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인권 개선을 위한 22대 국회의 과제 ➁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사내하청 노동을 포함한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은 고용불안이라는 부담과 함께 또 다른 부담을 지고 있다. 바로 근로기준법이 금지하고 있는 중간착취 문제다.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은 고용·취업 과정에 일명 ‘업체’로 불리는 영리 추구의 노동시장 중개기구가 개입된다. 2021년 기준으로 한국에는 무려 1만여 개소의 민간 유료직업소개업체와 6300여 개소의 인력공급업체가 있다(2021년 서비스업조사). 이들 업체의 매출액도 유료직업소개업의 경우에는 2조 195억 원, 인력공급업의 경우에는 19조 1천억 원에 이르고 있다. 매출액 전부가 중간착취라 할 수는 없지만, 업체들이 가져가는 중간착취 규모가 천문학적 금액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1%도, 10%도 아닌, 얼마를 떼어가는지도 모르는 하청업체 수수료

직업안정법(고용노동부 고시 제2017-22호)은 민간 유료직업소개업체가 구직자로부터 수취하는 수수료를 임금의 1/100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건설일용 구인사업체 수수료율 10%가 노동시장에서 관행적으로 적용되어 노동자에게 10%의 수수료를 수취하고 있다. 구직자에게 1% 미만의 수수료를 수취하는 규정도 노동자에게 금전적 수취를 금지한 ILO 협약 181호(민간고용서비스기구에 관한 협약) 위반이지만, 그나마 있는 수수료율 규정을 위반해 임금의 10%를 노동자로부터 수취하는 것은 명백한 직업안정법 위반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관행화되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외적으로 중간착취가 허용되고 있는 파견노동의 경우에도 파견업체의 수수료율에 대해서는 법상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 파견사업주가 가져가는 중간착취 규모, 즉 수수료율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셈이다.

제조업에서 관행화된 사내하청·소사장의 경우, 중간 하청업체가 가져가는 몫은 더더욱 알 수 없다. ‘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고 김용균 씨가 받은 월급은 최저임금을 살짝 넘는 220만 원이었지만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이 책정해 사내하청 업체에 지급한 1인당 노무비는 500만 원이 넘었다. 원청이 지급한 노무비의 절반 이상을 하청업체가 가져 간 것이다. 이런 일이 ‘발전소’ 사내하청 업체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중간착취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안은, 중간착취를 금지한 근로기준법 9조의 취지에 따라 앞서 언급한 상시·지속 업무에 직접고용 원칙을 구현하는 것이다. 즉, 노동·시민사회 진영이 계속 주장해 온 것처럼 파견법을 폐지하고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다. 지향해야 할 방향이지만 노-자 간 역관계와 정치 지형을 고려할 때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로는 업체에 대한 관리 감독 강화와 함께 업체가 가져가는 중간착취, 즉 수수료 상한을 설정하고 이를 공개해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가 알 수 있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21대 국회에서도 (1) 원청이 용역 노동자들의 전용계좌에 임금을 바로 지급해 용역업체가 손댈 수 없게 하는 법안 (2) 공공부문에서 발주하는 사업부터 임금 직접지급제를 도입하는 법안 (3) 파견업체가 떼는 수수료에 상한을 정하는 법안 (4) 원청이 파견노동자에게 주도록 정한 임금을 근로계약서에 명시해 업체가 제멋대로 떼먹지 못하게 하는 법안 등이 제출되었지만, 21대 국회 회기 만료를 앞둔 지금까지 국회 환노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22대 국회가 출범하면 우선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민주노총이 주최한 2024 세계노동절대회가 열리고 있다. 2024.5.1 [공동취재] 연합뉴스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민주노총이 주최한 2024 세계노동절대회가 열리고 있다. 2024.5.1 [공동취재] 연합뉴스

명절 때 참치캔 선물세트 받으며 곱씹는 비정규직 ‘차별’

직접고용이든 간접고용이든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상에서 자신이 비정규직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는 영역이 바로 ‘차별’이다. 오른쪽 바퀴는 정규직이, 왼쪽 바퀴는 사내하청이 조립하지만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 대비 절반이 안 된다. 똑같이 길거리 청소를 하지만 구청 직영 환경미화원 노동자 대비 민간 위탁 환경미화원 노동자의 임금은 절반이 안 된다. 명절 때가 되면 정규직 노동자는 몇십 만 원짜리 선물을 선택할 수 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참치캔 선물세트를 받을 때, ‘차별’이 옹이처럼 각인될 수밖에 없다.

현행 비정규법에서도 차별시정 조항이 있지만, 2010년 이후 매년 신청 건수가 100~150여 건에 불과할 정도로 실효성이 낮다. 비정규 노동자 개인에게만 차별시정 신청 권한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용’을 걸고서 회사를 상대로 차별시정을 요구할 ‘간 큰’ 비정규 노동자가 드물기 때문이며, 퇴사 이후 차별에 따른 피해액 보상을 요구하는 개인 차원의 차별시정 신청이 대부분이다. 그마저도 차별 판단기준이 되는 정규직(업무의 동종·유사성)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해 차별 인정 건수도 적은 편이다. 차별 신청 주체를 노동조합까지 확대하고 차별 판단 기준도 확대해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문제도 입법적 해결이 필요하다. 플랫폼 노동처럼 산업과 취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비교적 최근에 등장하는 형태도 있지만,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레미콘, 덤프, 대리, 퀵처럼 1990년대 이후 오랜 기간 동안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특수고용 노동자도 존재하고 있다. 한국의 특수고용 노동은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사용-종속성에 기반한 협소한 노동자성 정의를 넘어서 새로운 형태로 노동을 수행하는 다양한 직종이 등장하고 있는 지금, EU의 플랫폼 노동 지침(EU Platform Work Directive)처럼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입법 노력이 필요하다.

개별 비정규 유형별 입법 과제를 넘어서 비정규 노동자 전체를 위한 더 근본적이면서 핵심 입법 과제가 존재한다. 바로 노동조합법 개정이다.

노동조합법 개정이야말로 근본적 핵심적 입법 과제

2023년 11월 9일 야당 주도로 △ 노조법상 사용자 범위 확대 △ 쟁의행위 범위 확대 △ 손해배상 책임 구분, 신원보증인 보호 등의 내용을 담은 노조법 2조, 3조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법안으로는 확정되지 못했다. 22대 국회 개원 시 최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입법 과제가 바로 노조법 개정안이다. 2000년대 초 비정규 노동문제가 이슈화될 당시부터 요구되어 왔던 내용으로서 특히 사용자 범위 확대가 핵심이다. 현 노동조합법 제 2조 2호의 사용자 정의는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로서의 사용자 정의에 머무르고 있다. 즉,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면 노동조합의 교섭 상대방인 사용자가 아니다. 그에 따라 간접고용, 특수고용 노동자의 경우 임금, 노동조건을 결정하고 있는 실질 사용자와 사실상 교섭할 수 있는 제도적 경로가 막혀 왔다. 실질 사용자는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라는 주장으로 비정규 노동자의 교섭 요구를 손가락 튕기듯이 거부해 왔기 때문이다.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는 노조법 2조 개정안은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로 하여금 실제 사용자를 대상으로 교섭할 권리를 확보할 수 있게 한다. 노조법 2조, 3조 개정은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가 2008년부터 한국 정부에 줄기차게 권고한 사안이기도 하다.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노동조합과 같은 자주적인 이해대변체를 통한 당사자 간 교섭·협의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근로기준법은 최저 기준일 뿐 임단협을 통한 교섭과 합의를 통해 임금, 노동조건뿐만 아니라 작업장, 직종, 나아가 업종 차원에서 노동 규준(規準, labor standards)을 만들 수 있으며, 이를 지역-산업 차원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

노동조합법 개정과 관련해 노동조합설립 신고(申告)주의 조항(제12조, 신고증의 교부)도 폐지, 또는 개정해야 한다. 상당수 국가들에서 최소한의 관리를 위해 노동조합설립 신고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한국의 신고주의는 사실상 허가(許可)주의다. 노동관청에 노조 설립신고를 하고, 노동관청의 요건 심사를 거쳐 신고증을 ‘교부’받아야만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노동조합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특수고용 노동조합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조 신고증을 교부받기까지 지난한 투쟁 과정을 거쳐 왔다.

신고주의 노동행정 절차는 한국이 비준한 ILO 핵심 협약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 ‘단결권 및 단체 교섭 원칙 적용에 대한 협약’(제98호) 위반일 가능성도 높다. ILO 협약 87호와 98호에서 통상 ‘근로자’로 번역되고 있는 해당 단어는 ‘employee’가 아닌 ‘worker’이다. 피용자, 즉 임금노동자뿐만 아니라 폭넓게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노동3권이 보장됨을 명시하고 있다. 사실 결사·단결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누구에게 신고하고 인정받아야 하는 권리가 아니다. 결사 목적에 대한 주체들의 동의를 통해 외적으로 구현되는 권리이기에 한국 노동관청의 엄격한 신고주의 절차는 ILO 핵심 협약, 나아가 헌법상 결사의 자유 원칙을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1일 대구 중구 대구시의회 앞 도로에서 열린 '2024 세계 노동절 대구대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의 질서 유지선 펜스를 들어내고 있다. 2024.5.1. 연합뉴스
 1일 대구 중구 대구시의회 앞 도로에서 열린 '2024 세계 노동절 대구대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의 질서 유지선 펜스를 들어내고 있다. 2024.5.1. 연합뉴스

마무리하며: 22대 국회 “노동조합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 명심해야

이 글은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한 핵심 입법 과제를 언급했지만, 더 폭넓으면서 다양한 입법 수요 또한 존재한다. 근로기준법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명문화 및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 금지 조항 추가, 사회안전망 확대 차원에서 상병 수당 제도화, 취약노동자 노동권 보호를 위한 지방정부의 노동계획 수립 및 노동자 지원센터 설치 입법화, 비정규직 대표권 개선을 위해 초기업 교섭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수립 등이 대표적이다. 비정규 노동자를 비롯한 한국 사회 노동자 모두에게 필요한 입법 과제이다.

하지만, 필자가 20여 년 넘게 노동 관련 이러저러한 활동을 하면서 확신한 것은 법·제도도 중요하지만 이를 요구할 주체, 바로 노동조합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법은 멀고 (사용자의) 주먹은 가까운’ 경우가 다반사이다. 자본주의 고용관계(employment relationship) 자체가 하루 일정 시간 동안 노동자 자신의 노동력 처분권을 자본이 지급하는 임금과 맞교환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근대 자본주의 역사에서 사용자의 주먹, 즉 자본의 자의적·악의적 노동력 처분권을 막아내 왔던 것은 노동자 연대, 곧 노동조합 밖에는 없다. 윤석열 정부 2년 사이에 한국 사회의 노동조합은 거의 조폭 급에 달하는 악마(?)가 됐다.

“내 가족의 생계 보장을 원하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 2015년 9월, 미국 노동절을 맞아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한 내용 중 일부이다.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오바마 발언의 만분의 일조차도 기대하지 않는다. 연목구어(緣木求魚)이자 각주구검(刻舟求劍)이기 때문이다. 다만 22대 국회를 구성할 300명 국회의원이 이 점만큼은 꼭 명심하기를 바란다. 홉스봄(Hobsbawm)이 언급한 ‘노동조합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동서(東西)를 막론하고 이래저래 욕먹어 왔지만 노동조합은 공장 문 앞에서 멈추는 민주주의가 공장 담벼락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기제였다. 근대 자본주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제도적·형식적 민주화를 넘어서 한 사회의 민주주의를 실질화·심화시켜 왔던 가장 유력한 주체는 노동조합이었다는 점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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