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샤니 공장서 또 노동자 끼임 사고로 사망
지난해 10월 사망사고 때 안전 경영 약속했지만
생산 현장의 ‘위태로운 노동 관행’ 바뀐 게 없어
총수 일가 지배력 확대와 경영 승계에만 관심
경실련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여부 꼼꼼히 따져야”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경영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스로 제빵 기술을 배울 만큼 사업에 대한 열정이 강하다. 형인 허영선 회장이 경영하던 삼립식품이 투자 실패로 경영난을 겪었던 것과 달리 파리바게뜨와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등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부도난 삼립식품까지 인수해 삼립과 샤니, 파리크라상, 비알코리아 등을 묶어 SPC그룹을 세웠다. 파리바게뜨 등 해외 사업도 질주하고 있다. 2014년 바게트의 본고장인 파리에 파리바게뜨 매장을 개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허 회장의 경영은 기초부터 무너지고 있다.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다. 기술은 시장에서 살 수 있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다. 고위 임원과 엔지니어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일선 노동자도 기업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최고경영자는 이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렇지 못하면 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뛰어난 경영인으로 명성이 높았던 허 회장이 이런 기본 중의 기본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SPC 계열사인 샤니 제빵공장에서 지난 8일 50대 여성 노동자가 반죽 기계에 끼여 중태에 빠졌다가 결국 숨을 거뒀다. 지난해 10월 휴면 반죽을 생산하는 계열사 SPL 평택공장에서 유사한 사고 난 뒤 1년도 안 돼 또 비극이 일어났다. 지난달 끼임 사고까지 합치면 1년에 3번이나 똑같은 사고가 일어난 셈이다. 지난해 SPL 공장 사망사고 이후 여론이 좋지 않자 허 회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SPC 안전경영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노동자 안전을 위해 3년간 1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생산 현장의 ‘위태로운 노동 관행’은 바뀌지 않았다. 반복되는 사고가 이를 말해준다.
여러 차례 사망사고가 일어났는데도 허 회장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SPL이 별도 법인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신 전문경영인인 SPL 대표이사가 업무상 과실치사와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고용부는 이번 샤니 제빵공장에서 노동자가 숨진 사건에 대해서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을 조사하기로 했다. 허 회장은 샤니의 대주주로 경영에 실질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지난해 1월 시행에 들어간 중대재해처벌법 제1조는 “안전 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하여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SPC그룹 총수인 허 회장은 실질적인 경영책임자다. 고용부와 검찰도 형식상 직위나 명칭과 상관없이 안전보건 확보 의무 이행에 관한 최종적인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을 경영책임자로 보고 있다. 지난해 SPL 평택공장 사고 이후 허 회장이 직접 사과한 것은 자신이 경영책임자임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1일 발표한 성명에서 “허 회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 회장은 계열사 부당 지원 혐의 등으로 최근까지 검찰 수사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3~2018년 SPC그룹 생산 계열사 8곳이 만든 제빵 재료 등을 중간 유통업체인 삼립을 끼고 구매해 381억 원을 부당 지급했다며 2020년 7월 SPC 총수 일가를 검찰에 고발했다. 삼립은 허 회장을 포함한 총수 일가가 지분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다. 공정위는 총수 일가 지배력 유지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립 매출을 의도적으로 늘리기 위한 부당 거래행위로 판단했다.
검찰이 지난 6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은 측면이 있다. SPC그룹은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불법파견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유독 많았다. 지난해 노동자 사망사고 이후 많은 시민이 SPC 불매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허 회장의 안전불감증과 비윤리적인 경영 행태가 자초한 결과다. 돈만 잘 버는 사람은 장사꾼일 뿐이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총수가 이익만 추구하며 사람을 중시하지 않으면 그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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