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참정권 박탈, 민주주의 모범국가의 민낯
# 2024년, 생애 첫 투표를 앞둔 제자 4명에게 선거 관련 카톡을 보냈다는 이유로 재판받고 해직되어 27년 교직생활을 마감하게 된 교사
# 2025년, 같은 노조 동료였던 이가 총선 인재로 영입 되어 환영 논평 냈다는 이유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재판받고 3개월 정직처분 받은 교사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교사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교회나 절에는 가도 되지만 특정 정당활동은 안 된다고?
우리나라는 OECD 38개국 중 교사에게 정치기본권을 전면 박탈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다.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으로 세계 민주주의 모범국가 반열에 올라 전 세계 시민의 부러움과 기대를 받고 있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참정권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다. 참정권을 특정 직역 종사자라는 이유로 전면 부정하는 것은 정치적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교사는 학교 안에서 제자들을 만날 때는 물론 개인적 생활을 하는 학교 밖에서도 일체의 정치적 발언도 행동도 금지당하고 있다.
2개 항으로 구성된 교육기본법 제6조는 교육의 중립성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1항은 정치 중립성 조항이고, 2항은 종교 중립성 조항이다. 교사가 자신의 신앙을 전도하는 수단으로 교육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 이유로 교사의 신앙생활을 법으로 금지하지는 않는다.
교사가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교육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정당하다. 그러나 현행법은 바로 그 이유로 교사의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교사가 일요일에 교회나 성당, 절에 가는 것은 가능하나, 교사가 퇴근 후, 주말 혹은 방학 때 정당활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상하지 않나.
당연히 선거에 직접 출마하거나 근무 시간외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것,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내는 것도 교사에게는 모두 직을 걸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교육정책을 다루는 교육감 선거에 출마는커녕 찬반 의견을 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에서 교사는 시민이 아니다.
교실에서 정치를 다루지 않고 어떻게 민주시민을 길러내나
학생들 중 만 18세가 되어 투표권을 가진 아이들이 있고, 만 16세가 되어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는 제자들이 있는데도 정작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정당이나 선거 근처에 얼씬할 수 없다. 정당정치나 선거제도를 가르치는 교사는 아이들에게 단순한 지식소매상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교사의 가르침의 권위는 지식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당정치나 선거제도만이 문제는 아니다. 취업도, 세금 내는 일도, 군대 가는 것도, 동네에 도로가 뚫리는 것도, 유튜브 알고리즘을 이해하는 것도 모두 정치와 관련된 일이다. 그런데 교사 정치기본권을 박탈하는 논거인 교육의 정치중립성을 이유로 교실에서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다.
아이들은 그저 죽은 지식만을 배울 수 있을 뿐이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준비시켜주는 일이 교육이다. 정치적 문제를 다루기는커녕 언급하는 것조차 법적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는 현실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이해하고 준비할 수 있나.
대한민국 교실을 이렇게 만든 것은 박정희 군사독재 정부였다. 박정희 정부는 국민교육헌장과 유신헌법을 열심히 가르치게 하면서 정작 교사들에게는 그 외의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것 자체를 금지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건 교사들이 아니라 국가권력이었다.
아이들이 정치적 문해력을 갖는 것, 정치적으로 유능해지는 것, 민주시민 자질을 갖는 것을 두려워한 군사독재권력이 60년 넘게 교육의 정치중립성 해석을 왜곡했다. 그 결과 선거의 4대 원칙은 배웠지만, 앙상한 제도지식만 가진 채 투표장에 가야하는 생애 첫 유권자들이 양산되어 왔다. 민주시민 자질을 길러줘야 한다는 교육기본법은 현실에서 무참히 배반당하고 있다.
교육의 정치중립성은 국가권력으로부터 보장받아야 할 권리다. 교육의 정치중립성은 교사가 교실에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학생들에게 강요하거나 주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다. 전자는 무시하고, 후자를 교실에서 정치적 문제를 다루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살짝 비틀어 온갖 법들을 만들고, 법보다 단단한 통념으로 만든 결과 교사의 정치기본권 박탈과 정치교육 반대 현실이 되었다.
정치적 신념을 주입하는 것과 정치적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전혀 동의어가 아니다. 교실에서 정치적 문제를 다루기만 해도 강요와 주입이 일어난다는 논리는 박정희식 논법이다. 주입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논쟁하고, 판단하게 하는 것이 바로 정치중립성을 지키면서 이루어지는 정치교육이자 민주시민교육이다.
아이들 정치문해력 키우는 교육이 극우화 방지의 필수 요건
아동·청소년의 극우화를 걱정하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쏟아지고 있다. 여러 복합적 원인들이 있지만, 그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어도 교실에서 12년 동안 배우는 아이들이 정치문해력을 갖지 못한다면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보의 바다인 디지털 세상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시대에는 정치문해력을 기르는 교육이 더욱 필요하다.
논쟁적 방식으로 가르치고 주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수학습 원칙을 확립하고, 더 적극적인 정치문해력 교육을 해야 한다. 교육의 정치중립성을 교실의 탈정치로 해석하고 그에 근거해 교사 정치기본권을 원천 박탈하는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교사가 시민적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된 시민으로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도 시급하고, 필수적인 요구다.
다행히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시절 8개 교육공약 중 하나로 교사 정치기본권 보장을 약속했고,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지난 9월, 11월 초 두 번이나 교사 정치기본권 보장 필요성과 입법의지를 밝혔다. 이미 국회에는 이를 위한 법안들이 여럿 발의되어 있다. 민주당과 정부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안타깝지만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성인은 제대로 된 민주시민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우리 아이들도 그 길을 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이 62년 만에 찾아온 골든타임이다. 교사와 아이들, 그리하여 더 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교사 정치기본권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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