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김용균 끼임사망' 원청 무죄, 하청 집유 확정
낡은 법리 적용해 관계자 아무도 실질처벌 안받아
중대재해법 확대 필요성 보여준 김용균 대법 선고
김용균 어머니 "목숨조차 돈과 저울질하게 만들어"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의 사망 사고에 대해 형사 책임을 원청 기업 대표에게 물을 수 없다고 대법원이 결론 내렸다. 이번 판결은 거대한 자본에 대항해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에 맞서온 시대의 흐름을 역행한 '사법부 실패'로 기록될 전망이다.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 중대재해처벌법의 확대 시행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된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7일 오전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에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에서의 안전조치 의무 위반, 인과관계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던 한국발전기술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용균(당시 24세) 씨는 지난 2018년 12월 11일 오전 3시 20분쯤 태안군 원북면에 있는 태안화력 9·10호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전날인 12월 10일 오후 10시 41분부터 오후 11시 사이 컨베이어 벨트 등을 점검하고 석탄 처리 작업 등을 하는 과정에서 컨베이어 벨트 끼임 사고를 당했다.
검찰은 2020년 8월 원·하청 기업 법인과 사장 등 임직원 14명에게 사망 사고에 대한 형사 책임이 인정된다며 재판에 넘겼지만, 법원은 1·2심 모두 김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한국서부발전은 안전보건관리 계획 수립과 작업환경 개선에 관한 사항을 발전본부에 위임했고, 태안발전본부 내 설비와 작업환경까지 점검할 주의 의무가 없다"고 했다. 대법원도 이날 원심을 확정함으로써 김 전 사장 등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하게 됐다.
김 씨 사후 이른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강화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됐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는 등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졌지만, 대법원은 산안법상 안전조치 의무 위반 책임을 묻기 위해 '실질적 고용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낡은 법리를 그대로 유지했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경영자 책임을 강화함으로써 안전사고 예방을 강화하는 시대 흐름을 따라가도록 판결을 바로 잡아야 했다.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고 달랑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은, 선량한 시민의 기대를 외면한 책임 방기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 대법원이 이러한 시대 흐름을 인식했다면 원·하청 대표에게 일정 부분 책임을 지도록 해야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 전 사장 외에도 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 기술지원처장, 연소기술부·석탄설비부 책임자, 백남호 전 발전기술 사장, 태안사업소장 등 10명과 발전기술 법인에 대해서도 대부분 금고형이나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해 실형 선고를 받은 이는 전무했다. 사실상 관계자 모두에게 죄를 묻지 않은 셈이다.
이 때문에 이번 판결은 역설적으로, 아직도 우리 사회에 제2, 제3의 김용균을 만들 위험이 얼마나 잠재돼 있는지, 또 자본과 기득권이 안전에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보여준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정부와 여당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추가 유예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타당성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판결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정부·여당과 경영인 단체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 활동을 위축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과 다른 측면이 있다.
지난해 1월 이 법이 시행된 이후 단 1년 동안 600명이 넘는 노동자가 떨어지거나 끼이거나 부딪히거나 물체에 맞거나 깔려 죽었다(고용노동부 2022년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전체 현황을 바탕으로 추정).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된 사건은 28건에 불과하며, 1심 법원 판단이 내려진 11건 중 1건을 제외하고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세계일보, 한겨레신문 판결문 분석 인용).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그럼에도 기업 활동 위축 등을 이유로 이미 유예를 해준 사업장을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또다시 유예하는 것은, 산업현장을 더 안전한 일터로 만들자는 법의 취지를 형해화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오히려 법 시행 이후 안전보건관리 체계가 강화되면서 일부 효과도 확인된다. 법 시행 기간이 아직 짧고 전반적인 경기 여건 등도 고려해야 하므로 단정할 수 없지만, 고용부가 조사한 '2023년 9월말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현황(잠정)'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누적 사고사망자는 45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19명보다 무려 19%가 줄었다. 2명 이상 사망하는 대형사고 발생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감소(22→20명)했다. 통계를 조금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 필요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같은 통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전체 사고사망자의 58.2%(267명)가 정부·여당이 법 시행 유예를 주장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소형 사업장의 안전 사각지대가 더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게다가 모든 업종에서 사망자 수가 크게 감소했지만, 정부가 기업의 '효율성'만 강조하며 일방적으로 노조 때려잡기에 나섰던 50인 이상 건설사업장만 유일하게 사망자 수가 18.3% 증가(82→97명)했다.
이 같은 법원 심리 결과와 통계들은 기업 차원에서도 안전을 '유예'하는 것보다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갖추는 것이 이득이 크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무죄 판결을 내린 사법부는 이날 대법원 앞 기자회견에서 있었던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의 발언을 뼈 아프게 새길 필요가 있다. "기업과 정부 기관이 수십년간 이해관계로 얽혀 사람의 중함은 무시된 채 목숨조차 돈과 저울질하게 만든 너무도 부당한 사회를 만들어 놓았다." 법원도 정부도 국회도 상식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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