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의 노예들 : 대리기사 이야기 ②]

모호한 '출퇴근' 개념…'시작'과 '귀가' 있을 뿐

대개 밤 7~8시에 시작해 아침 6~7시까지 운행

취객 폭언‧폭력으로 밤새 피로와 위험의 연속

감정노동자들 중에서도 최상위급의 극한직업

끝없는 기다림…고객 찾아 매일 2만보씩 걸어

이득신 작가
이득신 작가

대리기사를 시작했던 첫 삼일간의 강렬했던 기억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북풍과 한파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움츠리게 만드는 1월, 까만색 롱패딩을 입고 대리기사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심각한 추위가 그다지 의식되지 않는, 마치 길거리에 뿌려진 돈을 주우러 다니는 느낌이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혀 개념이 없던 시기이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직장으로 출근을 해야 하기에 자정 이전에는 대리운전을 마치고 귀가를 서둘렀다. 길거리에 뿌려진 돈을 더 주워야 하는데, 누군가에게 빼앗긴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아쉬움, 이렇게 괴상한 감정으로 대리운전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며칠간의 휴식을 취한 후 불타는 금요일, 다시 돈을 주우러 간다는 생각에 내심 기대와 흥분이 가득했다. 그렇게 이틀간 주말 밤을 새고 일요일이 되었다. 인터넷 언론사에 다음날 송고할 기사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 내가 기사를 쓰는 건지 꿈속에서 타이핑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의 비몽사몽이 나를 지배했다. 그때부터 나의 몸은 야간 대리운전을 거부했지만 나의 영혼은 이미 수도권 이곳저곳을 떠도는 대리기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대리운전을 시작한 후, '출근한다'는 말이 나에겐 왠지 낯설기만 하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일터로 근무하러 나가거나 나옴'이라고 출근을 정의한다. 그런데 대리기사의 일터는 어디일까. 번화가 어느 곳, 차주의 차가 세워진 주차장 또는 주차 공간일 수도 있다. 그곳에서 시작해 네비게이션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안내해주는 도로도 우리의 일터이며, 차주가 요청하는 목적지까지가 우리의 일터이다. 또한 그곳에서 다음 콜을 기다리며 번화가로 이동하는 길도 대리기사의 일터이다. 이렇게 무한 반복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보니 딱히 정해진 일터로 출근한다는 의미가 약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주차장과 번화가 그리고 대로변과 이면도로가 모두 우리의 공간이기도 하다. 직장인들에겐 정해진 일터가 있지만 대리기사의 일터는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영 어색하다. 퇴근도 역시 마찬가지 느낌이다. 그래서 출근과 퇴근보다 '시작'과 '귀가'라는 단어가 오히려 더욱 친근함과 착용감을 주기도 한다.

대리기사 일일 업무시간은 보통 10~12시간 정도이다. 밤 7~8시에 시작해 아침 6~7시까지 일하는 기사들의 경우 하루 절반의 시간을 길거리에서 보낸다. 약 80~90% 이상의 전업 대리기사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내 경우엔 보통 밤 8시 정도에 일을 시작하여 귀가하면 아침 6시 정도가 되니 10시간을 대리운전 일에 할애하는 셈이다. 물론 다음날 낮 시간부터 취재가 예정되어있거나 일정이 있을 땐 지하철 막차 이전에 일을 마쳐야 한다. 낮 시간에 대리를 시작하는 기사들도 종종 만나볼 수 있다. 그들을 보통 '골기'라고 부른다. 골프장 대리기사라는 말로, 골프장 손님의 일일 수행기사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일일 수행기사가 아니더라도 골프장 주변에서 골프장 손님을 기다리며 낮 시간부터 대리기사 일을 하기도 한다. 대리기사의 하루는 보통 그렇게 시작된다.

 

전국대리운전노조 서울‧경기지부 조합원들이 5월 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세계노동절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본행사 개최 전 여성 대리 노동자들의 모임인 '위풍당당 여성대리기사모임'과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들은 성희롱과 언어폭력에 노출되고 배차 제한으로 차별받는 여성 대리 노동 문제를 알리기 위해 인증샷 캠페인도 진행했다. 사진=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전국대리운전노조 서울‧경기지부 조합원들이 5월 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세계노동절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본행사 개최 전 여성 대리 노동자들의 모임인 '위풍당당 여성대리기사모임'과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들은 성희롱과 언어폭력에 노출되고 배차 제한으로 차별받는 여성 대리 노동 문제를 알리기 위해 인증샷 캠페인도 진행했다. 사진=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대리기사의 일이 운전하는 업무가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운전은 친절한 네비게이션의 안내로 핸들만 조작하면 되는 일이니 차라리 수월하다. 우리는 밤샘 노동의 고통보다 때로는 취객의 흐느적거리는 소리가 더 불편하다. 독특한 차주를 만나면 운행 시간 내내 잔소리와 술주정을 감내해야 한다. 조용히 잠만 자다 가는 고객도 있지만 고객이 지껄이는 소음 때문에 운전은 피로와 위험의 연속이다.

이런 이유로 대리운전은 감정노동에 훨씬 더 가깝다.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 대부분 그러하듯 대리기사도 감정노동을 빗겨 가지 않는다. 게다가 맨정신의 인류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알코올에 취해 정신줄까지 놓아버린 만취 상태의 인류를 상대해야 하기에 감정노동자 중에서도 최상위를 차지하는 극한직업이다. 콜센터 상담원의 경우엔 고객과의 통화가 녹음이 되지만 우리는 대리기사의 핸드폰으로 네비게이션을 켜야 하기에 녹취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취 고객의 갑질로부터 대리기사도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대리기사는 감정노동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더욱이 운행 중 벌어지는 차주의 폭언이나 욕설 등으로 사고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굳이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만취한 고객을 운행 중인 대리기사가 제어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폭언하는 고객보다 친절한 고객이 더 많고, 갑질하는 고객보다 배려해주는 고객이 훨씬 많으며, 만취 상태에서도 시끄럽게 잔소리하는 고객보다 차에서 조용히 잠을 청하는 고객이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다만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과 제도가 좀 더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대리기사의 일상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대기'기사라고 부른다. 고객이 대리기사를 호출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대리 수요가 많지 않은 날, 또는 그런 곳에 배차가 될 경우엔 대중교통도 끊어진 상태에서 1시간 이상을 기다림으로 허비하는 일도 다반사다. 호출이 와서 출발지에 당도한들, 일행과의 부족한 수다가 한 모금의 담배 연기와 함께 사라질 때까지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는 고객들은 운행을 시작하려는 대리기사의 재촉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직업이 대리기사다.

이런 기다림의 경우에도 대리기사 운행비에 포함시켜 운행비를 현실화해야 한다. 또한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은 고객의 사정으로 대기시간이 길어질 경우에 대리운전 플랫폼인 카카오나 로지 측에 최소한의 보상을 요구하는 중이다. 하지만 플랫폼 운영사는 아직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리기사는 다음 운전을 위해 고객이 있을 만한 곳으로 이동을 반복해야 한다. 게다가 대기 중인 상태에서 콜이 울리면 고객이 부른 곳까지 또 다시 이동해야 한다. 나는 그 이동을 주로 도보로 해결한다. 내 경우엔 이런 이동이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 중 하나이다. 헬스케어 앱에서 확인해보면 나는 매일 2만보 내외를 걷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것은 운동이 아닌 노동의 영역이다. 그렇게 하루 몇만 보씩 반복되는 발걸음이 대리기사들의 건강과 무릎을 갉아먹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편, 2007년부터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는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지정하고 있다. 19세기 초, 전기와 전등이 발명된 이후로 인류는 어둠에서 벗어났다. 주야의 지배를 벗어난 인류는 과거와 다르게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증기기관의 발명과 산업화가 이어지면서 당시 자본가들은 더 높은 생산성을 위해 공장을 24시간 가동하기 시작했다.

노동자의 입장에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는 게 당연했던 전통적인 근무 형태와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대리기사라는 직업도 이런 부분의 연속선상에 위치해 있다. 매일 밤을 새우다 보니 항상 피곤하고 일상이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것이다.

※ 지난주 '대리기사 이야기' 1회가 나간 후 기사를 읽은 몇몇 분들로부터 또 다른 제보를 받았다. 우리나라 대리기사의 기원에 관한 제보였다. 강남의 대형 룸살롱에서도 90년대에 웨이터를 통해 고객의 차량을 운전해주는 대리기사 형태의 일이 존재했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유흥업소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차량을 가진 손님들이 몰리면서 대리기사를 직원으로 다수 채용했다고도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강남 유흥업소가 아닌 일반 지역에서 대리기사의 기원은 택시기사를 통해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편, 당시 강남 유흥업소 직원으로 일했던 대리기사들이 '대리기사'와 '대리운전'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었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기는 하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포스터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포스터

[편집자 주] 시인이자 수필가인 이득신 작가는 제17회 한국문학세상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돼 등단했다. 아들을 입양하면서 입양 문제에 천착하게 돼 한국입양홍보회 인천지역 대표 및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삼성그룹 공채 출신으로 삼성생명과 삼성SDS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다 글쓰기에 전념하려 사표를 냈다. 대기업 간부 출신이 퇴사 뒤 생계를 위해 하청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느꼈던 희로애락과 노동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 <살아남은 자의 도시>로 2019년 제27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의소리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며 밤에는 대리기사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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