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기고] 노동자 인권 개선을 위한 22대 국회의 과제➀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여기서는 노조하면 짤려요.”

경기도 시흥시에 소재한 시화공단에서 점심 먹으러 공장 밖 공동식당에 가는 노동자에게 노동조합 홍보물을 나눠주자 돌아온 얘기다. 2024년 노동절을 맞아 ‘민들레’로부터 관련 컬럼 요청을 받자마자 생각난 에피소드이다. ‘노조하면 짤린다’는 위 얘기가 십몇 년 전 얘기도 아니다. 불과 1년 전 봄에 들었던 얘기다. 13만여 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는 국가산업단지이지만 여전히 ‘노동조합’은 금기어인 셈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유례없는 퇴행과 반동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는 지금, 노동 영역 또한 예외는 아니다. 마침 2024년 노동절에 앞서 22대 총선이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총선 참패는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강렬한 ‘정권 심판’ 구도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책 경쟁이 희미해진, 특히 노동정책 분야의 이슈가 묻힌 선거이기도 했다. 이 글은 2024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22대 총선 과정에서 수면 아래로 묻혔던 한국 사회 노동자의 노동인권 제고를 위해 추진해야 할 입법 차원의 정책 과제를 담고 있다. 핵심은 비정규 노동이다. 비정규 노동은 2000년대 이후 한국 노동사회에서 여전히 최대 이슈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이 외면한 5인 미만 사업장의 383만 노동자들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시화공단 내 13만여 명 중 최소 1/2에 달하는 노동자가 기계·금속 가공 업종의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공단 땅 한구석을 임대해 사장과 노동자 한두 명이 같이 일하는 사업체가 대부분이다. 물론 노동조합원이 아니며, 사업장 규모로 인해 노사협의회조차 없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한국 사회 노동자 규모는 2023년 8월 기준으로 약 383만여 명, 전체 임금노동자 대비 17.4%에 이르며 이 중 2/3가 넘는 256만여 명(66.8%)이 비정규직이다(2023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공동투쟁) 관계자들이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3차 노숙농성 강제해산 관련 경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공동투쟁) 관계자들이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3차 노숙농성 강제해산 관련 경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헌법 32조 3항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되어 있고 이에 근거해 근로기준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은 이 땅에 일하는 노동자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에는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상시고용’ 5인 미만이다. 적용되지 않는 주요 조항들은 △ 근로시간, 연장근로의 제한 △ 공휴일 및 연장·휴일·야간근로 가산수당 지급 △ 해고 등의 제한 및 부당해고 등의 구제신청 △ 연차유급휴가 △ 취업규칙의 작성 및 신고 의무 △ 기간제 노동자의 2년 고용 후 최소 무기계약직 전환 △ 기간제 노동자의 차별신청 조항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특히 근로시간 제한과 가산 수당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극단적으로 보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경우, 주 120시간 노동도 가능하다. 380만 명이 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제도적으로 최저 근로기준에서 배제하고 있는 셈이다.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는 비단 임금, 노동시간 등 최저 근로기준 제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새로운 노동권 보호 법안이 나와도 근로기준법을 준거 삼아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제외로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공휴일에 관한 법률’ 등이 그렇다. 일하는 노동자의 산업안전을 보장하는 ‘산업안전보건법’도 일부 조항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다. 헌법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노동자의 최저 근로기준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인간의 존엄성’을 일부 깎아내려도 되도록 근로기준법이 뒷받침하는 셈이다.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은 민주당 22대 총선 공약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부터 있던 고용 규모에 따른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는 낙후된 경제 상황과 전후 경제재건 필요성, 그리고 노동자와 자영업자 특성이 혼재된 전근대적 노동시장 특성을 고려한 입법이었다. 하지만 법 제정 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고용규모에 따른 차별 적용이 용인되고 있다. GDP 1조 7천억 달러인 경제규모에 ‘G7+α 국가’, ‘글로벌 중추국가’라고 자랑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소규모이기에 임금 등 노동조건이 열악하며, 사업주 또한 노동법에 대한 몰이해와 전근대적인 가부장적 운영 스타일을 보이는 경우도 상당수이다. ‘이거는 내가 정말 ×고생해서 일군 거야’라는 인식 속에 사장은 남편, 경리·회계는 사장 부인, 영업담당 이사는 사장 동생, 이런 식이다. 이 때문에 5인 미만 노동자는 각종 갑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지만 근로기준법은 이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의 직장갑질 조항 또한 5인 미만 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22대 총선 공약으로 밝혔다.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절차가 시작되어야 한다. 아울러 가사(家事) 사용인에 대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제외 조항도 삭제되어야 한다. 공적 돌봄노동 수요가 점증하고 있지만 최저임금법 등을 위반·우회하면서까지 값싼 외국인 노동력 수입을 통해 돌봄노동, 가사노동 수요를 메꾸려는 윤석열 정부의 얄팍하면서도 왜곡된 정책을 제어하기 위함이다.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끼임 사고로 숨진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 5주기 현장추모제가 지난해 12월6일 태안화력 앞에서 열린 가운데 고인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왼쪽 첫 번째) 등이 작업현장 안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끼임 사고로 숨진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 5주기 현장추모제가 지난해 12월6일 태안화력 앞에서 열린 가운데 고인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왼쪽 첫 번째) 등이 작업현장 안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의 고용불안정성이 문제의 핵심

노동·시민사회 진영의 줄기찬 요구 끝에 2006년 비정규법(기간제법, 파견법, 노동위원회법 등)이 제·개정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허점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상시·지속 업무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최소한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대원칙이 노동법상 규정되지 않으면서 그때그때 정권의 입맛에 따라 비정규 노동정책이 좌우되어 왔다. 특히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 문제가 핵심이다. 법상 사용자와 작업장에서 지휘·명령을 하는 실제 사용자가 달라 고용불안정성이 높기 때문이다. 비정규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대원칙 부재는 문재인 정부 시기 공공부문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이 대체로‘자회사 정규직 되기’로 그친 이유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비정규 노동 유형별로 보면 제일 먼저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 과제가 시급하다. 국내 제조대기업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사내하청 노동은, 고용에 따른 이익은 원청 사용자가 전유하면서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은 사내하청 사업주에게 떠넘기는 대표적인 간접고용 비정규 유형이다. ‘고용에 따른 편익을 얻는 자가 사용자다.’라는 근대 노동법 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고용형태인 것이다. 언제든 원청 대기업의 이해와 필요에 따라 하루아침에 사내하청 업체가 폐업·통합·구조조정 되는 등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용불안이 늘 제기되어 왔지만 원청 대기업은 이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여기에 1998년 파견법이 제정되면서 제기된 불법파견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이슈로 남아 있다. 1998년 파견법 제정 당시부터 파견과 제조업 사내하청 간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핵심 쟁점이었다. 파견법은 노동자파견의 대상 업무, 기간, 허가요건 등 노동자 파견 시 파견사업주가 준수해야 하는 사항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파견법을 위반할 경우,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는 사용사업체의 정규직으로 간주되도록 되어 있었다. 문제는 국내 제조 대기업의 사내하청 노동이 파견법이 금지한 직접생산공정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파견과 도급 구분 기준을 법률로 못 박아야

이를 근거로 노동조합은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했고, 실제 2010년대 이후 현대차, 포스코, 현대제철, 삼성전자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 사내하청 노동이 지난한 투쟁 과정에서 법원 판결로 파견법상 금지된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대한 파견노동임이 확인되기도 했다. 노동법상 사용자는 사내하청 사업주이지만 실질에서는 원청 대기업이 사내하청 노동자를 좌우하는 실제 사용자임이 확인된 것이다. 2007년 비정규법이 제·개정되면서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의 사용사업체 정규직 간주 조항이 의무 조항으로 완화된 바,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이 불법파견으로 확인될 경우 사용사업주에 대한 고용의무가 아닌 고용의제를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법원 판례로 정립된 파견과 도급 구분 기준을 고용노동부의 시행령이 아닌, 법률에 못 박는 것이 필요하다. 파견이냐 도급이냐를 구분하는 기준은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에게는 원청의 정규직 여부를 규정하는 중요 근거이기 때문이다. (②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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