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상 재판] 변호인단, 유동규 진술 바꾸기 집중 추궁
돈 출처, 전달방법, 전달장소 모두 달라져
"거짓말 탄로 위기" 추궁에 "인격모독적 발언"
유동규 단독 밀실조사?…형소법 위반 가능성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2일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재판에서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이 검사와 3일간 '조서없는' 장시간 면담 뒤 갑자기 진술을 번복한 부분에 대해 집중 추궁이 이뤄졌다.
정 전 실장 변호인단(이하 변호인단)은 돈의 출처와 전달 장소, 전달 방법 등과 관련해 유동규 진술의 모순점을 파고들었고, 유동규는 "인격 모독적인 발언"이라고 법정에서 고성을 지르며 반발해 재판부로부터 제지를 당했다.
아울러 유동규는 검사가 쓰는 집무실(내실)에서 검찰수사관 없이 단독으로 조사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유동규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이는 '밀실 조사'가 진행된 것으로, 검찰이 현행 형사소송법을 위반한 것이 된다.
조서도 없이 검사와 3일간 면담…무슨 일이?
변호인단은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조병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정 전 실장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사건 공판에서 피의자 신문조서(이하 피신조서)에 나타난 유동규의 진술 번복 정황을 캐물었다.
변호인단은 "증인(유동규)이 2022년 10월 5일자 피신조서에서 정진상이 돈을 요구하지 않았는데 찾아가서 돈을 줬다고 했다"며 "이후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유동규는 "돈을 요구하지 않는데 어떻게 주겠냐"며 "사실은 돈이 요구됐다"고 반박했다.
2022년 10월 5일자 피신조서에 따르면 유동규는 검찰의 조사 과정에서 정 전 실장이 돈을 요구하지 않았는데 찾아가서 돈을 줬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2022년 10월 14~16일 3일 동안 검사 면담 뒤 작성된 10월 17일자 피신조서에서는 "정진상에게 전화를 해 돈이 마련됐다는 것을 이야기했고, 정진상이 집에 있다고 해서 자택으로 찾아가 전달했다"며 정 전 실장의 요구가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을 뒤집었다.
특히 '3일간의 면담'은 주목할 부분이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유동규의 진술이 바뀌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서울구치소 사실조회를 통해 확인한 유동규의 면담 조사 기간은 △10월 14일 7시간 10분 △10월 15일 9시간 55분 △10월 16일 6시간이다. 검사도 이날 공판에서 수사 기록 목록에 면담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조서도 없이 이처럼 장시간 면담을 진행한 것은 법조계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진술 변경에 검사의 회유는 없었는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유동규는 "검사가 없는 이야기를 하면 수사가 지연되니까, 제대로 해 달라고 했다"면서 회유는 없었다고 했다.
돈 전달 장소, 방법, 출처 등 진술 모두 번복
유동규의 진술 번복은 이뿐만이 아니다. 뇌물 사건에서는 돈의 전달 장소와 방법 등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유동규는 이에 대해 기존 진술을 완전히 뒤집었다. 공교롭게 모두 검사와의 3일간 면담 전후로 바뀌었다.
유동규는 2022년 10월 5일자 피신조서에서 2014년 4월쯤 정 전 실장의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 소재 아파트 5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서 주거지에서 5000만 원을 줬다고 진술했다. 또 계단식 아파트의 폐쇄회로(CC)TV를 피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5층을 걸어 올라갔다고 했다.
그러나 검찰의 현장 조사 결과, 정 전 실장이 2014년 당시 살았던 자택이 복도식 아파트였던 사실이 확인됐고, 검사와 3일간의 면담이 이뤄진 뒤 2022년 10월 17일자 피신조서에서 유동규는 정 전 실장이 거주하는 아파트 1층 현관 인근 '어두운 곳'에서 줬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정 전 실장 변호인단은 이에 대해 "검사로부터 복도식 아파트라고 이야기를 듣고 나서 진술을 변경했냐"고 추궁했고, 유동규는 "제가 검사들이랑 이런 부분 맞췄다면 조서에 빈틈이 없었을 것"이라며 "그 당시 생각이 혼재돼 있었다"고 했다.
검찰 측은 전달 장소가 바뀐 것과 관련, "처음에 5층에 올라가서 계단을 통해서 올라갔다고 했고, 저희가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니 유동규가 '여기는 아닌데요'라고 한 것이지, 사실 관계가 다른 대안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돈 전달 장소뿐 아니라 전달 방법도 진술이 번복됐다. 유동규는 2022년 10월 5일자 피신조서에서 "편의점에서 과자를 현금으로 사면서 검은 비닐봉투 2장을 받아 봉투가 찢어지지 않게 2장을 겹친 다음 5000만 원을 놓고 그 위에 과자를 올린 후 정진상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3일간 면담 뒤 작성된 10월 17일자 피신조서에서 '검은 비닐봉투'에서 '쇼핑백'으로 바뀌었다. 유동규는 당시 검사가 "5000만 원이 들어 있는 '쇼핑백'을 그대로 정진상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는데, 사실대로 진술한 것이냐"고 묻자 "맞다"고 답했다. 검은 비닐봉투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진 것이다.
정 전 실장 변호인단은 돈 전달 장소와 방법 등이 변경된 것과 관련, "결정적인 진술인데 번복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고, 유동규는 "2019년에 정진상 집에 올라가서 돈 줬던 부분하고 헷갈렸는데, 어느 정도 기억을 찾아서 다시 말씀드린 것"이라고 했다. 진술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뇌물 사건에서 중요한 돈의 출처도 진술이 뒤바뀌었다. 유동규는 2022년 10월 5일자와 10월 6일자 피신조서에서 "총 1억 5000만 원을 김만배로부터 받아, 김용에게 1억 원, 정진상에게 5000만 원을 전달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문제의 면담이 이뤄지기 하루 전인 10월 13일자 피신조서에서 "지난 조사에서는 김만배로부터 받았다고 말씀드렸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남욱으로부터도 1억 원 정도를 받은 것 같다. 나머지 5000만 원은 남욱 또는 김만배로부터 받은 것 같다"고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
정 전 실장 변호인단은 "정 전 실장에게 줬다는 5000만 원 출처가 김만배에서 김만배 또는 남욱으로 바뀌고, 법정에서 김만배로 변경됐는데, 수시로 (진술을) 변경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졌고, 유동규는 "잘 모르겠다"며 "돈을 전달한 부분, 장면만 기억난다"고 했다.
점입가경 유동규 증언…갈수록 뒤죽박죽
이 같은 뒤죽박죽 증언은 유동규가 밝혔듯이 '2019년' 사건과 헷갈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검사의 공소장에 따르면 유동규는 2019년 9월쯤 정 전 실장의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아파트 5층을 계단으로 올라 현금 3000만 원을 전달했다.
2019년 사건은 앞서 밝힌 2014년 4월 5000만 원 사건과는 완전히 다른 건이다. 하지만 상당 부분 두 사건의 진술이 겹친다. 유동규는 2019년 3000만 원을 비닐봉투에 담아줬다고 진술했다. 피신조서에서 사라진 2014년 '비닐봉투 진술'이 5년 뒤인 2019년 사건 진술에서 다시 등장한 것이다.
또한 아파트 5층 계단이라고 했다가 1층 현관 앞으로 바뀐 2014년 사건 진술 역시 2019년 사건에서 5층 계단으로 재등장한다. 이에 변호인단은 유동규가 허위로 진술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고, 진술의 신빙성을 집중 추궁했다.
변호인단은 "2019년도엔 검은 비닐봉지인가"라고 물었고, 유동규는 "흰색 혹은 검은색 둘 중 하나"라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2014년 검은 비닐봉투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2019년 기억이 안 난다는 유동규의 모순에 대해 지적했다.
이날 유동규는 공방 과정에서 변호인단이 "거짓말이 탄로 나 위기에 봉착했다" 등의 발언으로 몰아세우자 "인격 모독적 발언"이라며 격하게 반응했다. 그는 변호인단에게 "변호사님, 하나 좀 여쭤볼게요. 3주 전 주말에 뭘 드셨습니까?"라고 신경질적으로 물으며, 자신의 진술 번복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또 유동규는 피고인석에 앉은 정 전 실장을 보면서 "정진상 씨! 이렇게 해도 되겠느냐"고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아무 반응도 보내지 않았다. 그는 증언을 이어가다가 "마음이 너무 아프다"면서 호흡 곤란을 호소했고, 재판부는 결국 유동규의 고혈압 증세를 고려해 재판을 종료했다.
유동규 "검사 내실에서 조사받아"…형소법 위반?
한편 이날 유동규는 조서 없이 진행된 3일간의 면담과 관련, "검찰 수사관과 실무관과 냉장고도 있는 '조사실'에서 받았냐, 검사 단독으로 책상이 있는 '집무실'에서 받았냐"는 질문에 "집무실에서 받았다"고 답했다.
유동규는 변호인단이 "집무실에서 면담 조사를 받을 때 검찰 수사관이 입회 했느냐, 증인과 검사 두 사람 뿐이었냐"고 되묻자 "수사관들은 바깥 방에 있었고, 방 안에는 저랑 검사만 있었다"고 진술했다.
유동규와 검사만 있었다는 진술이 사실이라면, 현행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형사소송법은 밀실 조사를 통한 회유나 조작을 막기 위해 "검사가 피의자를 신문함에는 검찰청수사관 또는 서기관이나 서기를 참여하게 해야 한다(제243조)"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 측은 변호인단이 면담과 관련해 유동규를 추궁하자 "어떤 면담을 했는지 수사 기록 목록에 그 내용이 있다"고 했다. 또 "증인이 면담조사, 조사에 대해 알고 답하는 것인지, 구별하고 답하는 것인지 고려해야 할 것 같다"며 유동규의 발언을 자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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