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의 노예들 : 대리기사 이야기 ⑧]

주차와 출차 중 발생 사고가 전체의 90% 차지

서로 다른 다양한 차량 운행, 낯선 상황 불가피

살짝 흠만 나도 차주는 부품 통째 교체 요구 흔해

연간 두 번 사고 내면 대리운전 어플 사용 중단돼

28년 무사고 운전자였지만 생계 위협 가슴 졸여

보험 접수 안 하고 자비로 사고 처리하는 현실

대리기사 운전자보험 보상 확대 등 개선 시급해

장례지도사를 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나의 경제적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나에게 대리기사를 가장 적극적으로 권유한 친구이기도 했다. 활동가나 작가 등의 투잡으로는 제격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몇 년 전 코로나 시국에서 코로나 사망자가 증가할 무렵 잠시 장례지도사 일을 쉬기로 했다. 장례지도사의 특성상 코로나 사망자의 몸을 만지고 염을 해야 하는 등 결국 자신의 생명을 담보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선택한 결단이기도 했다.

이후 그는 몇 개월간 배달기사 일에 몸을 담았다. 하지만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면서 버스와 부딪히는 큰 사고를 당해 1개월간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국가는 물론이고 플랫폼이나 보험사의 지원은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당시 머리를 다쳤기 때문에 사고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말투의 어눌함을 간직하고 있다.

이후 그는 대리기사 일을 시작했다. 나보다 약 6개월 먼저 대리운전업계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대리기사 일을 하면서 그는 또다시 큰 사고를 내고야 말았다. 장례행사를 마치고 바로 대리운전을 하던 중 지방으로 가는 고객의 차에서 졸음운전을 한 것이다. 투잡의 피로가 사고의 원인이었다. 사고차량은 고급 외제차였던 까닭에 수리 기간 중 필요한 자동차 렌트 비용 등 대리운전으로 1년을 해야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보험사와 플랫폼은 이후 그의 대리운전 보험 갱신을 거절했다. 밥줄을 끊어버린 것이다. 플랫폼의 노예들이 플랫폼에서 쫓겨나는 순간 생사의 기로에 서는 상황을 맞이하는 셈이다.

 

대리운전 상황을 가상해 챗GPT가 그린 일러스트. 김호경 에디터
대리운전 상황을 가상해 챗GPT가 그린 일러스트. 김호경 에디터

대리기사는 매번 다른 차를 운행한다. 경차와 중형차, 세단과 SUV, 국산차와 외제차 , 그리고 트럭까지 같은 종류의 차종을 연속으로 운전하는 일은 거의 없다. 차량의 높이와 길이 그리고 폭이 모두 다른 차량들이다. 그런 이유로 출차하는 과정과 주차하는 과정은 언제나 긴장과 스릴의 연속이다. 특히 상가 주차장의 경우, 지하 주차장에서 지상의 도로로 나가는 과정이 매우 좁아서 험난하기까지 하다. 오피스텔 주차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폭이 좁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도 사고를 피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전체 대리운전 사고의 90%가 출차와 주차 과정에서 발생한다. 운전할 때마다 매번 바뀌는 차량의 크기 때문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비극이다.

대리기사 일을 하면서 나는 전체 네 번의 사고를 냈다. 대리운전을 시작한 지 겨우 2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송파구 장지동의 아파트 단지로 향했는데 주차장으로 향하는 아파트 입구가 매우 비좁았다. 게다가 고객의 차량은 폭이 넓은 편이었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길에 기어이 사고가 나고 말았다. 길가 양옆의 턱을 미처 보지 못하고 살짝 스친 것이다. 처음엔 범퍼의 작은 흠 정도라고 생각했다. 고객도 동의했다. 사고 부분을 사진에 담았다. 도색으로 해결하자고 합의를 보았다. 그러나 1주일 뒤 고객은 카센터를 다녀왔고 범퍼가 일부 부서졌다는 카센터 정비기사의 말을 전하면서 범퍼 교체를 위해 사고 처리를 원했다. 2008년형 그랜저의 범퍼 수리 비용은 90만 원의 견적이 나왔고 나는 자기부담금 30만원을 내야만 했다. 작은 상처가 범퍼 골절로 진단이 바뀌어 버린 순간이었다.

두 번째 사고는 시흥시 정왕동에서 발생했다. 첫 사고가 난 후 역시 1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이다. 통행이 많지 않은 주택가 이면도로에 주차를 해달라고 했다. 최대한 인도 쪽으로 바짝 붙여서 주차해달라는 고객의 요구에 주차하는 과정에서 바퀴의 휠이 상처가 난 것이다. 작은 기스 정도 난 것 같으니 도색하는 것으로 현장에서 합의를 봤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후 그는 도색 합의는 애초에 없었다며 휠 교체를 요구했다. 기아 K5의 조수석 앞바퀴 휠 교체 견적은 50만 원이었고, 그의 요구대로 나는 보험처리에 응해야만 했다. 보통 연간 두 번의 사고는 곧바로 대리운전 어플 사용 중단으로 이어지는데, 나의 경우엔 다소 억울함이 있다는 정상 참작이 있었기에 대리운전 어플 사용 중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대전지부가 7월 25일 대전의 한 번화가에서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대전지부가 7월 25일 대전의 한 번화가에서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세 번째 사고지는 용산이었다. 도착지에서 주차 공간을 찾지 못하자 좁은 골목길 여기저기로 나를 안내하던 고객은 더욱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가더니 골목길 옆의 전신주와 스친 듯 만 듯한 사고가 발생했다. 의도적으로 사고를 내게 한 의심마저 들게 했다. 고객은 보험처리를 안 할 테니 현금 80만 원으로 합의를 보자고 요구했다. 나는 "일단 견적이 있어야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이고 그래야 현금 보상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맞서 보았다. 이에 고객은 "그렇다면 보험처리를 하겠다"며 나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추가로 보험처리를 할 경우 더 이상 대리운전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고객의 요구에 응하고야 말았다.

네 번째 사고는 독일산 구형 외제차였다. 이것도 역시 바퀴의 휠과 인도와의 경계선 턱에 살짝 스치는 사고였다. 보험처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고객이 다른 약속으로 서둘러 그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30분이 지난 시점에서 대리운전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고의 유무를 확인하고 바로 보험사에 접수되었다. 보험사 보상 담당자에게 한없이 읍소했지만 소용없었다. 휠 교체 견적은 150만 원이었고 부득이 자부담 30만 원을 내야만 했다. 그리고 한 달 후 나는 대리운전 어플 사용이 중단되었다. 이는 곧 나의 생계 방편 중 하나인 대리운전을 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1개월 동안 밥줄이 끊어진 채로 생계 유지를 위해 다른 수단을 찾아야 했다.

최근에는 좁은 오피스텔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타이어에 흠이 간 일이 있었다. 현장에서 확인했을 당시에는 분명 타이어에 기스가 난 것이었다. 물걸레로 닦기만 해도 지워지는 타이어의 더럽혀짐 같은 것이었다. 당시 상황에서는 고객도 사고가 아니기에 그냥 가도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당일도 아니고 4일이나 지난 후에 고객은 나에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보험 사고접수를 한 것이다. 사고 내용은 타이어 중앙의 휠 손상이었다. 당일엔 분명히 타이어의 상처였는데 4일이 지난 후엔 휠 손상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고객이 4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카카오 측에서는 고객의 주장만 반복했다.

카카오 측은 또한 나에게 사고 접수에 응하라며 온갖 회유와 설득과 협박을 가했다. 나는 강하게 반발했다. 카카오 측과의 대화 내용을 모두 녹음했다. 그리고 계속 이런 방식으로 나에게 강요할 경우엔 이 모든 상황을 언론에 제보할 것이며 국민권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에도 알려서 부당함을 바로잡겠다고 맞섰다. 내가 이런 식으로 맞대응하자 카카오 측에서도 이후 1개월 간 말없이 잠잠한 상태다. 대리기사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무조건 고객의 요구와 주장만을 받아주는 대리운전 회사들과 플랫폼 운영사들은 부끄러움도 모른 채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서울경기지부가 7월 25일 금융감독원 앞에서 대리운전보험 정상화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서울경기지부가 7월 25일 금융감독원 앞에서 대리운전보험 정상화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사실 이런 나의 글을 보면 운전 무능력자의 자기 합리화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1994년에 운전면허를 취득한 이후 딱 한 번 사고 경험을 갖고 있다. 초보운전 시절이지만 뒤에서 받히는 사고뿐이었다. 처음 면허증은 2종 보통이었으나 장기 무사고 운전으로 인해 1종으로 신분 상승한 혜택도 누렸다. 대리운전을 하기 전 나는 무려 28년이나 무사고 운전자였다. 대부분의 대리기사들이 나처럼 대리운전 사고의 경험을 갖고 있지만 모두 출차와 주차 중에 일어난 사고였다고 말한다. 전체 대리기사의 사고 중 이 90%의 비율이 동료 대리기사들과의 대화에서 증명되곤 한다. 대리운전 경력 1년차부터 10년이 넘은 베테랑 대리기사까지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이렇게 경미한 사고 때문에 가슴을 졸여야 했다는 것이다.

운전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남의 차를 운전하는 일이 쉽지 않기에 대리기사에 도전하는 것도 주저하기 마련이다. 대리기사의 사고는 다양한 차량 크기에 대한 미적응 상황에서 발생한 일이지 결코 운전 능력의 부족이나 부주의에서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아무도 사고의 피해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지만, 가해자가 되기를 원하며 일부러 사고를 내는 대리기사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리운전 사고의 경우 차주가 대리기사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거나 이 참에 특정 부분의 부품을 교체하려 한다. 사고 현장에서도 대리기사에겐 억울하거나 비참한 현실이 가득하다.

대리기사가 손님의 차를 운행하다 사고를 내면 대리기사 운전자보험이 적용이 되는데, 이 때 기사는 자부담금 30만 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운전 중 사고가 2번 이상 발생할 경우 다음 보험심사에서 탈락돼 대리기사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한 번 사고가 있었던 기사들은 만약 두 번 째 사고가 발생하면 대리업무의 연속을 위해 자비로 사고를 처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대리기사의 일을 잃는 것보다 자비로 사고처리를 하는 편을 택하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은 지난 2023년 12월 대리운전자보험 개선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였다. 보험 가입 거절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사고 횟수별 할인과 할증 제도를 도입하고, 보상의 범위와 한도를 확대하여 대리운전기사의 실수로 사고 발생시 차주의 렌트 비용을 보상하는 특약을 신설하고, 고가의 차량과 사고 시에도 사고 위험을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도록 대물 배상은 물론 자기차량 보상한도를 확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원래 올해 7월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보험사와 대리운전 플랫폼 운영사 측은 아직까지 어떻게 진행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래저래 대리기사의 밥줄만 위태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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