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의 GPU 26만 장에 마냥 환호만 할 건가
AI데이터센터 운용에 들어가는 엄청난 전력 수요
핵 발전은 폐기물, 화력 발전은 기후문제 야기
재생에너지도 송전 문제 등 착한 에너지 아니야
결국 ‘AI 시대’는 생태 재앙 막지 못하고
우리 삶과 인간적 사회관계 암세포처럼 잠식할 것
불평등 심화하고 민주주의 위협할 가능성도
AI에 열광하기보다 만물 공생 사회 고민할 때
1990년대 이후 우리는 인터넷, 정보화, 정보통신혁명(ICT), 스마트폰, 차세대 로봇, 4차 산업혁명, 챗GPT, 인공지능(AI) 시대까지 숨가쁜 세상을 살고 있다.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사는 듯 끌려 다니는 건지 잘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조금 멈춰 서서 정신을 차려볼까 하면, 금세 또 새로운 아이템이 우리 눈길을 끌며 혼까지 앗아간다.
최근엔 한미 관세협상과 APEC 회의가 최신 아이템이다. ‘국익’과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는 ‘약탈적인’ 한미 관세협상에서 ‘그나마 최선’을 다했다며 안도감을 보인다. 윤석열과 국힘당의 내란 정국이 초래한 ‘비정상을 정상화’하려는 노력과 함께 ‘정상성을 일상화’하려는 이재명 국민주권 정부의 노력을 나는 진심으로 응원한다.
젠슨 황의 ‘통 큰’ 약속으로 장밋빛 꿈에 젖은 대한민국
그러나 바로 이런 마음 때문에 그 이면에 존재하는 ‘불편한 진실’도 외면하지 않고 짚고 넘어가려 한다. 예컨대, ‘젠슨 황의 26만 장 GPU’ 같은 얘기! GPU란 그래픽처리장치, 즉 인공지능(AI) 시대의 전략 자산으로, AI 개발에 필수다. 미국 엔비디아(NVIDIA)의 최고경영자 젠슨 황은 2025년 10월 31일 경주 APEC 회의장에서 이재명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등 한국 주요 기업 총수들 앞에서 최신 GPU 26만 장 공급이라는 ‘깜짝 선물’을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목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AI 수도’로 거듭나는 것”이라며, 엔비디아의 적극적 동참과 투자를 당부했다. 이를 본 국민 대다수는 박수를 쳤다.
<중앙일보>도 11월 3일자 기사(‘26만장 약속’ 의미)에서 “고가지만 웃돈을 주고도 못 구한다. 세계 각국이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배경이다. 한국이 26만 장의 GPU를 확보함에 따라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GPU 확보국으로 발돋움하게 됐다”고 했다. 보수 언론 <중앙일보>가 이 정도라면 이재명 정부에 대한 ‘극찬’이다. 왜냐하면 AI 개발에 필요한 GPU, 즉 인공지능(AI) 시대의 전략 자산을 확보하려는 국제 경쟁이 치열한데, 대통령 앞에서 젠슨 황이 ‘통 큰’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짜’가 아니다. GPU 1장이 최소 5천만 원, 대체로 1억 원 수준이라 한다.
이번에 약속된 26만 장의 GPU는 정부가 최대 5만 장, 삼성전자, 현대차그룹, SK그룹이 각기 5만 장씩, 네이버클라우드가 6만 장을 사용할 예정이라 한다. 5만 장을 할당받는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GPU로 구동하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AI 팩토리를 구축한다’고 한다. “AI가 스스로 수집하고 판단하면서 반도체를 만든다”는 의미란다. 그리고 현대차그룹은 GPU 5만 장 확보로 엔비디아와 피지컬 AI(현실에서 물리적으로 작동하는 AI) 선점에 나선다 한다. 테슬라의 경우 엔비디아 GPU 12만 장과 자체 AI 칩을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만 좋았던 클린턴의 전 세계 차원 ‘디지털 격차’ 해소 전략
이런 얘기를 들으면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한국 경제에 새로운 비전이 생길 듯” 느끼거나 “우리네 삶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심지어 코스피 5000 시대가 아니라 1만 시대가 코앞에 다가설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그래서 우리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니다! 바로 여기서 나는 ‘AI 시대의 덫’이 군데군데 도사림을 느낀다. ‘무기상’ 젠슨 황이 ‘깜짝 선물’이 아닌 ‘대박 장사’를 했다는 뜻만은 아니다. 내 느낌은 한 때 미국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 빌 클린턴이 ‘디지털 격차’를 줄인다고 했을 때와 비슷하다. 그는 ‘디지털 격차’ 해소를 통해 미국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평등하고도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이란 기대를 품게 했다. 겉보기엔 대단히 진취적이고 세계 평화를 이룰 듯했다. 그러나 실상은?
내가 보기에 그 실상은, 한편으로 미국 컴퓨터 산업이나 디지털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었고, 다른 편으론 미국 내 실업자 해소를 위한 새로운 고용 전략이었다. 미국의 컴퓨터 산업은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해 온 세상에 컴퓨터와 인터넷 연결망을 깔게 되면서 핵심 부품이나 로열티(특허 사용료) 등을 매개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였다. 그리고 미국 내 실업자들은 해외로 나가 영어(원어민) 교사나 엔지니어 형태로 새 일자리를 얻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이 더 좋아진 면이 전혀 없진 않지만, 실은 우리네 ‘삶의 기술 의존도’ 내지 ‘삶의 식민화’가 더욱 깊어졌다. 이러한 의존도(중독성)나 식민화는 스마트폰과 더불어 더 심화했다. 그럼에도 자본 입장에서 그 약효가 끝나가자 자본은 또다시 새로운 ‘먹거리’ 공간을 찾아 나섰다. 그것이 곧 ‘AI 시대’라는 신상품이다.
내가 ‘인공지능 시대의 덫’을 얘기하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AI 시대의 덫인가?
‘전기 먹는 하마’ AI데이터센터
첫째, 상상 불가할 정도의 ‘전력 소비’다. AI 시스템은 자체 학습과 추론 시 대규모 데이터 처리와 고성능 컴퓨팅 능력이 요구되어 ‘데이터센터’ 내에 탑재된다. 따라서 AI 확대는 궁극적으로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모 증가를 부른다. 이 AI 데이터센터와 함께 연동되어 있는 전기자동차(EV), 난방·냉방(빌딩), 산업의 전기화 등도 전력 수요 확대 요인으로 작용한다.
‘International Energy Agency(IEA)’는 최근 발간한 ‘Global Energy Review 2025’에서 2024년 전 세계 전력 소비가 약 4.3 % 증가했으며, 이는 지난 10년 평균 증가율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수준이라 했다. 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은 2022년 기준 460TWh에서 2026년에는 1,050TWh로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 한다.
또, 글로벌 에너지 인텔리전스 기관인 ‘Rystad Energy’는 한 보고서에서 데이터센터, 전기자동차(EV), 난방·냉방 등 전력 수요 확대 요인으로 인해 향후 10년간 전 세계 전력 수요가 최대 30%까지 급증할 수 있다고 보았다. 미국의 경우,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 전력소비가 현재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 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는 2022년 9월 기준 147개소에서 2029년엔 784개소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같은 기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역시 1.8GW에서 2029년 41.5GW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갈수록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커질 터인데, 핵발전소 하나가 1GW의 전력을 생산한다고 보면 향후 초대형 데이터센터 하나만 해도 7개의 핵발전소가 필요(7GW)할 것이란 견해도 있다. 한편, AI 데이터센터 하나가 ‘도시 100만 가구’에 맞먹는 전력 소비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그 정도로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다.
핵발전소로 전기 수요 충당한다면 핵폐기물은 어찌 할 건가
산업통상자원부의 예측처럼 2029년까지 신규 데이터센터 700여 개를 건설할 경우, 국내 데이터센터가 필요로 하는 전력 용량은 약 50GW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를 송전 과정의 전력 손실분(약 7%)까지 고려하면, 1GW급 핵발전소를 약 53기나 추가 건설해야 할 판이다.
지금도 한국은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암 유발 물질)인 사용 후 핵연료봉이 약 2만 톤, 개수로 약 23,000,000개나 쌓이고 있어 아주 골치 덩어리인데, 향후 더 많은 원전을 건설한다는 건 거의 ‘자살 테러’ 수준이 될 것이다. (원래 사용 후 핵연료봉은 고준위 방사선이 반감기가 될 때까지 지하 500미터 이하에서 무려 10만~30만 년 동안 묻어 두어야 할 정도다. 이는 사용 후 핵연료의 독성이 천연 우라늄 수준으로 감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토록 길기 때문이다. 국내엔 그런 저장소가 없다. 저장소 하나 건설에도 무려 30년 이상 걸린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전체 에너지 생산의 10%도 안 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결국 화석에너지와 온실가스, 기후위기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는 결론이다.)
또 다른 큰 문제는 신규 데이터센터 중 약 85%가 수도권에 지어질 계획이란 점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전력 공급처인 발전원이 전국 각지, 특히 동·서·남부의 해안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력의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에 ‘에너지 고속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과 들, 마을을 지나는 ‘전력계통’(송전선, 송전탑, 변전소, 전력망 등)을 깔아야 한다.
재생에너지도 해결책 될 수 없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은 <녹색평론> 188호(2024년 겨울)에서 전북 서남권 해상풍력과 전남 신안 해상풍력 단지의 전기(신재생에너지)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문제와 관련, “재생에너지 개발주의”가 지배한다고 비판하며, 재생에너지 자체를 “착한 에너지라 보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우리는 ‘밀양 송전탑 사태’를 통해 잘 알듯, 고압 전력의 수송은 복잡한 사회생태적 갈등을 야기한다. 주민 설득을 위한 사실상의 뇌물 제공과 마을 내 갈등 조장, 좌절한 자들의 저항과 자살 행렬, 농지와 산림 파괴 등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식으로 ‘AI 시대’는 갈수록 천문학적인 전력을 필요로 하기에 생태 파괴를 더 가속화한다. 이미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바, 산과 나무, 숲이 파괴될수록 조류 독감(AI)이나 코로나 팬데믹(COVID19) 같은 재앙이 우리를 덮친다. 그리하여 ‘AI(인공지능) 시대’를 맹신하게 되면 또 다른 ‘AI(조류 독감) 사태’까지 부를 수 있다. AI의 이상한 자기증식!
결국, ‘AI 시대’와 더불어 급증하는 전력 수요, 이를 위한 천문학적 규모의 전력 생산은 사회적, 생태적 재앙이 될 수 있다. 『AI 시대, 인간의 경쟁력』을 쓴 강창재 작가 역시 최근 한 특강에서 “최근에 AI 흐름에 약간 지체(lag)가 생긴 까닭은 무엇보다 전력 문제 때문”이라 했다.
대규모 전력 생산에 장애가 생긴 것도 문제지만, 그 해결을 위해 원전이건 LNG(메탄)발전소건 신재생에너지(태양광, 풍력) 생산이건 AI 시대를 선도한다는 명분 아래 대규모로 접근한다면 사회갈등, 지역갈등, 자연파괴 및 기후위기까지 더욱 심화한다. <녹색평론> 191호(2025년 가을) 속 김회권 숭실대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3년 동안 인류는 7%의 탄소배출 감량에 성공”했다고 지적한다. 그 함의는, 기후위기 등 생태재앙을 줄이려면 ‘AI 시대’가 아니라 차라리 더 강한 팬데믹이나 경제공황이 와야 ‘깨몽’이 된다는 것!
나 모르게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인공지능 담론
둘째, 온 세상이 지당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인공지능 시대’는 우리의 삶 자체에 ‘트로이 목마’가 될 수 있다. 우선, 인공지능 담론의 생산이나 추진 자체가 결코 민주적이지 않다. 자본과 정부가 ‘밀실에서’ 협의를 벌이고 결정을 해서 발표하면 국민들은 그저 안방 뉴스를 통해 ‘그런가 보다’ 하고 입만 벌리고 시청하며 박수를 칠 뿐이다. 그 와중에 국민들 혈세가 어떻게 쓰이는지도 잘 모른다. ‘그저 나라 경제발전에, 경제성장에 잘 쓰이겠지’ 할 뿐이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등학생 사이에 ‘미래 교육’의 이름으로 코딩 교육이 유행했다. 너도 나도 요즘은 코딩 교육을 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질 것이란 두려움이 강했다. 그러나 이제는 코딩조차 AI가 다 해낼 거라 한다. 코딩 교육이 ‘갑자기’ 무용지물이 됐다. 아이들은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것, 잘 하는 것, 의미 있다고 느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자아 계발이나 꿈을 키우기보다 ‘세상’이 하라는 것만 하다가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다.
초점 잃은 눈으로 거리 떠도는 ‘잉여인간들’
무엇보다 걱정되는 점은 AI가 온 세상에 퍼질수록, 그리고 우리네 일상생활에 침투할수록 인간 스스로 ‘잉여인간’이 돼 버린다는 것이다. 일자리부터 보면, 은행에서 통용되는 ATM 기계 한 대가 약 35명의 인력을 절약한다고 했다. 같은 논리로 AI 도입으로 사라지는 직업들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물론, 나는 지금 당장 상당수 판사나 검사, 변호사, 정치가, 행정가들을 AI로 대체하는 데 찬성한다. 단, 이재명 대통령은 제외!)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2500만 명에 가까운데, 그 중 절반이 AI 도입으로 인해 ‘잉여인간’이 되어 눈에 초점을 잃은 채 거리를 떠돌아다닌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 (물론 ‘잉여’ 아닌 ‘필요인간’(인재)조차 자본에게 일시적으로만 유용할 뿐, 삶의 의미 자체를 상실한 경우가 많다.)
나아가 AI 같은 고도의 기계는 이제 인간의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 특히 판단과 선택의 능력까지 상당 정도 대체하게 된다. 최근엔 슬프고 우울한 사람을 ‘위로’하는 AI까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적 친밀성이나 유대감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고 서로 격려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 나아가 온 세상이 보다 평화롭고 서로 존중하며 누구나 존재 그 자체로 자부심을 누리며 사는 세상 아닐까? 특히, 우리의 아이들이 나름의 잠재력과 개성, 창의성을 아무 거리낌 없이 발휘하고 생계 걱정 없이 자아 성취 및 사회 기여를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일 것이다.
은연중에 자본과 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AI 시대’는 이런 식으로 ‘트로이 목마’가 되어 우리네 삶 전반과 인간적인 사회관계를 암세포처럼 잠식할 것이다. “귀찮은 일은 모두 AI에게 맡기고 사람들은 여가나 즐기며 사는”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또 속으면 곤란하다.
계층 간 불평등, 양극화가 인공지능 시대라고 다를까?
셋째, ‘AI 시대’는 세계적 차원은 물론 일국 차원에서도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가속화할 위험이 크다. AI 기술의 ‘선도적’ 발전은 생산성 향상과 경제 성장을 가져올 수 있지만, 그 혜택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일자리 양극화까지 초래하기 쉽다. 특히, AI 기술 개발 및 도입에는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이 필요하므로, 소수의 거대 기술 기업이나 선진국에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AI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계층이나 국가는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는 반면, 그렇지 못한 계층이나 국가는 뒤처지게 되어 국가 간, 계층 간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
예컨대, 지난 9월 11일 경주시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 2025 with APEC 경북’에 연사로 참여한 토비 월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는, 의료·교육 분야에서의 혁신 가능성과 관련, 영국의 ‘유전자은행’ 사례처럼 “수십만 명의 유전자 정보를 AI가 분석해 암 등 질환을 조기에 진단하”거나 AI 기반 ‘온라인 튜터링’ 사례처럼 “적절히 활용하면 교육의 질을 높이고 접근성을 확대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인공지능(AI)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함에도 불구, 그 힘이 불평등을 심화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AI가 사람을 대체할 수 없는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 맥락을 두루 살피지 않고 자본 중심적으로 도입, 적용되는 경우, “AI가 몰고 올 가장 큰 위기는 불평등의 심화”라는 얘기다. 그리하여 월시 교수는 “소수 AI 기업이 단기간에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산업혁명 당시처럼 일부 기업에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청년 일자리 불안, 기존 직무 대체, 딥페이크·허위 정보 확산이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했다.
<한겨레>의 한귀영 기자도 에릭 브린욜프슨 스탠퍼드대 교수진의 연구를 인용, “인공지능에 많이 노출된 산업에서 22~25세 고용이 13% 감소, 소프트웨어 개발 청년층에선 약 20% 감소”를 지적했다. 또, 국제노동기구의 2025년 보고서는 “세계 고용의 25%가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위험에 노출되고, 고소득국의 경우 여성 고용의 약 10%가 매우 위험”하다 한다. AI의 실상과 허상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목표는 ‘강대국’ ‘선진국’ 아닌 ‘모두 행복한 나라’
흔히 우리는 ‘대한민국 인터넷 강국’ 또는 ‘AI 선도국가’ 등의 구호를 들으며, 마치 한국이 “이제는 후진국 이미지를 벗고 제대로 선진국이 되는구나”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강대국-약소국 또는 선진국-후진국 패러다임을 벗어나 우리 나름의 속도와 특성을 살려 인간다운 사회, 만물 공생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정 과제가 되어야 한다. (참고로, 1972년부터 부탄은 ‘국민총생산’ 아닌 ‘국민총행복’을 국정 지표로 내걸었다.) 세계적 환경이나 자본주의적 조건들에 경쟁적으로 ‘약삭빠르게 적응하는’ 것만이 우리의 살 길은 아니다 자칫, 몸도 마음도 관계도 미래도 모두 망치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선 안 되지 않겠는가?
너도 나도 외쳐대는 ‘인공지능 시대’, 그리고 ‘반도체 강국’은 솔직히 ‘물과 전기를 먹는 하마’다. 그리고 그 외침의 목적은 결국 자본의 자기증식일 뿐, 결코 인간다운 사회가 아니다. 한재각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이 <녹색평론> 186호(2024년 여름)에서 지적했듯, 재생에너지 생산이란 미명 아래 진행되는 해상풍력사업의 90%가 민간발전사인데, 이들은 맥쿼리나 블랙록과 같은 해외자본(사모펀드)이나 에퀴노르와 오스테드 같은 노르웨이, 덴마크의 기업이 다수를 차지한다. 여기서, 물과 전기를 공급하는 한국의 농어촌(시골, 자연)은 자본을 위한 에너지 식민지가 아님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기후위기에 대비하는) 참된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라도 ‘공공재생에너지’ 방향으로 가야 한다.
김창익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AI 대세론 및 전력 수요 등과 관련한) “지금의 상황은 브레이크 없이 언덕을 내려가는 자전거와 같다. 멈춰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고 한 바 있다. 여기서 나는, 과연 대한민국이 멈출 수 없다며 ‘끝’까지 언덕 아래로 달려갈 것인지, 아니면 좀 불편·위험하더라도 사력을 다해 지금 멈출 것인지, 풀뿌리 민초들이 민주적 숙의(예, ‘AI시민의회’)를 통해 결정하면 좋겠다고 본다. 성장보다 생존이 더 급하지 않은가?
‘국민주권’ 위해서라도 ‘국민생존’을 먼저 챙겨야 할 때
‘국민주권 정부’를 자임하는 이재명 정부가 ‘비정상의 정상화’와 ‘정상성의 일상화’와 더불어 지금 절실히 추진해야 할 것은, ‘정상성 속의 비정상 지양’ 즉, 비인간 존재까지 아우르는 만물 평등 세상을 위한 ‘사회적, 생태적, 심리적 대(大)전환’이다. 실은 ‘국민주권’을 위해서라도 ‘국민생존’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일례로, AI미래기획수석 밑에 기후환경에너지 비서관을 둘 것이 아니라 기후환경에너지수석 아래에 AI미래기획 비서관을 둬야 한다. 무한한 자본축적이라는 ‘영원한 불만족’의 중독성 경제 대신 소박하더라도 건강하게 더불어 살며 ‘충분함과 감사함’을 느낄 줄 아는 공생성 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다.
봄철 산불, 여름철 홍수·산사태를 겪을 때만 해도 ‘기후 경각심’이 쫌 생겼다. 그러나 가을·겨울이 올수록 ‘기후 망각증’이 다시 도진다. ‘죽도 밥도 아닌’ 온실가스 감축 목표 ‘53~61%’가 그 한 증거다. 대신 ‘젠슨 황의 26만 장’에 환호성 일색이다. 이러다 ‘공멸’을 앞당길까 두렵다. 과연 우리는 ‘AI 시대의 덫’을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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