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미조직 근로자 권익 보호·증진”

‘노동 약자’ 건설 노동자 죽음으로 몰아넣고

국회 통과한 ‘노란봉투법’마저 거부권 행사

노동자 대화서 배제하며 노사관계도 최악

“노동 약자 보호는 노조 조직률 높이는 것”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 약자를 보호하는 법을 제정하겠다고 했다. 14일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열린 25번째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노동 약자들을 보호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며 “노동 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을 제정해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열린 25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모두 발언하고 있다. 2024.5.14.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열린 25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모두 발언하고 있다. 2024.5.14.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지난해 5월 1일 '노동 약자' 중 한 명인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는 윤석열 정부의 노조 탄압에 항거해 분신했다. 건설 현장에 일하는 노동자의 상당수는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노동 약자다. 윤 대통령은 노동 법치주의를 앞세워 이런 노동 약자를 탄압했다. 또 국회가 노동 약자인 하청 노동자 교섭권을 강화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안’(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런 윤 대통령의 입에서 ‘노동약자보호법 제정’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게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이런 걸 두고 ‘양두구육’이라고 해야 하나. '후안무치'라고 해야 하나.

윤 대통령은 “(노동약자보호법이) 미조직 근로자들이 질병, 상해, 실업을 겪었을 때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제회 설치를 지원하고, 노동 약자들이 분쟁을 조속히 해결하고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분쟁 조정협의회 설치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노동 약자를 위한 표준계약서와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미조직 근로자의 권익 보호와 증진을 위한 재정지원 사업의 법적 근거가 담길 것”이라고도 했다. 귀가 솔깃한 말이지만 실효성은 별로 없다. 기존 노동 관계법을 개정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노동 약자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노동 약자’를 언급할 때 비정규직 노동자와 배달·대리운전·택배기사 같은 플랫폼 종사자, 특수형태근로자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대척점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속한 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노동계의 기득권 세력인 양대 노총 탓에 노동 약자인 미조직 근로자의 처우가 나빠지고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하고 있다는 게 윤 대통령의 인식인 듯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과 근로 여건, 복지 수준의 격차를 개선하는 게 시급한 문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노동시장 양극화의 원인을 양대 노총 책임으로 돌리면 노동 개혁은 영영 불가능해진다. 미조직 노동자와 노조를 갈라쳐 노동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인식과 태도로는 정상적인 노동정책을 펼칠 수 없다. 정부와 노동계, 노사 갈등만 키울 뿐이다. 노동시장 양극화의 진정한 해법은 노동약자보호법을 제정할 게 아니라 미조직 노동자의 노조 조직률을 높이는 것이다. 또 노동 관계법을 개정해 이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금속노조는 14일 발표한 성명에서 “(민생토론회에서 나온 윤 대통령의 발언은) 노동 약자 지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모두 본질을 비껴갔다”며 “울타리 밖, 노동법 밖 노동자의 권익을 높이는 길은 이들에게 노동자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조직 노동자도 법과 제도의 울타리로 들어서게 해 고용 및 산재보험 안전망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금속노조는 “권리 취약 노동자를 포괄하지 못하는 기존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게 진정한 노동 약자 보호인데도 대통령은 노조법 개정안을 거부하고 재정지원으로 포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속노조는 또 “기존 노조를 ‘거대 노조’라 표현하며 노동 약자를 보호하는 양 선동한다”며 “금속노조가 최근 5개월간 11곳의 사업장을 새로 조직한 것도, 산업단지와 영세사업장 등 더 낮은 곳을 찾은 것도 대통령은 말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미조직 노동자, 권리 취약 노동자의 조건 향상은 노동조합 가입과 결성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대통령 집권 2년 동안 노동정책은 낙제점을 주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노동계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아 노사관계는 악화했고 건설노조 탄압 등으로 노조 활동도 위축됐다. 지난 7일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국사회경제학회, 한국산업노동학회 등 5개 단체가 개최한 ‘윤석열 정부 2년 노동·사회정책 평가 토론회’에서도 윤석열 정부의 무개념 노동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와 한국사회경제학회, 한국산업노동학회,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5개 단체는 지난 7일 ‘윤석열 정부 2년 노동·사회정책 평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2024.5.7. 연합뉴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와 한국사회경제학회, 한국산업노동학회,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5개 단체는 지난 7일 ‘윤석열 정부 2년 노동·사회정책 평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2024.5.7. 연합뉴스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현 정부는 노사 법치주의라는 용어로 노조 활동 운영을 축소 관리하고 있다”며 “노사관계가 악화하고 노동자들의 기본권이 보장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 노동 관련 정책을 보면 노동계는 개혁의 대상이었으며 노동자는 노사관계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인식됐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약화 시도, 노란봉투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 등으로 미뤄봤을 때 제대로 된 노동정책도 전무했다”고 했다.

그는 또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의지도 구호에만 머물렀고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도 이뤄지지 못했다”며 “노조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고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다양한 조직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시균 한국고용정보원 선임연구위원은 “근로 시간 유연화나 임금체계 개편은 근로조건의 취약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고, 파견업종 확대는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심화시킨다”며 윤석열 정부의 정책 방향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도 “현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정책뿐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정책을 보이지 못했다”며 “화물연대 안전운임제 중단이나 건설노조 탄압 등을 통해 비정규직 중 조직된 노동자가 공격당하는 양상도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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