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랫폼의 노예들 : 대리기사 이야기 ⑫ ]

통계에 안 잡히는 대리기사들 체감경기 매우 심각

경기 위축에 식당 등 영업 종료시간 크게 앞당겨져

텅 빈 상가, 불 꺼진 유흥가…콜 잡기가 하늘 별 따기

투잡 해보겠다며 대리운전 뛰어드는 사람은 급증

경제 살아나고 있다? 대통령 국정브리핑 딴세상

민초들 삶이 얼마나 피폐한지 제발 현장 확인하라

이득신 작가
이득신 작가

1989년 1월 1일부터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다.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여행 업계에도 일종의 광복절이 찾아온 것이다. 그 이전엔 해외여행을 위해서 회사의 매출을 따지기도 했고 안기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으며 한국반공연맹에서 실시하는 반공교육을 이수해야만 여행을 갈 수 있었다. 1987년 6월 항쟁이후 시작된 노동자 총파업으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발현되기도 했다. 여성들은 그 즈음부터 남녀고용평등법이 실시되면서 결혼해서도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 이전의 사기업에서 일하던 여성들은 결혼과 함께 퇴사마저 자연스럽게 강요되던 시절이었다. 이 때문에 결혼사실을 숨기고 직장생활을 계속하던 여성들도 상당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87년 민주헌법에 적시된 평등권으로 마침내 의미 있는 첫발을 내디딘 순간이기도 했다. 최저임금도 역시 정치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1988년 1월 처음으로 도입된 제도였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본 외신기자가 1989년 9월 WP(워싱턴 포스트)에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라는 제하의 한국발 기사를 내보냈다. 일밖에 모르던 한국인들이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고 노동자의 인권에 바람이 불면서 새로운 한국병이 시작되었다고 조선일보가 인용하기 시작했고 이를 마치 진실이나 되는 것처럼 다수의 언론들이 줄줄이 보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칫국 마신다’라는 한국식의 표현이 있음에도 굳이 언론은 샴페인을 들먹이는 표현을 쓰면서 서양인의 시선이 마치 정답인 것처럼 ‘노동자 계몽’에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샴페인이라는 표현은 결국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집단의식을 형성하면서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핍박하는 구실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노동자의 인권, 복지, 최저임금 인상 등이 거론될 때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샴페인 사건을 언급하곤 한다.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과 해외 여행 등의 과소비 때문에 당장 나라가 망할 것 같은 조선일보의 호들갑이 노동자 탄압의 구실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군사독재가 종식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경기 호황은 계속되었다. 내가 입사하던 1996년은 그러한 바람을 타고 당시 역대 최대 규모인 5천명이라는 삼성그룹 신입사원을 채용하던 시절이었다.

이후 IMF 구제금융 시절을 극복하고 국민소득 1만달러를 회복하면서 2만달러, 3만달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자영업자와 중소상공인들에게 경기가 좋다고 느끼던 시절이 단 한순간이라도 있었을까. 경기가 좋다 나쁘다를 느끼는 국민들 다수는 다분히 주관적 판단으로 불경기를 진단 할 것이며 대체로 경기 위축이라는 발언에는 자신의 생계와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 임의경매에 넘어가는 부동산이 2년째 급증하고 있다.부동산 중에서도 아파트 등 주거시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집합건물(아파트, 오피스텔, 다세대주택, 집합상가 등) 임의경매 증가세가 특히 가파르다. 지난 7월 집합건물 임의경매 개시결정등기 신청 건수는 총 5484건으로 작년 같은 달 3547건에 비해 54.6% 늘었다. 2년 전인 2022년 7월 2290건의 2.4배에 달하는 수치로, 지난 2010년 11월 5717건 이후 13년 8개월 만에 가장 많은 신청 건수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부동산중개업소. 2024.8.4. 연합뉴스
대출금을 갚지 못해 임의경매에 넘어가는 부동산이 2년째 급증하고 있다.부동산 중에서도 아파트 등 주거시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집합건물(아파트, 오피스텔, 다세대주택, 집합상가 등) 임의경매 증가세가 특히 가파르다. 지난 7월 집합건물 임의경매 개시결정등기 신청 건수는 총 5484건으로 작년 같은 달 3547건에 비해 54.6% 늘었다. 2년 전인 2022년 7월 2290건의 2.4배에 달하는 수치로, 지난 2010년 11월 5717건 이후 13년 8개월 만에 가장 많은 신청 건수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부동산중개업소. 2024.8.4. 연합뉴스

처음 대리기사를 시작한 것이 2023년 1월부터였으니 현 정부가 들어서고 불과 7 ~ 8개월 정도 되던 시점이었다. 번화가 어디를 가든 대리기사 수요가 있었고 환한 상가에는 불빛이 찬란했다. 콜이 잡혔다면서 수고하라는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는 기사들과 새로 유입되는 기사들, 흥청거리며 걷는 취객들,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호객인, 이런 게 유흥가의 풍경이었다. 그로부터 1년 8개월이 지났다.

대리기사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통계에 잡히는 경기 상황보다 더 현실적이다. 대리기사들은 전국 곳곳을 유흥가와 번화가 중심으로 다니면서 상권이 형성된 곳에 출현하기에 시간과 발품이 소득과 직결되면서 경기 상황을 피부로 체감한다. 특정 지역에 편중되어 일해야 하는 택시 기사들에 비해 대리기사는 제한이 없는 관계로 내 경우에도 수도권의 상황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대리기사 이외의 작가와 기자라는 직업을 병행하기에 가는 곳마다 관찰력을 동원하기도 한다.

경기가 좋지 않다는 증거는 우선, 업계 상황에서 증명된다. 코로나 시국 이전 20만 정도였던 대리기사 숫자는 올해 들어 3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투잡을 하겠다고 몰려드는 기사가 급속도로 증가한 것이다. 한편 대리운전회사들은 무한 경쟁 속에 저가 콜을 대량으로 양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불경기 속에 취객이 부르는 대리운전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계산이기는 하지만 모두가 제살 파먹기 식의 무모한 짓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때,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는 몰려드는 대리기사들 모두에게 콜을 공급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강남 지역으로 진입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대리기사들도 많다. 급증한 대리기사들 탓에 콜을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기사가 늘었지만 대리운전 수요는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강남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흥가 지역으로 확산된 듯하다.

 

강남역 일대에서 대리콜을 잡기위해 운집해 있는 대리기사들의 모습. 카카오 어플에서 갈무리. 이득신 작가
강남역 일대에서 대리콜을 잡기위해 운집해 있는 대리기사들의 모습. 카카오 어플에서 갈무리. 이득신 작가

작년 5월경 경기도 군포의 전철역 인근에 도착한 시간이 주말 새벽 3시경이었다. 밤새 불 켜진 수도권 중소도시 지역 번화가의 모습을 처음 목격했다. 콜을 잡는 것이 어렵지도 않았다. 10여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있을 무렵 인천으로 가는 고객과 함께 그곳을 무사히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달 주말 비슷한 시간대에 찾은 그곳은 아예 초토화 되어 있었다. 화려한 조명이 켜 있어야 할 곳에 어둠이 짙게 깔리고 식당과 호프집은 이미 영업을 모두 종료하였으며 군데군데 텅빈 상가에는 임대중이라는 현수막만이 나부끼고 있었다. 지나다니는 행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노래방 간판만이 불경기를 조롱하듯 오지 않는 손님을 쓸쓸히 기다리고 있었다. 겨우 아침 지하철 첫차로 그곳을 뜰 수 있었다. 대리기사가 그런 식으로 지역을 탈출하는 것만큼 우울한 일은 없다.

각종 유원지에는 사람보다 더 많은 식당이 분주하던 과거를 추억하며 일찍 영업을 종료하기도 하고, 유흥가와 인접한 모텔촌도 한적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어딜 가도 손님이 없기는 매한가지이다. 새벽 4시경에 영업을 종료하던 식당 사장님들이 이제는 1시경이면 문을 닫고 혼술을 기울인 채 대리기사에게 하소연을 거듭한다. 1년째 적자라는 어느 호프집 사장님은 가게를 내어놓았어도 보러 오는 사람 한 명 없다며 울상이다. 유흥업소 종업원도 일찍 끝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과거 평균 5시에 일을 마쳤던 그들은 이제 평균 2~3시경이면 일을 마치고 귀가하기에 이른다. 이 모두가 대리기사에게 불경기를 한탄하며 생계를 걱정한다.

직원 3명으로 작은 제조업을 하고 있는 어떤 고객은 직원들 인건비 충당을 위해 대리기사 일을 해야 될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나에게 이런저런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코로나 이후 음주문화가 1차에서 끝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이 많이 줄어든 이유이기도 하다. 돈벌이가 수월하지 않은 상황이고 돈이 돌지 않으니 술을 마시는 것도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부득이 마셔야하는 자리만 참석하여 가볍게 마시고 자리를 뜨는 것이 요즘 회식 문화라고 귀뜸하기도 한다. 코로나 시절엔 강제로 영업제한을 실시하였기에 식당이 있는 번화가 지역은 오후 10시까지 짧고 굵게 대리수요가 있었으며, 사무실이나 아파트 등의 주택가에서 오히려 대리수요가 꾸준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대리기사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오히려 대리기사들은 호황이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지금보다 대리비가 훨씬 좋았던 시절이었다.

작년 여름 즈음에 마포구 상수역을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번화가를 찾아 어느 모퉁이를 도는 순간 지진이 일어난 듯한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다름 아닌 홍대 클럽거리였다. 그런 곳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대리기사를 하면서 난생 처음 가본 것이다. 요즘엔 그곳 클럽거리도 굉음과 진동만이 호객행위를 일삼을 뿐 실제로 젊은이들의 모습은 물론이고 흐느적거리는 취객도 쉽게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8.29.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8.29. 연합뉴스

우리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8월 29일 대통령의 국정브리핑이 있었다. 모두가 죽는다고 아우성인 상황에서 나온 뜬금없는 발언이다. 소비는 줄고 있고, 세금은 걷히지 않는데 서울은 아파트 거래만 폭증하고 있는 것으로 경기가 부진하고 재정 운용은 차질을 빚고 집값과 가계빚 불안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때 소비 수준에 근접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이 현실을 모르고 통계를 들여다보지도 않으니 국민 현실의 삶과는 동떨어진 발언만 튀어나오고 있다.

민주헌법 쟁취 이후 조금씩 나아지던 국가의 상황은 사기꾼 대통령과 모지리 대통령 이후 급격히 추락했다. 그리고 현 정부 들어서는 추락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도 민망할 만큼 나라가 엉망이 되었다. 경기가 호황이라는 대통령의 발언과 동떨어진 글을 쓰는 나는 어쩌면 대통령이 말하는 '반국가세력'일지도 모른다. 과거 조선일보가 정권과 한통속이 되어 노동자를 때려잡을 때 썼던 샴페인 터트린 이야기가 이제는 어떤 버전으로 회자될지 궁금하다.

대리비용 현실화를 주장하면서 선동을 일삼는 노동자가 경기가 안 좋다고 하는 말이 모순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정농단으로 또는 대통령 일가의 부정부패 때문에 나라가 망해도 노동자의 임금 때문에 국가가 망한 사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은 노동자가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훈수까지 두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대통령은 부정부패로 감옥을 가더라도 민초들은 매일매일 힘겨운 삶을 살아내야 한다. 민초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한지 제발 현장을 다니면서 눈으로 확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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