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의 노예들 : 대리기사 이야기 ④]

차주가 생각보다 후한 운임을 주며 미안해할 때

고라니와 멧돼지가 출몰하는 시골길에서의 후회

요행히 대리 호출을 잡아 탈출할 때도 있지만

다음 콜을 기대할 수 없는 외진 곳, '대리 지옥'

눈비 오는 날 운행 주저하는 건 게으름 탓 아냐

유흥업소 천국 강남 일대서 벌어지는 클릭 전쟁

전동휠‧전동킥보드로 이동하고픈 '위험한 유혹'

이득신 작가
이득신 작가

김포의 번화가에서 김포시 하성면 ◯◯리로 가는 호출을 잡은 적이 있다. 김포에서 김포로 가는 길이지만 생각보다 운임이 좋았다. 같은 지역에서 운행하며 3만 원을 받는 것은 행운이다. 가끔, 차주가 호출을 취소하고 더 빠른 대리기사를 잡는 일도 발생한다. 그래서 부리나케 차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10분 내로 도착한다는 통화와 함께 걸음을 재촉했다. 차주는 예의도 바르고 깍듯했다. 술도 과하지 않게 마신 듯했다. 가는 내내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미안한 일은 아니지.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 하는 일인데, 너무 착하고 매너 좋은 분이구만….'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곳은 한적한 시골이었다. 갈수록 가로등이 사라지고 있었다. 순간 고라니 한 마리가 눈앞에 번쩍하고 나타났다. 하마터면 로드킬로 영문 모를 생명을 앗을 뻔했다. 거의 20킬로를 주행해서 도착한 목적지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시골 동네였다. 돌아서 걷는 발걸음에 주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치적 용어로는 이곳을 도농복합도시라고 부른다. 원래 김포는 대부분 농어촌이고 접경지역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호출에 응한 내 탓이리라.

이런 곳을 서울로 편입하려 하다니, 자본의 탐욕이 얼마나 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해야 이 못된 자본주의가 해결될 수 있다는 말인가. 서울로 편입되면 무조건 집값이 올라가겠지. 김포 같은 시골도 개발 호재로 우리 집 논밭 팔아서 도시인들처럼 떵떵거리면서 살 테야. 자본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고 인간은 자본에 길들여진다. 이런 이유로 본능에 충실한 자본주의는 결코 종말을 맞이하지 않을 게 뻔하다.

차주의 미안함에 대한 이해와 나의 지리적 무지로 인한 처량함이 눈가를 적셨다. 가로등도 없는 2차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앱으로 택시를 호출했지만 나의 고달픔을 위로해 주기 위해 달려오는 택시는 없었다. 체념하며 걷는 등 뒤로 불빛이 느껴졌다. 승용차 라이트가 눈앞으로 다가오는 순간, 급히 태워달라는 몸짓과 함께 손을 들었지만 그는 나를 황급히 피해 도망치듯 더 빠른 속도로 멀리 달아났다. 조금 전 나에게 치일 뻔했던 길 잃은 고라니의 슬픔을 생각했다. 인간의 섬에 발을 헛디딘 고라니가 내 처지와 아픔을 위로하듯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좀 더 걸으니 멧돼지 한 마리가 꿀꿀거리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선 이내 숲으로 사라졌다.

 

양양 남대천 인근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농로를 서성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양양 남대천 인근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농로를 서성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렇게 늦은 시간 외딴길에 먼 길을 달려올 택시는 없을 거야. 이 시골길을 홀로 걷는 사내는 아마도 북에서 온 무장 공비이거나 무시무시한 범죄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지. 내가 택시 기사라도 이런 곳엔 오지 않을 것이고, 승용차 운전자였어도 무서워서 도망쳤을 거야.'

결국 시골 마을에서 한 시간여를 걸어 도착한 곳이 그나마 행정복지센터가 있는 면소재지였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간, 세상은 음침하고 고요하며 거룩하기까지 했다. 면소재지라서 그나마 가로등 몇 개라도 불을 밝히고 있는 게 다행이었다. 버스 첫차는 5시까지 기다려야 한다. 피로에 지친 시간, 작은 여관이 눈에 들어왔다. 들어갈까 말까 한참을 서성거렸다. 여기까지 힘겹게 걸어왔는데, 운행으로 번 3만 원이 순식간에 날아갈 수 있는 숙박 비용이었다. 힘들게 일한 돈을 숙박비로 날린다는 억울함이 30여 분을 망설이게 했다. 그렇게 여관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그 순간 대리 호출이 왔다. 이게 웬일인가. 바로 이곳 여관에서 대리기사를 부른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그날은 그렇게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외진 곳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귀가를 해야 하니, 당연히 대리운전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대리기사 입장에서는 운행 이후 그곳을 탈출해야 하는 숙제가 언제나 가슴을 짓누른다. 다음 콜을 기대할 수 없는 외진 곳을 대리기사들은 '대리 지옥'이라고 부른다.

 

장맛비가 내리는 2일 서울역 인근 도로에서 주행 중인 차량들이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2024.7.2. 연합뉴스
장맛비가 내리는 2일 서울역 인근 도로에서 주행 중인 차량들이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2024.7.2. 연합뉴스

요즘 같은 장마철이나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은 대리기사의 숫자가 평시 대비 3분의 1 이하로 줄어든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눈비 맞으며 땀까지 흘려야 하는 상황 때문에 차에 오르는 순간 땀내와 쉰내가 차량에서 진동한다. 평상시 걷는 것보다 눈비 오는 날 걷는 일은 훨씬 더 많은 체력이 요구된다. 사고의 위험성도 눈비 오는 날 대리운전 노동을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렇게 대리기사 숫자가 현저히 적은 날에는 약간의 건당 대리 비용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돈벌이만 생각한다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하려 하겠지만 더 큰 위험을 감내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객들은 자신들의 안전한 퇴근만을 생각하며 궂은날 대리기사 없음을 대리기사의 게으름으로 치부한다. 모든 노동계급 중 최하층의 노동자에게만 유독 가해지는 매서운 비난이기도 하다. 눈비 오는 날도 대리 지옥이다. 차라리 대리운전을 포기하는 것이 지옥문을 열지 않는 현명한 방법이다.

늦은 시간 수도권의 남쪽 지역에 도착하면 대리기사들은 몇몇이 모여 함께 강남으로 이동을 하곤 한다. 앱에서 확인되는 대리기사가 500미터 부근에서 두세 명이 눈에 띈다. 함께 이동하자고 메시지를 보내고 강남으로 향한다. 강남은 대리기사들의 지옥이다. 피크 타임에는 강남역과 역삼역 인근에만 500명이 넘는 대리기사들이 개미굴처럼 진을 치고 있다.

범위를 넓혀 강남구, 서초구 일대에선 몇천 명의 대리기사들이 콜을 기다리며 좀비처럼 어슬렁거린다. 그곳에서는 나도 좀비가 된다. 콜이 뜨면 먼저 잡는 사람이 주인이다 보니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클릭 전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그 시간대에 대리 콜은 그 많은 대리기사의 간절한 염원을 모두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한 콜의 당첨을 위해 매일 수백, 수천 명의 대리기사가 강남‧서초 인근에서 선택되기만을 기다린다.

강남은 대한민국의 중심을 넘어 자본주의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강남 스타일'이라는 노래 하나로 가수 싸이는 빌보드 차트 2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한국 가수로는 최초의 일이었다. 노래에 열광한 외국 여행객들이 한때 가장 먼저 찾는 장소가 강남이기도 했다. 그런 강남에는 수많은 대기업이 위치해 있고 고급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강남의 유흥업소는 퇴폐한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이곳을 지배한다. 여기서 대리기사들은 '낙수효과'를 기대한다. 지옥인줄 알면서도 기사들은 오늘도 강남을 찾는다.

 

전동킥보드를 타고 이동하는 시민..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동킥보드를 타고 이동하는 시민.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부 대리기사는 신속한 이동을 위해 전동휠, 전동킥보드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도보로 이동하는 불편함에서 벗어나 신속하게 움직인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이동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린다. 대리기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나도 전동휠 구매를 고민했다. 봄이 시작되고 있었고 남쪽 지방에서는 벚꽃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콜을 수락하고 고객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을 때, 전동휠로 이동하던 다른 대리기사가 도로의 홈을 미처 보지 못하고 넘어져서 사고가 나는 현장을 목격하고 말았다. 다행히도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기에 머리는 다치지 않았지만 온몸에 타박상을 입은 것이다. 급히 119를 불러 응급조치를 하고 그 자리를 뜬 적이 있다. 이후 나는 전동휠로 이동하는 고민을 접어버렸다. 이동하는 방법에도 대리 지옥은 존재한다.

지난 4월에는 시흥에서 킥보드를 타고 이동하던 대리기사가 주차되어 있던 화물차에 부딪혀 사망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인천 서구 인근에서 활동하며 특이한 복장 때문에 많은 이들이 기억하던 60대 대리기사가 있었다. 그는 청소 노동자들이 주로 착용하는 형광색 옷을 입고 전동킥보드를 타고 이동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런 이동장치로 이동할 때 대리 콜이 울리면 본능적으로 핸드폰에 눈길을 주기 마련인데, 그런 이유로 사고가 나면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대리기사들의 이동 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서도 플랫폼 운영사 측에서 어떤 식으로든 대책을 세우거나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본인의 부주의로만 치부하기엔 그들의 부상이나 사고가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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