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게, 크게 지으려 하는 것에 담긴 낡은 사고
도시 공간에 대한 몰이해, 사람에 대한 무례
비판을 정쟁으로 폄하하는 언론이 떠받쳐줘
광화문광장에 100m 높이 초대형 국기게양대를 설치하겠다고 했다가 국가주의 논란이 커지자 보류했다. 상암동 부지에 세계 최대 규모의 '서울링' 프로젝트를 띄웠으나 1조원 넘는 막대한 예산 부담으로 좌초될 상황을 맞았다. 거듭된 실패와 무산으로 그가 생각을 바꿀 줄로 알았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은 이제 종묘 앞에 초고층빌딩을 지으려 한다. 한강에는 ‘한강버스’로 마치 물 위에 속도전의 빌딩이라도 띄우려 한다.
그런 오 시장에 대해 많은 이들이 ‘개발주의자’라고 한다. 그러나 때로는 도시에 필요하기도 한 ‘개발'이라는 말은 온당치 않다. 그보다는 다른 말로 불러야 마땅할 듯하다. 그는 4대강의 이명박이나 ‘불도저’로 불렸던 1960년대 김현욱 시장을 모방하려는 것으로 비친다. 대도시 안에 4대강 사업을 펼치려는 것이며, 21세기에 20세기판 ‘서울 현대화’를 모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방이 더욱 최악인 것은 20세기의 가장 낡은 부분, 20세기에 이미 폐기된 '낡은 개발 노선'을 모방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높이 세우려 하고 크게 지으려 하며 빨리 달리려 한다. 높이 올리고, 크게 짓는 생각으로 꽉 찬 그에게 부재한 것은 도시라는 인간 공간, 그 공간 속 사회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다. 몰이해라기보다는 그 안의 사람들에 대한 무례이며 불손이다.
오세훈의 서울 개발이 가져오는 결과는 서울을 '섬'으로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인들이 찾아오는 이 글로벌 도시에서 서울은 오히려 글로벌의 흐름과는 거꾸로 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세계 메트로폴리탄에서의 섬이 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서울을 '부자 도시'로 만들려는 것인가. 그러나 서울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일부 부자들을 위한 도시로 만들려는 것인 듯하다. 서울을 비싼 도시로, 그 비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의 도시로 도시로 만들려는 것이다. '사회적 섬'으로 만드는 것이며 세계의 대도시의 흐름에서 벗어난 섬으로 만드는 것이다.
투기와 자산화를 위한 개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용적률 상향, 한강변 초고층 개발 등 오세훈의 서울 개발은 도시 공간을 '주거'가 아닌 '투자 자산'으로 여기게 한다. 개발의 이익은 이미 부동산을 소유한 자산가 계층에게 집중된다. 주요 요충지를 '매력적인 디자인 건축물'로 채워 도시의 미관을 개선할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인데, 그것이 아름다운 경관이 될지 모르겠지만 설령 미관이라고 하더라도 그 미관과 디자인은 일부 계층의 탁 트인 전망 아래 다수의 서울시민들을 그늘 아래 두는 것이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으로 명명됐다. 이 '대중'은 어떤 대중인가. 그는 서울에 사는 대중을 새롭게 정의하고 구분하려 한다. 그 결과 서울특별시는 '특별한' 시민이라야만 살 수 있는 곳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물어야 할 것은 오세훈은 왜 그런가와 함께 누가 오세훈을 그렇게 만드는가, 라는 것이다. 누가 오세훈식의 개발, 낡은 20세기로의 퇴행을 지탱해주는가, 떠받쳐주는가이다. 24일에도 한국을 대표한다고 자부하는 신문에는 오세훈을 위해 작정된 헌사라도 되는 듯 그와의 인터뷰가 큼직하게 실렸다. “한강버스 대박 날 조짐” “민주당이 침소봉대하는 건 이 사업이 대박 날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신문의 오세훈 인터뷰를 분석한 미디어 비평가가 마치 선거 공보물 같은 느낌이라고 평한 이 인터뷰에서 오 시장은 “종묘 주변 세운상가 재개발이나 한강버스, 광화문 정원 등에 대해 저렇게 파상 공세를 펴는 것은 내가 제대로 열심히 일하는 시장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고 기염을 토한다. 한강버스 좌초 사고나 운행 중단에 대한 질문은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다른 유력지는 오세훈이 종묘 논란을 키워 재미를 보고 있다고 관전평을 늘어놓고 있다. “여권의 총공격에도 타격감이 크지 않다”고 오세훈을 받쳐준다.
어느 언론은 오 시장을 비판하면서 “정치적 치적을 쌓아 대권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세훈 시장의 개발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매체다. 그러나 이 신문조차 오세훈식의 개발을 '정치적 치적'으로, '대권 발판'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듯하다.
다른 언론들은 그런 비판조차 없다. 단지 '정치적 공방'이며 '정쟁'일 뿐이다. 한강버스 멈춤 사고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지적하고 비판하자 대다수 언론은 "노골적인 오세훈 서울시장 때리기"니 "정치공세“라고 한다. 국무총리가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필요하다면 운항 중단 기간을 연장하라고 특별 지시한 것이나 더불어민주당이 오세훈 시장의 사과와 공개 면담을 요구한 것을 '오세훈 흠집 내기' 공세쯤으로 여긴다.
<한강버스 좌초, 오세훈도 좌초하나… 범여권, 연일 ‘십자포화’> <민주당 TF에 김민석 총리까지…오세훈 향해 총공세 나선 여권, 왜?> <여권 "한강버스 중단" 맹공…오세훈 "정치 공세 안돼">
한강버스가 멈췄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앞서 잦은 고장으로 안전성 우려가 쏟아지면서 한 달간 정비를 거쳐 재운항한 지 보름 만의 일이었으며, 멈춰선 배에서 구조하는 데 한 시간이나 걸린 것에 많은 이들이 불안해했지만 언론은 도대체 이 사고에 대해 질타하기보다는 오세훈을 질타하는 것을 오히려 공방이며 정쟁이라고 질타하듯 몰아붙인다. 국민의힘의 '유사 선거개입'이라는 주장까지 인용해 오세훈 때리기라며 ‘오세훈 때리기에 대한 때리기’에 나선다. 오세훈 시장은 한강버스 멈춤 사고에 대한 사과문을 내면서 “안전 문제를 정치 공세의 도구로 삼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잇단 사고로 시민 불안이 커지고 있는 것을 지적하니 이를 정치적 공세라고 한다. 누가 정치적 공세를 벌이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오세훈이 그럴 수 있는 것, 그 뒤에는 정치공세로 명명해주는 언론이 있다.
나아가 <여권의 ‘오세훈 때리기’에 오세훈만 웃는다> <'오세훈 저격' 조기 지선 방불…때릴 수록 커지는 역설도>라며 오세훈은 건재하다고 응원하는 듯하다. 조선일보의 논설위원은 <종묘, 이 정부 美感은 왜 이리 촌스러운가>라며 종묘 고층 빌딩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 ‘촌스러운 미의식과 고정관념’이라고 호되게 나무란다.
조선일보는 <여권의 ‘오세훈 시장 스토킹’>이라는 사설의 바로 위에 <대장동 일당 내놓고 돈 잔치, 불의가 판치는 나라>라는 다른 사설을 실었다. 이렇듯 혈세 낭비를 따지는 이들이지만 한강버스에 들어간 1700억 원, 특혜졸속에 안전이 우려되는 서울시의 한강버스 예산은 푼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듯하다.
급조된 한강 르네상스, 서울 르네상스로 가는 길에 갈등은 생산되고 증폭된다. 국가유산청장이 종묘에서 종묘 앞 개발 규제 완화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 세운 상가 지역 주민들이 개발 추진을 촉구하며 항의를 했다. 이제 조선이 아닌 서울의 것, 서울의 한 자랑이 된 종묘가 재산권 갈등 사안으로 돼버리고 있다. 이렇게 서울의 불안과 갈등은 생산되고 증폭된다.
1966년부터 1970년까지 서울시장으로 있으면서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김현옥은 대규모 토목 사업을 초고속으로 밀어붙였다. 그가 바로 세운상가를 건설했던 이인데, 그는 무허가 판자촌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가지를 건설해 서울을 '현대화된 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안전점검, 정밀한 계획 등 필수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일단 건설부터 하고 보는 식의 주먹구구식 행정이 만연했다. 그런 강행 속에서 완공된 지 4개월밖에 안 된 아파트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33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것이 ‘현대화된 서울’의 이면이었다.
한강버스는 오 시장이 유럽 시찰 도중 얻은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서울의 품격·문화가 흐르는 '한강르네상스'의 정점"으로 만들려 했다는데, 그가 목표로 하는 것은 한강 르네상스인가 '오세훈 르네상스'인가. 그러나 그가 무엇보다 알아야 할 것은 서울은 오래된 도시라는 것, 10여 년의 시간, 그 짧은 시간에 오세훈은 자신의 흔적을 뚜렷이 남기려는 것인 듯하다. 흔적이 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흔적에서 품격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가 떠나면 곧 지워야 할 흔적이 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 흔적을 지우는 데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것이 나오는 법이다. 오래된 것들의 축적이 진정 새로운 것을 낳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새로운 것이 오래된 것이 되지는 않는다. 급하게 만들어진 새로운 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게다가 그렇게 급조된 새것은 진짜 새로운 것이 되지도 못한다. 오세훈 자신이 알아야 할 사실이다. 그리고, 한강버스를 오히려 오세훈을 위한 '쾌속선'으로 만들어주고, 종묘 앞 고층 빌딩을 그를 위한 승전탑쯤으로 만들어주는 언론이 알아야 할 '오래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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