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각의 자기동일성과 있음의 자기동일성에 대하여지난 시간에 우리는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철학자들이 어떻게 대답하려 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파르메니데스는 없음의 불가능성을 통해 아무것도 없다는 사태가 그 자체로서 불합리하고 불가능한 것이므로 ‘아무것도 없지 않고’라는 전제에 입각하고 있는 ‘왜 무엇인가 있는가?’라는 물음이 애당초 불가능한 것임을 보였습니다.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와 달리 없음을 부정할 수 없는 현상으로서 인정했지만, 그는 없음이 있음 그 자체의 반대가 아니라, 또 다른 있
1. 없음의 가능성과 있음의 우연성지난번 강의에서 우리는 있음이 없음 속에 있음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것은 없음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야말로 있음의 가장 근원적인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없음 속에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이 있으면서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모든 것이 아예 처음부터 없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지금 있는 모든 것이 없어질 수 있고 또 없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는 존재자의 비존재의 가능성이라고 이름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비존재
1. 존재의 자기거리에 대하여지난번 강의에서 우리는 형이상학이 존재를 탐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존재의 자기거리를 해명하는 것입니다. 자기 거리란 말 그대로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떨어져 있다는 것은 공간적 비유입니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표현하자면, 차이와 다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거리란 자기가 자기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같은 사태를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자기가 자기 아닌 것과 같이 있다고 말
1. 전체에서 존재의 개념으로지금까지 우리는 형이상학이라는 학문의 기본적 성격과 그런 학문이 태동하게 된 정신적 지평을 살펴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개별 과학은 삼라만상 가운데 일부분을 떼어 그것의 원인을 고찰한다면, 형이상학은 전체의 원인과 근거를 탐구하는 보편 학문입니다. 이 학문이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적 인식을 지향하지 않고 반대로 이 학문이 그 자체로서 자기 목적적이라는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을 자유로운 학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자유로운 학문의 이념이 어떤 의미에서 자유인의 공동체에서 태동
1. 놀라움이 철학적 물음의 시작이다지난 시간에 우리는 과학적 인식과 철학적 지혜가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를 배웠습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두 가지 모두 원인과 근거에 대한 앎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인식이지만, 과학적 인식이 삼라만상의 특정한 부분을 탐구하는 인식이라면, 철학적 지혜는 전체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그렇다면 그 전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그리고 한갓 세계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우리 인간이 또는 여기 있는 내가 무슨 능력이나 권리로 그 전체를 인
1. ‘왜?’라고 묻는 용기에 대하여지난 시간에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경험과 인식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 차이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경험은 사실이 그러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지만, 인식은 그 사실이 왜 그러한지 원인을 아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같은 앎이라도 나타난 사실에 대한 앎이 경험이라면, 원인을 아는 것이 인식이라는 것입니다.그런 인식을 ‘에피스테메’(episteme)라고 불렀는데, 영어권 학자들은 대개 그것을 ‘knowledge’라고 번역합니다. 그리고 그런 인식 또는 지식의 체계를 오늘날
[일러두기]이번 글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형이상학 강의는 광주에 있는 철학 대안학교인 지혜학교 학생들에게 보내는 지상 강의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강의 내용은 내가 전남대학교 학생들을 위해 진행하는 강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여기서 굳이 고등학교 과정의 학생들을 상대로 형이상학 강의를 진행하는 이유는 철학의 모든 분야 가운데서도 가장 추상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형이상학에 대한 강의가 전문용어의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당신이 철학에 대해 그리고 그 중에서도 형이상학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1. 사회가 같이 알고 같이 애도해야 하는 죽음에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 처음 알려졌을 때, 내가 처음 접한 반응은 비난이었다. 에 글을 쓰는 것이 위선이라나 뭐라나. 내가 위선자라는 거야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 일이니까 그런 말에 발끈할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라는 매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제 처음 시작하는 인터넷 매체에 얼굴을 내미는 것만으로도 내가 위선자라고 비난받는 것일까?요새는 거의 매주 부고 문자를 받는다. 그런데 그 많은 부고 문자 가운데 내가 아는 사람의 부고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