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징계법 폐지, 일시 '공갈포'여선 안 돼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된, 1970년 3월 일본 적군파의 요도호 비행기 납치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굿뉴스’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직업병의 발로인지 모르지만, 영화의 전체 줄거리보다 이 영화의 도입부에 주인공의 한 사람으로 나오는 ‘거시기’(설경구 역)가 내뱉은 다음과 같은 발언이 더욱 강렬하게 머릿속에 꽂혔습니다.

“연관성은 없다가도 생기고, 있다가도 사라지는 거잖아. 필요한 것은 약간의 창의력과 그것을 믿으려는 인간의 의지지.”

전혀 관계없는 사건들도 ‘약간의 창의력’과 ‘그것을 믿으려는 인간의 의지’만 잘 버무려 내놓으면,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쉽게 조작해 낼 수 있다는 뜻의 말입니다. 이 영화가 그런 식의 기술을 동원해 만들어진 산물이라고, 감독이 주인공의 입을 통해 미리 관객에 귀띔해 주는 일종의 ‘영화 사용설명서’인 셈입니다.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 국정감사에서 엄희준 광주고검 검사가 의원 질의에 답변하기 위해 문지석 광주고검 부장검사 앞을 지나고 있다. 2025.10.23 연합뉴스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 국정감사에서 엄희준 광주고검 검사가 의원 질의에 답변하기 위해 문지석 광주고검 부장검사 앞을 지나고 있다. 2025.10.23 연합뉴스

영화 ‘굿뉴스’ 창작 방식 빼닮은 ‘대장동 검사’ 반발 소동

‘대장동 재판 항소 포기’에 대한 일부 검사들의 집단 반발 소동을 보면서, 그 영화 속의 대사가 퍼뜩 떠올랐습니다. 검사들이 제기하는 주장이 영화 ‘굿뉴스’를 창작한 수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에는 대장동 하면 무조건 이재명 대통령의 비리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4명에 1명가량 존재하는 게 현실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영구 집권을 위해 북한과 전쟁을 획책하려 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내란 우두머리를 여전히 옹호하며 그의 재림을 외치는 사람들의 분포와 대략 일치합니다. 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대장동은 곧 이재명 비리’라고 믿을 의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영화의 작법처럼 사실에 약간의 거짓을 섞는 묘수를 부리면 이재명 대통령과 전혀 관련 없는 사건도 마치 이 대통령과 관계된 것인 양 조작하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겠죠. 꼭 영화감독이 아니더라도 이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해 볼 만한 ‘투자’일 겁니다. ‘대장동 항소 포기 파동’은 이재명 정권의 출범과 함께 해체 위기에 처한 검찰이 그런 의도로 가지고 만든 한 편의 ‘정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대장동 재판은, 이 대통령이 기소된 대장동 재판과 별개의 재판입니다. 이 대통령과 관련된 재판은 대통령 당선과 함께 헌법 규정에 따라 중단돼 있습니다. 즉, 이번에 문제가 된 대장동 재판은 이 대통령에 대한 것이 아닐뿐더러 이 대통령 재판에 직접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일부 정치 검사들은 둘 다 대장동 사건 재판이라는 공통점에 착안해, 교묘한 논리와 숫자를 들먹이며, 마치 이 대통령이 자신의 죄를 피하려고 항소 포기를 지시한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려고 몰아가려 했습니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 국정감사에서 기관 업무 보고를 하고 있다. 2025.10.27 연합뉴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 국정감사에서 기관 업무 보고를 하고 있다. 2025.10.27 연합뉴스

디지털혁명과 시민의 각성이 ‘검찰 소란극’ 무력화

겉으로는 항소 포기를 결정한 노만석 검찰총장 대행을 공격하는 체하며 실제론 이 대통령에 흠집을 내려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법을 구사한 거죠. 모든 사안을 ‘기-승-전-이재명’으로 재단하는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과 내란 동조 정당인 국민의힘도 원군으로 나서며 힘을 보탰습니다. 하지만 ‘대장동 비리 주범 이재명’이라는 틀 짓기를 복원하려는 그들의 모략은 기대했던 흥행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믿으려는 의지와 고도의 창의력에 더해 성능 좋은 확성기까지 가세했는데도 말입니다.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악행도 불사해 왔던 검찰의 행태를 똑똑한 시민들이 간파하고 있는 터에 디지털혁명으로 탄생한 작고 강한 언론들이 조중동의 선동을 효과적으로 견제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번 소동이 한 차례 흥행 실패로 끝났다고 해서 이번 사건을 주도한 정치 검사들이 쉬이 물러설 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동안의 행태로 볼 때 오히려 다음의 호기를 엿보며 칼을 갈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소동은 이 대통령을 부패 정치인으로 엮으려고 몸부림쳤던 강백신 검사를 비롯한 대장동 2기 수사팀을 중심으로 한 친윤 검사들이 선도했습니다. 그리고 18명의 검사장을 비롯한 한 무리의 정치 검사들이 가세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협박·증거 조작 등의 불법 수사가 불거져 곤경에 빠진 대장동 2기 수사팀이 깃발을 들자, 검찰 개혁에 불만을 품고 있던 정치 검사들이 ‘이때다’ 하고 달려들며 소동을 키웠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치검사 징계하라!"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11.13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치검사 징계하라!"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11.13 연합뉴스

준사법적 기관 특혜 악용해 무소불위 행동

정치 공작·여론 공작을 방불케 하는 검사들의 이런 집단행동은, 다른 부처의 공무원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입니다. 일반 공무원들이라면 최소한 밥줄을 걸고 해야 할 짓을, 검사들은 초임 검사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내갈기고 휘두릅니다. 검사들이 특별히 정의감이 넘치고 용기가 있는 자들이고 일반 공무원들은 졸장부 소인배라서 이런 행동의 차이가 나오는 게 절대 아닙니다. 기소와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들에게 외압에 흔들리지 말고 ‘준사법 기관’으로서 역할을 잘하라고 만들어준 특권 중 하나인 검사징계법을, 검사들이 엉뚱하게 사익과 조직 이익을 위해 악용한 데서 나오는 겁니다. 정치 발언과 집단행동을 해도 조직 이익에 맞으면 징계를 받기는커녕 조직 안에서 영웅 대접까지 받으니 무서워할 일이 없는 거죠.

일반 부처의 고위 공무원 출신자 몇 명에게 이번 검사들의 소동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니, 반응이 한결같았습니다. “지들이 무슨 용가리 통뼈라도 되느냐”라는 얘기였습니다. 똑같이 고시를 통해 공무원이 됐는데도 시작부터 직급 차이가 나고 외청 조직인데도 차관급이 50여 명이나 되는 것도 수긍하기 어렵지만, 집단행동이나 정치적 발언을 공공연히 해도 징계조차 받지 않는 것부터 확 뜯어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자신들이라면 내부망에 비판적인 글을 쓴다 해도 밖으로 공개하는 건 징계가 무서워 엄두도 못 낸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심지어 교사들이 온라인에 게시된 정치적인 글에 댓글과 ‘좋아요’ 표시를 달았다고 정치 중립 의무 위반이니 집단행동이니 하면서 기소까지 하면서 자신들은 더한 뭔 짓을 해도 성역 대우받는 게 가당키나 하냐고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검사징계법 폐지로 ‘특권 검사’에서 ‘국민 봉사자’로 변신시켜야

 

더불어민주당 김현정(왼쪽부터)·백승아·문금주 원내대변인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검찰청법·검사징계법 개정안을 접수하고 있다. 2025.11.14 [공동취재]
더불어민주당 김현정(왼쪽부터)·백승아·문금주 원내대변인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검찰청법·검사징계법 개정안을 접수하고 있다. 2025.11.14 [공동취재]

마침, 이번 일부 정치 검사들의 소란극을 계기로 민주당이 검사들이 어떤 악행을 해도 면죄부를 주는 기능을 해왔던 검사징계법을 폐지하고, 검사도 일반 공무원처럼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찰청법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헌법 제7조 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장동 재판 항소 포기 과정에서 벌어진 검사들의 난동은, 검사들이 국민 전체가 아니라 검찰 조직에 대한 봉사자로, 국민이 아니라 검찰 조직에 대하여 책임지는 존재라는 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담당하는 준사법적 기관이라고 해도 헌법과 공무원법이 규정하는 공무원의 일반적 의무나 도리를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준사법적 기관의 특혜’를 공익이 아니라 조직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악용한다면 회수하는 게 당연합니다. 이번 검사징계법 폐지와 검찰청법 개정은 공무원 중에서도 특권적 지위를 누렸던 ‘용가리 통뼈’ 검사를 ‘헌법상의 공무원’의 위치로 돌려놓는 작업입니다. 이번 검사징계법 폐지가 검사의 반란을 진압하려는 일시적인 공갈포가 아니라 특권 조직 검찰을 국민의 진정한 봉사기관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는 첫걸음이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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