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핵화’ 철회할 용기가 문제 해결 출발점
핵잠, 미국 인태 지역 방위 분담 전략 매개체?
한미 관세협상 타결을 문서화한 팩트시트 발표(11.14) 전후로, 한반도 주변을 둘러싼 지정학적 변화의 파고가 거세다. 다카이치 내각의 일본은 대만 유사시 무력 개입을 시사하며 중국을 자극해, 2017년 한국 사드(THADD)사태 때 이상의 중국의 (경제)공격을 도발했다. 팩트시트는 미국 관세인하 대가로 제시된 한국의 대미투자 확약이 본질임에도, 이면의 한국의 방위비 증액 및 북한 비핵화, 대만 유사시 한국군 개입,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과 미군의 전략자산으로의 편입 등에 더 큰 관심이 쏠려있다. 때 마침 일본은 미국의 GDP 대비 5% 방위비 증액 요구에 호응하며 자위대 재무장, 심지어 핵잠수함 개발과 핵무장까지 시사한다. 북한은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상의 ‘북한 비핵화’를 직접 지목하며 대화 단절을 선언한다. 중국 일본 한국 동아시아 3국의 군사비 합계는 4200억 달러로 세계 최대 군사비 지출국 미국의 절반 수준에 육박했다. 트럼프 관세도발로 전 세계가 패닉에 빠지고 있지만, 솔직히 이제는 경쟁적 핵무장 운운되는 동아시아 군비확장이 더 무섭다. 결국 선택지는 두 개다. 트럼프 발 미국의 경제 도발과 군사전략 재편에 묻어갈 것인가, 암중에 다른 탈출구를 모색할 것인가.
한국이 짊어져야 할 총합 6763억 달러, 일본 EU 보다 많다
팩트시트, 문제의 주요 구절은 이렇다. 한미는 ‘동아시아 동맹에 대한 지역위협에 대해 미국의 재래식 억지 태세 강화’ ‘북한에 대한 연합재래식 방어를 주도하는데 필요한 군사력 강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일본과의 3국 파트너십 강화’ ‘대만해협 전역 평화와 안정유지, 양안문제의 현상유지에 대한 일방적 변화에 반대’ ‘123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에 따른 한국의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이어지는 과정을 지지’, ‘한국의 핵추진 공격잠수함 건조 승인‘, ’미국 조선소와 인력에 대한 투자… 한국에 미국선박을 건조할 가능성을 포함’,‘전시작전권 통제권의 전환을 위해 동맹협력 계속’ 등등이다. 이를 위해 한국은 2030년까지 미군 장비 구매 250억 달러 지출, 주한미군 방위분담금 330억 달러(47조원, 2024년 1.4조 원 대비 3.5배) 지원, 국방비 GDP의 3.5% 증액(630억 달러, 2024년 GDP대비 2.4% 447억 달러에서 183억 달러 증액, 46% 증가)의 조건이다.
7월 한미 관세협상 타결시 약정되었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1000억 달러 LNG 수입, 1500억 달러 기업투자, 합계 6000억달러 + 763억달러(250+330+183억 달러)=총 6763억 달러, 2024년 한국의 대미 흑자규모 556억 달러의 10배를 능가하는 규모다. 여기에 연간 200억 달러 현금 투자 10년 분할, 보증 등 여러 가지 투자방식이 복합되므로 딱 떨어지는 계산은 쉽지 않지만, 한 마디로 이 막대한 돈을 지불하고 트럼프의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얻어내는 국익의 실체는 무엇인가가 관건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대미수출 불확실성 제거, 상업적 합리성, 원금 회수 가능성 제고, 외환시장 부담 경감, 대미 진출 확대 등의 효과를 기대한다는 데 과연 그런가. 솔직히 미국은 한 푼도 투자하지 않으면서, 원리금 상환 전까지 5대5, 그 후 1대9 수익을 가져가는 분배 비율 불공평을 합리화하는 해석이라고 믿기에는 마뜩치 않다. 미국에 이를 지불하고 일본 EU 등에 대해 밀리지 않는 경쟁력을 얻는다는 논리는, 한국의 GDP 규모가 일본의 1/2.5, EU의 1/10에 불과한데, 각각 5500억 달러와 6000억 달러의 그들보다 비율상으로 더 많이 지불하면서도 별 차이 없는 결과라는 점에서 빈궁한 설명이다.
미국 현지투자에 따른 산업공동화와 실업 발생의 문제
다른 이유를 들자면 이른바 ‘마스가’라는 이름의 선박, 자동차, 반도체 현지투자 확대를 통한 대미진출 확대, 시장 선점론을 들 수 있다. 결론만 말하자면, 자동차 반도체 등 미국 현지투자 증대는 그 생산량만큼 대미 수출 감소 요인으로 국내의 산업공동화와 실업 증가라는 부산물을 남긴다. 가령 지난해 대미 자동차 수출 143만대 중 미국 현지투자 증설분 60만대(42%에 해당) 약정은 총 국내 생산량(413만대)의 14.5%를 대체하는 수준이며, 2025년 전반기 25% 상호관세로 인한 대미 자동차 수출 감소율 15%(6월)의 60%(관세율 25%→15% 하락)를 감안한 9% 감소율로 조정 후 계산(14.5%+9%)하면 대략 23.5%의 내국 생산 감축 또는 고용 삭감의 계산서가 도출된다. 즉 미국 대체 무역 경로가 개척되지 않으면 심각한 산업공동화와 실업을 유발한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2025년 10월 현재 대미 수출은 총 –16.1% 감소, 자동차 부품 –7.9% 가전 -20%, 철강 –24%이다. 반도체만 유일하게 35% 증가하였으나, 미국 현지공장이 2026∼27년경 준공될 때까지의 과도기 수출호황요인으로 보인다. 현지 AI 데이터센터 구축 반도체 공급이 정점에 이르는 2∼3년 뒤 시장 정체 요인, 즉 반도체 불황이 예고 되어있다.
자꾸 초치는 것 같지만, 낙관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미국의 낙후 조선산업을 대체한다는 희망의 마스가 프로젝트, 이른바 미국 조선업 현대화는 약속과 지원이라는 애매한 단어로 장식돼 실체가 모호하다. 주로 MRO(유지보수수리)와 공급망 탄력성 협력 강화라는 문구가 돋보일 뿐이다. MRO는 인건비가 주력인데, 그마저도 미국 인력 훈련 프로그램으로 대체된다. 미국 내 미국 선박 건조만 가능한 존스법은 여전하며, ‘한국에 미국 선박을 건조할 가능성’을 포함한 미국 상선과 전함 수 증대란, 실제 이루어진다면 중국 코앞의 미군 전력 전진기지화 될 수 있어, 중국의 신경을 자극한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팩트시트는 APEC, UN 연설에서 등장한 평화공존, 남북 신뢰화복을 위한 선제조치, END구상(핵동결 축소 비핵화)을 사실상 포기하는 공격적 용어 구사가 주류이다. 한마디로 당분간 트럼프-김정은 회동, 또는 남북회담 급진전도 장담하기 어렵다. 상황을 이렇게 만들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전작권 환수마저 희망 사항 아닌가
팩트시트의 시나리오를 따라가면, 지역 위협에 대한 미국의 재래식 억지 태세 강화에 편입해서, 북한에 대한 연합재래식 방어를 주도하는데 필요한 군사력 강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주장하여 긴장강화, 일본과의 3국 파트너십 강화로 이제까지 유례없던 한일동맹을 넘보며, 유사시 양안문제의 현상유지에 대한 일방적 변화(대만 침공)에 반대하여, 한국과 관계없는 대만해협 전역 평화와 안정 유지 개입 여지로 중국과 충돌한다. 미국의 법적 요건에 맞춘 123 협정에 따라 민간 우라늄 저농축 및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며, 핵추진 공격잠수함을 장소 미정의 장소에서 건조한다. 아마도 이 대목에서 한국 측 궁극의 노림수는 전작권 회수에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면서라도 주권인 전작권을 돌려받는 노림수라면 괜찮은 그림이다. 이재명 정부는 대선 시기 때부터 수차례 임기 내 전작권 회수를 언급하였고, 이번 팩트시트에서도 전작권 조항이 등재되었으므로 이 가설에 암중모색이라는 희망을 걸어 볼만하다.
물론 현실은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전작권 회수 시나리오가 본격 가동되었다는 신호는 감지되지 않으며, 펙트시트에는 시간 명기없이 전환을 위해 협력 계속이라는 모호한 표현 한 줄만 덜렁 올라있을 뿐이다. 현실은 현재 2단계에 머무르고 최종 3단계는 오리무중이며, 그걸 달성해 설령 전작권을 환수하더라도 한미일 연합사(3국 파트너십)가 새로 창설되고 지휘관계를 구속받을 가능성이 크며, 이 구도대로라면 전작권 회수와 무관하게 미 국방전략검토보고서(NDS)에 따른 대 중국전을 대상으로 하는 인태평양 전략을 광역적으로 수행하는 확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팩트시트는 미국 인태평양전략구도 위주 설계이며, 균형있는 동북아질서를 지향하지 않는다.
미국 시장을 분리하는 이원화 정책이란 선택지
아마도 이 팩트시트 시나리오는 큰 위험이 실제하기 전까지 당분간 한국의 대외무역 및 군사 지정학의 기조를 구성할 것이다. 이 것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다른 선택지는 한 가지 뿐이다. 미국 시장을 따로 분리해서 국내 및 미국 외 국가 교역과 무관한 고립화된 독립시장으로 간주하고 미국 외 시장 개척으로 주력을 전환하는 것이다. 어차피 대미 수출은 철강 등 고관세품목의 사실상 포기, 나머지는 현지화 정도에 따라 대폭 축소될 것이며, 현지 생산품은 현지 위주로 소비되는 구조를 가질 것이다. 미국 현지는 고관세 수입가격 상승, 고인플레이션을 겪을 것이나, 시간이 지나면 물가 인상에 따른 소비 감소로 인플레이션 하락, 실업 증가가 예상된다. 대공황기 사례에 따르면 25% 고실업율과 자산디플레이션으로 전환된다.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따른 화폐 증가, 디지털 달러 재패권화 시도가 변수이나, 기록적인 최근 40일 셧다운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의 GDP 대비 130% 재정적자와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디지털화폐 시도가 얼마나 유효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의 현지 투자가 2025년 1%이하 성장을 극복하는 시점은 빨라야 한국 주요 제조업의 현지투자 생태계가 독자적으로 자리잡는 수년 후일 것이다. 미국시장은 당분간 한국 경제성장 변수에서 최소화, 아니면 알아서 과도기 AI 반도체 공급의 자연성장으로 누락시키는 편이 낫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두 번째 선택지는 세계 시장 변화의 흐름에 맞추어 증가하는 교역국, BRICs 등 미국 제외 지역 위주로 산업전략을 재편시키는 것이다.
인태평양 지역 방위 분담 전략의 매개체 핵추진 잠수함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팩트시트 시나리오인 막대한 군비 증가로 상황은 반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찌기 폴 바란은 경제의 군사화 과정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예언한 바 있다. 즉 새로운 소비순환, 낭비구조로 전쟁과 군수자본을 활성화시키며 모두가 폭망할 때까지 이 처절한 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공격형 핵추진 잠수함 건조가 한국의 자주국방에 기여할지, 아니면 한반도 주변을 넘어 인태평양 미국 전략자산에 편입되어 세계적 군사갈등 위험구조에 올라설지 알 수 없다면, 최악을 가정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독재자들은 자신의 정권 지속을 위해 할 수 있다면 언제나 가장 간편한 수단, 무력을 동원한다. 지난 겨울 가슴 철렁한 내란사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지켜본 바 있다. 이러한 전쟁 시도가 더 이상 기획될 수 없는 구조의 확립이 이상적인 정부라면 선택할 옳은 방향 아니겠는가.
팩트시트는 미국이라는 기득권에 운명을 맏기는 편한 길을 그나마 차선책으로 선택했을지 모른다. 더 이상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전제하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미국 전횡 패권시대는 지나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라크전쟁 이후에도 미국은 온갖 전쟁에 개입하지만, 거의 대리전이고 전면전을 치루지 않는다. 그들의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은 낡고, 재정은 빈털터리다. 2024-25년 미국 국방전략지침(NDS)의 기조는 여기에 기반한다. 돈 덜 드는 방향으로 전환, 방어적 본토 수호, 인태평양 지역은 한국 일본 필리핀 호주를 잇는 방위분담 전략으로 전환이다. 그 매개체의 중심에 핵발전 잠수함의 건조 보급 승인, 그러나 핵연료 보급은 미국 본토에서만 공급되는 똑똑한 중층구조로 설계된다.
‘북한 비핵화’를 철회할 용기가 문제 해결 출발점
AI 대장주 엔비디아의 10월 성적 우수, 트럼프의 반도체 대 중국 관세 100% 미부과상태 지속이라는 두 가지 소식이 있다. 미중 경제 갈등 속에서도 트럼프가 중국을 한국처럼 휘두르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중국의 희토류 자원무기화를 걱정해서만은 아니다. 미국은 이미 세계 공급망 생태계에 편입되어 미국 외 존재와 불가피하게 공존해야하기 때문이다. 근자의 미국의 세계기술 선도는 단연 AI 칩이 주도하는 금융시장이며, 엔비디아의 성장은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60% 상당)에 근거한다. 달리 말하면 향후 2-3년 내에 대부분의 AI 데이터센터 구축이 종결되면 AI의 성장 동력도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AI 거품론의 유력한 실체는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이 두 가지 소식은 미국이 더 이상 세상의 유일한 패자가 아님을 상징적으로 가리킨다.
우크라이나전, 중동전에 이어 베네수엘라 사태가 최근 새로운 전쟁의 초점이지만, 21세기 들어 이라크전을 제외하면 미국은 전면전을 실행한 사례가 없다. 낡은 함대, 낙후한 미사일, 전면전을 치룰 수 없는 빈약한 재정이 그들의 현실이다. 남은 것은 동맹국들을 방위 분담시켜 새로운 군수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한국의 방향은 최대한 이 압력을 버티고 균형외교를 지향해서 실 비용을 더 지출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냉정하게 말해서 북한의 핵무장은 그 완성도가 2018년 북미 싱가폴선언 때와 다르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더 이상의 남북대화, 한반도 평화는 한 발자국도 진전하지 못한다. 심지어 트럼프도 북한의 핵 실체를 부정하지 않는 판에, 까짓 ‘북한 비핵화’ 운운 포기하자. 돈 안 드는 립서비스인데 뭐 어떤가. 한반도 대부분 문제의 종착역은 통일로 가는 큰 길에 귀속된다. 이재명 정부는 전쟁 위험, 내란을 극복하고 탄생한 정부다. 그 탄생의 초심을 잊지 말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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