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돌리기, 다단계, 꼬드김 외 아무것도 안 하고

임금의 30%까지 떼어 아파트 산다는 사장님들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내가 지난달에는 300 좀 넘게 벌었어요. 받는 일당에서 ‘업체’가 10프로를 떼 가는데 30만 원이 넘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업체 통해서 일 얻는다고 한 달에 30만 원 갖고 가는 거는 너무한 거 아닌가요?”

필자가 5년 전 시화공단에서 만난 비정규 노동자의 중간착취 얘기이다. 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자료를 보면 대한민국 전체 노동자의 임금 평균이 대략 264만 원가량이었으니 ‘비정규직치고는 꽤 많이 받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위 얘기는 주 6일 일하는 노동자로 연장근로까지 치면 노동시간이 주 50시간을 훌쩍 넘었다.

중간착취 업체들 활동무대는 10인 미만 말단 하청사업체들

이번 글에서는 반월·시화공단을 중심으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중간착취 실태, 그중에서도 ‘업체’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시화공단은 1만 1천여 개의 사업체에 12만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국가산업단지이다. 단순 평균하면 업체당 고용 인원이 10.9명에 불과하다. 소수의 대형 사업체 때문에 평균 인원이 두 자리일 뿐 90% 이상은 10명 미만의 소규모 제조사업체이자 하청사업체이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기아차, 한국 GM 등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의 최하위 말단 하청사업체로 보면 된다. 필자가 만난 사업체 중에서는 기아차 부품을 제조하는 5차 하청업체도 있었다. 건설업만큼이나 다단계 하청인 셈이다.

인력관리 측면에서 소규모 제조-하청사업체의 가장 큰 어려운 점은 바로 물량 변동, 즉 생산량 변동에 따른 고용조절이다. 경기 변동, 물량 변동에 따른 상위 원청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에 생산량 변화에 따른 고용 조절이 즉시 이루어져야 한다. 생산량이 많을 때는 인원을 늘리고, 생산량이 적을 때는 바로바로 인원을 줄여야 한다. 사실상 인건비가 업체 이윤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시화공단 사업체들이 가장 많이, 또 편하게 이용하는 방법이 바로 ‘업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인력이 필요하면 업체를 통해 사람을 보내달라 하고, 일거리가 줄어서 인력이 필요 없으면 업체에게 ‘내일부터 보내지 마세요’라고 전화하면 끝이다. 노동자에 대한 JIT(Just-in-Time) 체제이자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의 고용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리고 업체는 다시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에게 전화나 문자로 해고 통보하면서 ‘사무실로 나오세요’라고 한다.

 

서울 구로구 대림동의 직업소개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 구로구 대림동의 직업소개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위에서 언급한 ‘업체’가 바로 유료직업소개소, 파견·용역업체, ‘○○ 인력’ 등 다양한 명칭으로 노동력 소개·공급업을 영위하는 사업체들이다. 지하철 4호선 안산역의 원곡동 인근, 정왕역의 정왕동 근처에는 ‘인력 소개’ ‘파견’ ‘용역’ ‘○○ 인력’이라는 간판을 단 사업체들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노동 연구기관의 조사·실태 보고서에서는 민간고용서비스기구(private employment services)로 불리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노동시장중개기구(labor market intermediaries)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노동시장 내 수요자와 공급자를 매개(intermediate)하는 업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수취한다.

10%는 기본, 30%까지 떼어 아파트 산다는 업체 사장님들

이들 업체들은 시화공단 소규모 제조사업체에 인력을 소개하거나 파견하고 일당이나 월급에서 통상 10%를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가져간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노동자 임금의 10%를 업체가 가져가는 것은 명백한 직업안정법 위반이자 노동자로부터 금전적 수취를 금지한 ILO 협약 위반의 중간착취이지만 너무나도 당연시되고 있다. 이 글 모두에서 언급한 일용직 노동자의 사례도 여기에 해당된다. 불법체류 상태인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에는 더하다. 임금의 20%~30%를 떼는 경우도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처지의 궁박함을 이용한 사실상의 인신 착취로서 1970~80년대 한국 사회 여성노동자에 대한 인신매매와 거의 유사하다. 고향 식구를 위해 취업을 해야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1970~80년대 상경 여성의 딱한 처지를 악용한 인신 착취가 21세기에 다시금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업체를 통해 취업하는 노동자가 최소 수십 명이 될 테니 업체별로 벌어들이는 중간착취 몫도 엄청날 것이다. 시흥이나 안산 지역에서 업체 사장 1년 하면 아파트 한 채를 산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셈이다. 필자가 있는 시화노동정책연구소가 2021년 진행한 ‘경기도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 중간착취 실태조사’를 보면 업체에 수수료를 지급한다고 밝힌 노동자 880명의 한 달 수수료 총액은 1억 3000만 원이 넘었다. 단순 평균하면 1인당 월평균 14.7만 원이다. 조사 참여 노동자의 월 임금이 207만 원 수준인데, 임금의 7.1%가 업체 수수료인 셈이다. 하지만 업체의 불법·탈법적인 행위가 법 위반의 중간착취만 있을까?

“파견을 썼는데 그중에 한 친구가 일을 잘해서 그 친구를 우리 회사 정직원으로 뽑으려 했더니 며칠 뒤부터 안 나오는 거예요. 업체 사장이 얘기하기를 그만뒀대요. 그런가 보다 하고 있다가 한 달쯤 뒤에 일 때문에 우리 부품 하청사업장에 갔더니 그 친구가 거기서 일하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된 거냐, 정직원 시켜줄려고 했는데 왜 그만뒀냐 물었더니 자기는 몰랐대요. 그냥 (업체) 사장이 여기로 가라고 해서 왔다고 얘기하더라구요.”

‘빼돌리기’, 다단계, 꼬드김 외 정말 아무 것도 안 하는 업체

일명 ‘빼돌리기’이다.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업체 사장의 농간으로 사용사업체의 정규직이 될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업체 입장에서 보면 업체를 통해 취업하는 노동자는 황금알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입 즉 이윤의 원천이다. 그 원천을 사용사업체에게 빼앗기는 일은 용납할 수 없기에 다른 사업장으로 파견 보내는 것이다. 앞에서 업체는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에게 해고 통보를 하면서 사무실로 다시 ‘나오라’고 했는데, 업체가 해고 통보를 하면서 왜 사무실에 나오라고 할까? 동일한 이유이다. 업체가 공급했던 노동자가 쉬는 것 또는 다른 업체를 이용해 취업하는 것은 곧 업체의 수입이 줄어듦을 의미한다. 어떻게든 취업시켜야만, 그래야지만 업체에 이윤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나아가 인력 풀 확보를 위해 다단계 영업을 하기도 한다. 업체에게 인력 규모는 곧 이윤의 크기이기에 업체 이용 노동자에게 친구를 데려오면 일당이나 시급을 더 쳐주는 것이다. 반(半)강제 소개·파견도 한다. 노동자가 원하는 형태의 일이 아님에도 반은 꼬드김과 반은 강제로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필자가 언급한 이런 상황에 대해 ‘노동자가 그런 업체를 이용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고용안정센터나 워크넷 이용하면 되잖아?’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용복지플러스센터나 워크넷과 같은 공적 고용서비스 기관은 생계를 위해 빨리 ‘취업해야’ 하는 노동자의 절박함을 반의반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즉 업체를 통한 빠른 취업은 노동자에게는 생존을 위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업체의 이윤으로 연결된다.

파견·용역업체는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를 위해 무엇이라도 하는 일이 있지 않을까? 주기적으로 사용사업체에 접대는 하지만 노동자에게는 거의 없다. 대중교통이 시화공단 안까지 연결되지 않기에 안산역, 정왕역에서 봉고차로 출퇴근시키는 일 외에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 노동시장중개기구와 관련한 해외 연구에서는 업체가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를 위한 교육·훈련에 일부는 준(準)이해대변 역할까지 한다고 하지만, 말 그대로 그것은 다른 나라 얘기이다.

“얼굴 볼 일이 없어요. 처음 (사용사업체) 면접 볼 때 같이 와 준 거 외에는 없어요. 제가 7개월 일하는 동안에 (업체) 사장 얼굴 본 게 그게 다예요.”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청소를 하고 있다. 2017.7.20.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청소를 하고 있다. 2017.7.20. 연합뉴스 자료사진

노동자 고용 불안해야 이윤 높아지는 업체의 영업 비밀

필자가 지난 10여 년간 각종 사례 조사를 하면서 확인한 점은 반월·시화공단에 있는 업체들은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의 고용이 불안해야 수입, 즉 이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기적인 해고 속에서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는 취업을 위해 업체를 찾을 것이기 때문이며, 그래야 업체는 ‘수수료’를 얻어 이윤을 취하기 때문이다. 업체를 이용하는 노동자 대부분은 기혼 여성·이주노동자이다. 한국 노동사회에서 가장 주변부 노동자층이기에 임금도 낮지만 그나마 낮은 임금에서도 삥뜯기고 있다.

2024년 반월·시화공단의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가 처한 상황은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는 80년 전, ILO의 필라델피아 선언이 지양(止揚)하고자 했던 노동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암울한 현실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이들이 처해 있는 노동 현실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노동사회에서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지 지속적인 공론화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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