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의 노예들 : 대리기사 이야기 ⑦]
작정하고 하룻밤 14시간 일해 번 수입이 25만 원
컨디션 엉망…육체적‧정신적 후유증 커 지속 불가
주 60시간 이상 일해도 노동자 평균 소득 못 미쳐
월 매출 267만 원, 수수료 떼면 161만 원 통계도
대리기사 업무 특성상 노조가 힘 받기 쉽지 않아
월 1000만 원 수입? 극소수 사례 부풀려 '언플'
밤샘노동 대리 요금 현실화, 최저요금 도입해야
작년 4월의 어느 금요일이었다. 다른 날에 비해 조금 이른 시간부터 대리기사 일을 시작했다. 보통 오후 8시 무렵에 시작하던 일을 오후 6시 이전부터 대리콜을 수행하기로 했다. 대리기사가 정말 열심히 일하면 하루에 얼마나 벌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과 오기의 발동도 곁들여졌다. 고객의 대리운전 수요 콜이 뜨면 어쨌든 거부 없이 모든 콜을 수락하기로 했다.
부평의 집 근처에서 시작한 대리운전은 송도국제도시와 인천공항 인근의 영종도 그리고 을왕리를 거쳐 수원과 용인 등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오전 6시 무렵에 용인의 모처에서 지하철을 기다렸다. 그런데 강서구 화곡동으로 가는 대리 콜이 또 울렸다. 처음엔 잡지 않으려 했고, 집에 가서 쉬려 했지만 해당 콜이 사라지지 않았다. 1분여의 망설임 끝에 결국 그 콜을 수락하고 말았다.
10건의 대리콜을 수행하고 그날 벌어들인 수입은 25만 원 정도였다. 대리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시계는 오전 8시가 이미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14시간 일해서 벌어들인 수입이었다. 지금까지 대리기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가장 많은 소득을 올린 날이기도 했다. 단순하게 계산한다면 내가 한 달에 20일을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 나는 월 500만 원을 벌어들이는 셈이고, 30일의 경우엔 750만 원 수입을 올리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나는 대리기사 일을 하면서 그 정도의 수입을 올린 적도 없고 사실상 나의 체력과 컨디션을 감안했을 때, 불가능한 수입이기도 하다.
내가 그렇게 14시간을 일한 후유증은 상당했다. 그날은 물론이고 거의 5일 동안 몽롱한 정신상태가 지속되었다. 정신뿐만 아니라 몸의 컨디션도 엉망이 되었다. 몸살 기운마저 찾아오는 바람에 1주일 동안 대리기사 일을 수행하지 못했다. 대리기사 업무뿐만 아니라 작가와 기자로서 원고를 쓰는 데에도 상당한 애로를 겪어야 했다.
10년 이상 일한 베테랑 대리기사들도 대리기사 일이 완전히 몸에 적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보통 3년 정도라고 말한다. 그만큼 밤샘 노동의 업무강도와 피로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주간 10시간 근무와 야간 10시간 근무는 몸에서 반응하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게 야간 운전을 꾸준히 3년 이상 해야 적응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전업 기사의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니 나처럼 N잡러의 경우는 훨씬 더 많은 적응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대리기사의 건당 운행 수입이 고무줄 요금이라는 지난주 글에 많은 대리기사 분들이 공감하고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대리운전 요금의 현실화와 최저요금 제도는 대리기사들의 숙원과제이기도 하다. 대리기사들은 평균 노동시간이 하루 10시간 정도이며 보통 25일 정도를 일한다. 주 5일제 근무와 40시간 노동이 일반화된 세상에서 대리기사는 일주일 평균 60시간 이상을 일해야 가정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심지어 주 100시간 일하는 대리기사도 존재한다. 그러나 실상 대리기사의 평균 소득은 2023년 노동자 평균 소득 364만 원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리기사 월평균 매출은 267만 원으로 콜 수수료 20%와 이동을 위한 교통비 등을 감안하면 실제 월 평균 수입은 161만 원에 불과하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6800원으로 올해 최저임금 9860원의 70%에도 못 미친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1만 원을 돌파한 상황에 비추어 보면 대리기사들의 소득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 수 있다. 또한 2020년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자료에 의하면 전업 대리기사의 월평균 소득은 100만 원 미만이 전체의 18.9%, 100~200만 원이 48.9%, 200~300만 원이 24.3%를 차지했고, 300만 원이 넘는 경우는 7.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1위 대리운전 플랫폼인 '카카오T대리' 운영사인 카카오모빌리티를 상대로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은 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리 요금의 일정액을 지급받는 기사들도 대리비를 올리자고 하는 중이다. 그러나 카카오모빌리티는 "요금 책정은 기업의 고유 권한"이라며 맞서고 있다. 대리기사의 노동력 제공을 기업의 권한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과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 4월까지 단체교섭을 벌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해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노조는 "회사가 대리 요금을 협의로 정하겠다는 약속을 깼다"며 카카오대리 측을 비판하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약 16만 명의 대리기사를 고용하고 있는 시장점유율 40% 사업자다. 노조에 가입한 대리기사는 5000명가량에 불과해 사실상 노조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기사도 많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 않는 대리기사 업무의 특성상 노조가 힘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22년 단체협약에서 노사는 '대리 요금을 현실화하도록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노조 측은 이 합의 내용을 근거로 대리기사 임금의 기반인 대리비를 "노사가 정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카카오모빌리티 측은 "노사가 임의로 소비자에게 부과되는 대리운전 요금을 정할 시 공정거래법상 담합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대리운전 요금 결정은 대리기사의 소득으로 직결된다. 그런데도 이를 현실화하면 담합이라는 것이다. 카카오모빌리티 측의 억지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한 대리기사의 소득 문제가 쟁점화할 때마다 카카오모빌리티 측은 대리기사의 평균 소득은 공개하지 않은 채 엉뚱한 방향으로 물타기를 한다. 전체 대리기사 중 고소득자가 상당수 존재한다는 논리를 펴면서 저소득 대리기사가 마치 게으르거나 열심히 일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언론 플레이를 한다.
그러다 보니 '월천기사'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월 1000만 원 수입을 올리는 대리기사를 일컫는 말이다. 이런 부분을 강조하면서 운임 수준이 낮지 않다고 주장한다. 콜이 많은 시간에 동선을 잘 짜서 운행하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대리기사 커뮤니티에선 하룻밤 사이 경기 화성시 동탄 일대에서 12건을 운전해 '순수입 52만 3000원'을 인증한 대리기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수입이 어쩌다 하루 정도 요행으로 가능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매일 이런 소득을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리 요금이 갈수록 낮아지는 현실까지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또한 월천기사가 존재하기는 해도 전체 30만 명 규모의 대리기사 중 겨우 300~500명 정도에 불과하다. 0.1%가 마치 전체인 것처럼 과대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노동자의 극히 일부가 연봉 1억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도 특근수당과 잔업수당을 모두 포함한 수입을) 모든 노동자가 연봉 1억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노동자를 비난하는 수단으로 '귀족노조'라는 오명을 씌우는 것과 비슷한 수법이다. 고소득 대리기사의 경우 골프장 대리기사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 경우 오전 10시 이전부터 밤 12시 무렵까지 무려 14~16시간을 일해야 한다. 결국 죽음을 불사한 과로만이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이다.
일부 대리운전 회사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채널에서는 대리기사가 열심히 일하면 월 1000만 원, 살살 일해도 월 400~500만 원 정도는 올릴 수 있는 것처럼 방송에서 떠들어댄다. 이들 유튜브 채널의 운영자는 대부분 대리운전 회사의 대표다. 이들은 자신의 회사에 소속된 대리기사가 많을수록 더 많은 소득을 올린다. 대리운전 수수료 20%는 물론이거니와 월 3만 원 정도씩 관리비 명목으로 떼어가는 돈이 대리운전 회사의 수입원이다. 대리기사가 일을 하지 않아도 관리비는 통장에서 매일 빠져나간다. 도대체 무엇을 관리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런 대리운전 회사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절대 신뢰해서는 안 된다.
대리기사는 운전면허증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일하는 행운을 하늘은 아무에게나 허용하지 않는다. 인내심과 끈기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체력도 중요하며 고객의 갑질을 순간순간 넘길 줄 아는 순발력도 요구된다.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직업의 문턱이 낮다는 얘기이지만 쉽게 일을 그만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루하루 고된 밤샘 노동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싸구려 취급당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노동이 되려면 대리운전 요금을 현실화하고 최저요금을 도입해야 한다.
관련기사
- 대리운전 이상한 '고무줄 요금'…누가 어떻게 결정하나
- 장마철 대리기사의 생존 투쟁…누가 갑질을 하는가
- 대리기사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대리 지옥'
- 노숙자처럼 방랑하는 대리기사의 퇴근길 애환
- 대리기사는 극한의 감정노동자다
- 나는 대리기사다
- 사소한 사고에도 밥줄 끊어버리는 대리운전보험
- 최저임금도 안되는 배달·대리기사 월수입 더 줄었다
- 대리기사 주머니를 이중으로 털어가는 회사들
- 그들이 끝없이 대리기사를 모집하는 이유
- 대리기사를 노예화하는 과도한 '숙제'와 등급제도
- 경제가 살아나? 대리기사가 체감하는 최악 불경기
- 손님이 왕이면 대리기사는 그저 노예인가?
- 투잡하는 대리기사 : 주 100시간 일하는 사람들
- 무법천지 바로잡을 대리운전기본법 제정해야
- 대리기사는 노동자인가, 자영업자인가
- 대리기사가 만난 어지러운 세상, 우울한 고객들
- 대리기사 이야기를 연재한 이득신 작가입니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