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랫폼의 노예들 : 대리기사 이야기 ⑮ ]
고용노동부의 노동약자 원탁회의, 현실인식 못해
카카오, 티맵 거대기업 횡포에 시달리는 대리기사
대리운전업기본법, 16년간 국회 발의와 폐기 반복
기본법에 공제조합, 대리회사, 기사 요건 강화 필요
대리운전노동조합, 카카오 횡포에 쟁의 돌입 예정
지난 6월 고용노동부 산하 노사발전재단에서 주최하는 노동약자 간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조직화 되지 않은 노동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사전에 SNS 등으로 신청한 이들을 초청해서 이야기를 듣는 식이었다. 전국에 흩어져 일하고 있는 각종 플랫폼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로, 인천에서는 6월에 개최된 것이다. 대리기사로는 내가 유일한 참석자였다. 약 100여 명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조별 분임토의 하는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대리기사가 처해 있는 열악한 상황과 여러 문제점을 나열하며 이야기했다.
이후 8월에는 ‘노동약자 원탁회의’ 라는 이름으로 장관과의 대회가 진행되었다. 당시 이정식 노동부 장관이 플랫폼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자리를 만든 것이다. 아마도 내가 초청된 것은 6월 간담회에서 내가 했던 발언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관과 8명의 플랫폼 노동자가 대화를 이어갔다. 6월에 내가 했던 발언들도 정리되어 보고서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말했던 핵심적인 내용은 빠진 채, 장관에게는 이동노동자의 쉼터 관련 부분만이 전달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리운전업계의 주무부처가 고용노동부인가 국토교통부인가라는 이야기로 논점이 흐려진 상황도 반복되었다.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자리에 초청해 놓고 자신들이 주무부처가 아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왜 그 자리에 초청한 것인가. 이렇게 해당 부처의 발뺌마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대리운전업기본법’이 아직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와 공직자의 한심한 현주소를 목도한 것이다. 정권의 생색내기용으로 원탁회의가 만들어졌지만 결국 생색내기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나를 비롯한 몇 명의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망신만 톡톡히 당했다.
현재, 대리운전 시장은 사실상 두 거대 기업의 각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카카오 대리'라고 불리는 카카오모빌리티와 '티맵 대리'라고 불리는 티맵모빌리티가 양대 축이다. 앱으로 호출하는 대리운전시장을 석권한 카카오 대리는 전화콜 시장을 잡기 위해 1577마저 인수했으며 ‘콜마너’라는 이름의 플랫폼도 인수한 상태다. 한편 티맵 대리 또한 로지소프트를 인수해 두 대기업이 시장의 일인자 자리를 두고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사실 대리운전 업계를 키우려는 의도보다 자신들의 몸집을 불려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현실이 그러하다 보니 대리운전 업계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대리기사들만 극한노동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 원인은 간단하다. 대리운전 업계를 규제하거나 보호할 기본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택시업계는 1963년 택시운송사업법을 마련하여 법과 제도로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처음에 만들어진 이후 수많은 문제점이 지적되어 개정과 재개정 등의 과정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직도 여러 가지 문제가 존재하긴 하겠지만 어느 정도 상설화되어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체계이기에 대리운전 업계처럼 불법이 만연하고 무법천지가 계속되는 일은 없다.
전국적으로 3 ~ 4천 개에 달하는 대리운전회사와 1만 개 정도로 추정되는 대리기사 호출용 전화번호, 그리고 이미 30만 명에 육박하는 대리기사의 숫자를 놓고 보더라도 업계를 통제할 수 있는 적절한 법 제정은 매우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25만 명에 달하는 택시기사의 숫자보다 더 많은 대리기사의 존재가 법 제정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또한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애매한 형태로 대리운전 노동자를 규정하기에는 엄청난 한계가 존재한다.
대리운전업기본법(이하, 기본법)이 처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 2008년부터지만 16년이나 흐른 지금까지 매 국회마다 발의 후 폐기 절차만 거치면서 아직도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국회의 게으름과 정부의 무능력 이외에는 답을 찾을 수 없다. 또한 대리운전회사들의 로비도 한몫 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기본법은 우선, 공제조합을 만들어 대리기사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규정해야 한다. 택시나 버스의 경우 별도의 공제조합이 있기에 해당 공제조합에 보험 가입하는 형식으로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대리기사의 경우 사용하는 앱에 따라서 이중 삼중으로 보험료를 납부하기도 하고, 보험료의 일부를 대리운전 회사가 착복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대리기사 1인 1보험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공제조합 설치를 의무화하면 대리기사뿐만 아니라 시민 모두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둘째, 대리기사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버스나 택시처럼 대리운전도 일종의 운수업이다. 운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교육과 시험이 동반된다. 그래야만 고객들에게도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논란이 될 수 있는 대리기사의 유입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운전면허증 취득 후 3년 이상의 보유기간을 설정하여 대리기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면허증 취득 후 곧바로 대리기사 일을 한다는 것은 본인에게도 시민에게도 위험천만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리운전업기본법’과 도로교통법 등의 교육을 이수하고 관련 시험을 통과해야만 대리기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자격요건이 필요하다.
셋째, 대리운전 회사의 자격도 강화해야 한다. 자본금 한 푼 없이 전화기 한 대로 대리운전 회사를 운영하는 곳도 상당수다. 이는 곧, 대리기사를 향한 착취로 이어진다. 대리기사에게 각종 관리비와 경조사비 그리고 프로그램 사용료 보험료 등의 명목으로 매월 15만 원 이상을 뜯어가는 대리운전회사들이 수없이 많다. 이들은 운행수수료 20% 외에도 이런 방식으로 대리기사의 주머니를 털고 있다. 따라서 대리운전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1억 정도의 자본금 조건이 필수이며 대리기사의 휴식공간도 보장해 주는 등의 요건이 필요하다. 1인당 1평(3.30m²) 정도의 휴식공간을 의무화해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용어는 2003년 노사정위원회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5년 기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 직종 중 156개 직종에서 특수고용 형태가 발견되었으며, 약 230만 명의 특수고용 노동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기준으로 본다면 약 200여 개 이상의 업종에서 300만 명 이상의 특수고용 노동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대리기사는 전체의 약 10%에 이를 정도로 그 비중도 크며 숫자도 계속 늘고 있다. 특수형태 노동자는 사용자 측에서 자영업자 형태라고 주장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엄연히 사용자의 노무를 제공받아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이다. 특히 대리기사의 경우 플랫폼의 규정과 지시를 따르게 되며 그들의 근로 감독과 통제를 지키고 따라야 하는 분명한 노동자이다.
지난 9월 23일에는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이 국회 앞에서 카카오모빌리티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현재, 카카오모빌리티는 노조 측이 주장하는 대리운전 기본운임의 현실화, 거리별 구간별 운임 정상화, 고객들의 노쇼(대리취소)와 대기시간에 대한 보상, 공정하고 안전한 배정정책, 대리운전 보험의 개선 등 요구사항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중이다. 특히 카카오 측은 운임과 배정 정책은 회사 고유의 경영권이라며 교섭대상이 아니어서 합의할 사안이 아니라고 맞서는 상황이다. 대리기사의 수입이 자신들의 고유권한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연봉계약을 할 때 협상을 하며 그 협상에 따라 노동자는 자신의 월수입뿐만 아니라 연간수입이 정해지고 이에 맞는 가정의 생계를 꾸리게 되는데, 대리기사는 대리운전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을 결정할 단 1%의 권한도 없으니 자신들의 소득 예측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노조 측은 기자회견에서 카카오모빌리티의 불성실한 교섭에 대항하기 위해 연말 성수기 대대적인 파업 등 쟁의행위에 돌입할 것을 선포한 것이다. 한편, 카카오는 지난해 매출 6081억 원에 영업이익 387억 원을 기록했다. 대리기사의 고혈로 이루어낸 성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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