적 노력 필요

단기주의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장기주의가 작동하려면 심원한 시간(deep-time)에 대한 겸허한 자세와 함께, 민주적 숙의를 통한 생태적 시간감각 회복과 지속가능성과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 이와 함께 미래의 가치를 존중하고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에서 정책과 제도 개혁도 뒤따라야 한다. 관련해서 정책·법·제도·예산 계획 수립에서 중장기 목표 설정과 미래 영향 평가하기, 현재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미래세대 대변자 설정과 청년 할당제, 투표 연령 하향 조정 등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문제는 장기주의 원칙을 담은 제안들이 실현되려면 결국 정치구조 및 의사결정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주요 과제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 내 전략 기구이자 부처별 정책의 상급 단위 조정 역할로서 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을 재조정하여 미래세대와 지속가능성 등 장기적 과제를 책임있게 다루도록 해야 한다. 기후와 지속가능성 문제와 관련해 최근 이름을 바꾼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와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등 정부의 관련 위원회 전반에 대한 위상과 역할의 재조정, 재설계를 통해 개별부처 단위를 넘어 국가 전체 차원에서 장기적 공공성을 효과적으로 실현하도록 하는 것으로, 법률과 대통령령, 국무회의 의결 등을 통해 가능하다.

둘째, 국회 상임위원회 성격으로 ‘미래위원회’를 설치·운영해 장기주의 과제를 다루는 것이다. 현재 운영중인 국회 ‘기후위기 특별위원회’는 입법권을 갖추는 등 기존보다 위원회 권한이 커졌으나 한시적 비상설 기구인 데다 정책 자문 역할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단기주의를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국회 상임위원회로 ‘미래위원회’를 설치해 법률·예산안 심사와 국정감사·조사, 안건의 심층 논의를 위한 소위원회 운영 등을 통해 입법체계 속에 장기적 관점을 내재화하는 것으로, 국회법 개정을 통해 가능하다.

셋째, 헌법 기구로서 ‘미래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이 있다. 헌법 기구로 미래위원회를 둬서 4-5년 주기의 선거 정치와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단절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장기적 공공성과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내용을 책임 있게 다루도록 하는 것이다. 국가 주요 계획과 법률·예산안의 중장기 리스크 및 미래 영향 평가, 국가 중장기 과제 발굴과 전략 방안에 대한 공론화 등이 주요 역할이 될 것이다. 헌법상 기구로 미래위원회를 두려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넷째, 양원제를 도입하고, 장기주의 측면에서 상원 기능을 강화해 단기주의에 기반한 정치적 결정이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있다. 하원이 인구 비례성에 기반해 현세대 요구 실현에 초점을 맞춘다면, 상원은 지역 대표성에 기반해 미래의 가치를 대변하도록 하여 전체적으로 양원제가 시간적 균형 장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기후·생태 문제 등 장기적 리스크 관리와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의 장기 영향에 대한 심의 및 권고 등이 상원의 주요 역할이 될 것이다. 하원형 단원제 구조를 가진 우리로서 상원 설치는 헌법 개정 사안이다.

위의 네 가지 과제 중 실현 가능성을 보면, 첫 번째가 가장 높고 네 번째로 갈수록 낮다. 특히 헌법 개정 사안의 경우 정치, 사회적 합의에 시간이 필요한데 비켜갈 수 없는 일이 되고 있다. 기후 위기 비상사태를 맞아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을 통한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 실현은 사회 전반의 변화를 동반하는 것으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지혜를 모으고 부담을 나눠야 가능한 중대한 과제다. 그만큼 용기 있는 결단과 인내, 신뢰에 기반한 든든한 지지가 필수적이다. 쉽지 않은 과정을 함께 극복해 내려면 명확한 목표 설정과 정치·제도·내용적 리더십을 함께 만들어내야 한다. 관련해서 헌법이 국가 정체성을 담은 최상위 규범이라는 점에서, 헌법 개정 논의가 권력구조 개편을 넘어 장기주의 장착을 통해 기후 위기 해결과 지속가능한 미래 실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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