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 측 "공소 유지 근거 사라져…공소기각해야"
유 "돈 준 건 맞는데 시기가 명절인지는…"
당황한 검찰, 휴정 요청 뒤 긴급 대책회의
신문 절차 거의 마무리…10~11월 선고 전망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사건의 '유일한 증거'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13일 열린 18차 공판에서 김 전 부원장 혐의를 사실상 부인하는 증언을 내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관련된 여러 사건에서 유 전 본부장의 입만 바라보고 기소했던 검찰로서는 심각한 배신을 당한 것이다. 재판 초기 의기양양했던 유 전 본부장의 태도는 재판 중반부터 눈에 띄게 허물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날 공판에서는 노골적으로 '발을 빼려는' 자세가 역력했다.
검찰이 기소한 김 전 부원장뇌물혐의의 출발은 2013년 설날과 추석 유 전 본부장으로부터 각 1천만원씩 받았다는 것이었다. 유 전 본부장은 지난 5월 12일 정진상 전 민주당대표실 정무실장 공판에서 "2013년 설 무렵에 남욱으로부터 2천만원을 받아 정진상에게 1천만원을 준 것은 맞는데, 나머지 1천만원은 김용을 줬는지 내가 썼는지 잘 모르겠다"고 진술해 '2013년 설 떡값' 혐의를 무너뜨렸다.
이 부분을 검찰이 어떻게 방어할지가 관심이었던 13일 공판에서 유 전 본부장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가 '추석 떡값'마저 부인해버린 것이다.
"돈 준 건 맞는데 시기가 명절인지는…"
검사(이하 '검') 2013년 추석 무렵, 김용과 정진상에게 각각 1천만원씩 교부한 사실 있나요?
유동규(이하 '유') (잠시 생각하다가) 정진상은 빠뜨리지 않고 했고요…김용은 잘 모르겠습니다.
검 오전 신문에서 김용 시의회 사무실에 가서 1천만원씩 두 번 줬다고 했는데 그건 언제 뭐 때문에 준 건가요?
유 명절 때문에 갖다준 것으로 생각되는데 시점이 조금…모르겠습니다.
검 그래서 시점 여쭤보는 거예요. 그러면 1천만원 봉투 두 번 갖다 준 게 명절 무렵은 맞나요?
유 네. 추석인지 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검 두 번인데 추석인지 설인지 모르겠다?
유 네.
지금은 정진상 전 실장 사건이 이재명 대표 사건과 함께 형사33부로 병합됐지만, 지난 5월 공판 당시 정 전 실장 사건의 재판장으로서 유 전 본부장이 '김용 2013년 설날 떡값'을 부인하는 진술을 지켜봤던 조병구 재판장은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기 시작했다.
재판장(이하 '재') 이 부분 구체적으로 확인하겠습니다. 증인이 남욱으로부터 2천만원을 최초로 받은 게 2013년 1월 설 무렵이었다는 것이잖습니까? 2013년 9월 경에도 2천만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1천만원 씩 정진상과 김용에게 가져다줬다는 게 기본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증언을 보니까 특히 김용에 대해서는 정확히 언제 갖다줬는지 기억을 전반적으로 못하고 계신 것 같고, 아무튼 1천씩 여러 번 갖다준 것 같다는 정도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명절에 줬다면 설날 아니면 추석이잖아요? 그런데 이에 대해 명확히 진술을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 기억 안 나는지 특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유 그게 돈 받았을 때 갖다준 건지…왜냐하면 정진상은 명절 꼬박꼬박 챙겼는데 김용에게는 안 그랬습니다. 그래서 시점이 조금 헷갈립니다. 준 것은 명확합니다. 근데 시점이 명절이었는지…
재 남욱으로부터 돈 받은 시점이 뻔한데 방금 검사님이 9월에 대해 물었습니다. 추석 때 기억은 어떤가요?
유 전 본부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6월 9일 정진상 전 실장 재판에서 금액은 물론 출처마저도 제대로 답변하지 못해 재판장의 질문에 장시간 침묵을 지키던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잠시 기다리던 재판장은 검사에게 질문을 계속하도록 했다.
당황한 검찰, 휴정 요청 뒤 긴급 대책회의
검사들의 표정은 이미 흙빛이 되어 있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을 이어가던 검사는 격앙된 톤으로 유 전 본부장을 추궁했다.
검 그때 줬는지 그 전인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어느 시점을 말하는 건가요?
유 2013년은 맞는데 그때 돈이 들어오는 시기가 있지 않습니까. 돈 들어왔을 때 즉시 줬는지 가지고 있다 줬는지 그걸 모르겠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김용이 그때 사무실에 갔을 때 한 번은 의회…, 이게 명절이었나 아니었나 그게 헷갈립니다.
검찰은 정영학 녹취록과 계좌내역, 남욱의 출입국 기록, 유 전 본부장의 검찰 진술과 공판 진술 등 온갖 것들을 번갈아 제시하면서 장시간 폭풍 질문을 쏟아부었지만 계속 유 전 본부장이 중언부언하며 흐릿하게 답변하자 끝내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검 그런데 검찰 조사할 때 김용과 정진상에게 설 추석 각각 1천만원씩 줬다고 증언을 그렇게 했나요?
유 그때 갖다준 건 맞는데 시기적으로 그런 부분 맞을 거라고 생각해서 얘기한 겁니다. 그런데 말했다시피 갖다준 건 맞는데 제가 확실히 기억하는 게 뭐냐하면…(이하 장황하게 중언부언)
검 2013년 설과 추석 무렵에 남욱은 증인에게 2천만원을 줬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증인도 그 무렵에 2천만원을 각각 받은 게 맞다고 하구요. 그런데 그 돈을 증인이 쟁여놓고 있을 일은 없잖아요.
유 네. 그런데 제가 준 건 맞는데 개념이, 김용에 대해서는 개념이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검 개념이 없다는 게?
유 날짜를 정해서 준 개념이 없다는 겁니다.
검 재판장님. 잠시 쉬었다 하면 좋겠습니다. 저희 질문 정리 좀 하고…
검찰은 휴정을 요청한 후 검사석에 둘러 앉아 심각한 분위기로 대책을 논의했다. 재판이 다시 열리고 질문을 이어갔지만 유 전 본부장 역시 똑같은 중언부언을 반복했다. 결국 검찰은 포기하고 다른 혐의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갔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검찰이 바라는 대로 순순히 진술했지만 검찰의 질문은 맥이 빠져 있었다.
유 전 본부장은 검찰을 의식해 "돈을 주긴 줬다"고 반복해서 답변했지만 그것은 사실 "안 줬다"는 얘기와 마찬가지였다. "명절 때 줬다"고 진술했다가 "설인지 추석인지 모르겠다"고 말을 바꾸더니 "명절때 줬는지 잘 모르겠다"고까지 진술을 후퇴하는 것은 "김용에게 돈을 줬다"는 주장 자체를 스스로 허무는 것이다.
변호인 "공소 유지 근거 사라져…공소기각해야"
김용 전 부원장의 변호인은 유 전 본부장이 증인신문을 마치고 퇴정하기를 기다려 재판장에게 "절차 진행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며 발언권을 얻었다.
변호인 저희도 오늘 상당히 충격을 받았는데, 이 사건 공소사실과 관련해서 핵심적 증인이라 할 수 있는 유동규 증인이 지난 번 정진상 재판에서 설 무렵에 김용 피고인에게 돈을 줬는지는 불분명하고 자기가 쓴 것 같다고 얘기한 것을 보도를 통해 알았는데, 오늘은 그 해 추석에 돈 준 것에 대해서도 명절 관련해서 기억이 안난다고 했습니다. 형사소송법 254조는 공소사실 기재는 범죄 일시, 장소, 방법 명시에 특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돼있습니다. 그런데 명절에 돈을 줬다는 자체가 기초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소사실 특정이 잘못된 것으로 공소 취소 내지 기각 사유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재판장께서 공소 기각하거나 검찰에게 공소취소를 요구해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재판장 취지는 알겠는데 증명력이나 증거 평가에 대한 사항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범행일시가 최대한 특정돼야 방어권 행사에 적절하다는 주장도 있으시고 해서, 일단 공소취소나 기각사유까지 되는지에 대해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검토는 해보겠습니다.
재판장은 유보적으로 답변했지만, 최소한 '진술의 신빙성' 차원에서 보더라도 '명절 떡값 2천만원'에 대해서는 더 다투어볼 여지마저 사라진 상황이 됐다. 다른 혐의들은 변호인단이 재판이 시작될 때부터 주장했던 것과 같이 돈을 준 목적, 즉 대가성이 분명치 않고, 유 전 본부장이 "선거자금으로 조성해서 전달한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어 뇌물죄로 다룰 수 있을지 자체가 문제가 된다.
김용 전 부원장의 재판은 유 전 본부장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과 김 전 부원장에 대한 피고인 신문만 남겨두고 있다. 재판장은 이날 재판 말미에 "9월 중에 종결이 가능할 것 같고, 더 검토가 필요하더라도 10월 추석 이후면 마무리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르면 10월 늦어도 11월에는 김 전 부원장에 대한 선고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무더기로 기소해놓은 여러 사건 가운데 첫 번째 사건이 매듭지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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