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수급하면 최대 50% 감액법 추진

실업급여는 노동 취약계층 최후의 보루

좋지 않은 일자리 전전하는 노동자 많아

실업급여까지 줄면 생활고에 빠질 위험

노동계 “고용 시장 불안부터 해소해야”

지난해 논란이 됐던 실업급여 개편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고용노동부가 구직급여 반복 수급자에 대한 수급액 감액 등의 내용을 담은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은 2021년 국회에 제출됐으나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었다. 노동계와 일부 야당 의원이 반대해 폐기될 법안이었는데 정부가 22대 국회 출범을 앞두고 다시 추진하고 있다.

정부와 개편론자들은 실업급여 반복 수급으로 인한 고용보험 기금 고갈과 노동시장 구조 왜곡, 가입자 간 형평성 저해 등을 이유로 꼽고 있다. 실업급여를 반복 수급해도 불이익이 없는 데다 다른 나라보다 하한액이 높아 실업자의 구직 의지를 약화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개편론자들이 내세우는 근거다.

 

지난달 실업자 수가 8만 명 이상 증가하며 3년여 만에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고용센터에 붙은 실업급여 관련 안내문. 2024.5.17. 연합뉴스
지난달 실업자 수가 8만 명 이상 증가하며 3년여 만에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고용센터에 붙은 실업급여 관련 안내문. 2024.5.17. 연합뉴스

하지만 이 주장은 열악한 일자리를 전전하느라 불가피하게 실업급여를 여러 번 받아야 하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외면한 진단과 처방이다. 반복 수급액 감액이나 하한액 하향 조정 또는 폐지로 부정 수급자를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 근무할 수 있는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이 직장 저 직장을 옮겨 다니는 노동 취약계층을 생활고로 몰아넣을 위험이 크다. 사회안전망인 실업급여의 기능이 반감되는 셈이다. 노동계는 정부 개편안에 대해 “실업급여 반복 수급이 늘어나는 건 고용 정책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정부와 노동자를 비용 절감 수단으로만 보는 기업에 있는데 그 원인과 책임을 노동 취약계층에 전가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달 말까지 정부가 입법 예고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실업급여를 5년간 2회 이상 받은 후 다시 지급 대상이 됐을 때 수급 횟수를 기준으로 최대 50% 감액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다시 구직급여를 받기 위한 대기기간도 기존 7일에서 최대 4주로 늘리기로 했다. 구체적인 감액 범위는 시행령으로 정하기로 했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들은 물론 예술인과 특수고용직의 고용보험 가입자도 적용된다.

고용부는 입법 예고문에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높은 임시직 근로자 비중과 짧은 근속기간 등으로 반복 수급이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는 구조”라며 “반복 수급은 노동시장 구조 왜곡을 고착화하고 가입자 간 형평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21대 국회가 끝나면서 폐기될 법안을 다시 입법 예고한 것에 대해서는 “새 국회에서 논의를 위한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관례적으로 정부 발의 법안을 재입법예고 하는 것으로 기존 법안과 같은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현행 고용보험법은 최고 근무일(180일)을 일하면서 고용보험을 납부했다면 횟수 제안 없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급여액은 나이와 일한 기간에 따라 4~9개월간 실업 직전 평균임금의 60% 수준에서 책정된다. 다만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80%를 넘어야 한다. 최저임금이 오르며 실업급여가 실제 임금보다 많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건 이 조항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정부와 국민의힘이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법안을 추진했던 근거가 됐다.

 

17일 국회 앞에서 열린 ‘실업급여 삭감·폐지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관련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3.7.17 연합뉴스
지난해 7월 17일 국회 앞에서 열린 ‘실업급여 삭감·폐지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관련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3.7.17 연합뉴스

고용보험 기금의 낭비를 막기 위해 부정 수급이나 악의적 반복 수급을 걸러내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반복 수급액을 일괄 감액하거나 급여 수령 대기기간을 늘리는 것은 실업급여의 순기능을 훼손하는 정책이다.

고용보험법에 명시된 실업급여는 노동자가 갑자기 일자리를 잃어 막막한 상황에서 기본적 삶을 지탱하는 물질적 기반이다. 이런 측면에서 일괄 감액보다 부정 수급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지금도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해고됐다는 사실를 제시해야 하고, 구체적인 구직 활동을 수시로 보고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묘한 수법으로 실업급여를 부정 수급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을 100% 적발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반복 수급자에 대한 실업급여를 일괄 감액한다면 노동 취약계층이 피해를 본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실업급여를 5년간 3회 이상 받은 반복 수급자는 지난해 11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작년에만 이들이 받은 급여는 5000억 원에 달한다. 반복 수급자는 지난 2019년 8만 명대로 올라섰고, 2021년 처음 10만 명을 넘어섰다. 정부는 이런 통계 수치를 바탕으로 실업급여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실업급여가 급증하는 것은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고용 불안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실업급여 개편보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고용 정책이 더 시급하다는 뜻이다.

 

4월 고용동향. 취업자 실업자 증감 추이
4월 고용동향. 취업자 실업자 증감 추이

대다수의 실업급여 수급자는 계약직과 파견, 용역 등 비정규직 노동자다. 실업급여가 감액되면 곧바로 생활고에 빠질 수 있는 이들이다. 퇴직금 대신 실업급여를 받게 해주겠다고 하는 악덕 기업도 적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4일 민생토론회에서 노동 약자 보호법을 제정하겠다고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 법에는 질병이나 실업으로 어려울 때 도움받을 수 있는 공제회 설치 지원과 권익 증진을 위한 재정지원사업의 법적 근거 등이 담길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해 실업급여를 여러 번 받을 수밖에 없는 노동자가 바로 '노동 약자'다. 이들을 위하는 척하며 보호법을 만들기 전에 이들이 직면한 현실부터 살펴봐야 한다. 실업급여를 어쩔 수 없이 반복해서 받는 노동 약자에게 실업급여액이 줄어든다는 것은 생존이 걸린 문제다.

“정부가 반복 수급에 대해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을 게 아니라 안 좋은 일자리를 반복해서 갈 수밖에 없는 노동시장을 개선해야 한다. 고용 불안의 원인은 기업들의 무분별한 비정규직 확대와 이를 방기하거나 조장하는 반노동 정책 때문이다.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임금체불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실업급여마저 개악한다면 취약계층 노동자들은 생계에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정부는 노동계의 이런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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