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장관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고민 중”
여당도 2026년 1월까지 유예하는 법안 제출
올 상반기 중대재해 발생 사망사고 9.1% 줄어
“산업 현장 사고 막는 효과 서서히 나타날 것”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을 소규모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하는 방안을 유예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로 예정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에 대해 “현장에서 노사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는 83만 사업장 중 40만 사업장에 대해 예산이나 인력이나 준비가 부족한 데 대해서 지원을 많이 했으나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법이다. 지난 2021년 제정돼 지난해 1월 27일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적용됐다. 산업안전보건법 등 기존 법률이 있으나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줄지 않아 경영책임자에게 강력한 법적 의무를 부여해 산업 현장의 치명적인 사고를 막겠다는 취지로 제정됐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데다 일부 법 조항이 폭넓게 해석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들어 재계는 법 제정에 극구 반대해왔다. 법이 시행된 뒤에도 처벌 규정을 완화하는 쪽으로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2년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1월 27일 시행할 예정이었다. 그런데도 재계는 준비 부족을 이유로 추가 유예를 요구하고 있고, 정부도 재계 편을 들어주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하겠다고 했다. 지난 7월 올해 하반기 경제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기업 투자 결정을 저해하는 '킬러 규제'로 낙인찍기도 했다. 이정식 장관의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은 확대 적용 유예기간을 늘리는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다.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 유예기간을 2026년 1월 27일까지 2년 더 늘리자는 내용이다.
재계의 주장과 달리 중대재해처벌법은 서서히 안착하고 있다. 고용부도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 근거해 법 위반 1호 선고 사건을 공표하는 등 법의 실효성을 높이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법이 시행되기 전에 재계는 처벌받는 최고경영자가 쏟아지고 기업들의 투자 기피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으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처벌 수위가 낮아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법 위반 혐의로 검찰이 기소한 사건도 많지 않다. 특히 재판에 넘겨진 대기업은 극히 드물다.
올해 상반기 중대재해 발생 사고사망자 수는 1년 전에 비해 10% 가까이 감소했다. 고용부가 조사한 ‘2023년 6월 말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산업 현장의 사고사망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318명보다 9.1%가 감소한 289명에 그쳤다. 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284건으로 작년 동기보다 17건(5.6%) 줄었다. 다만 건설업과 기타 업종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공사 금액 50억 원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7명 늘었다.
전체 사망사고가 감소한 현상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 그러나 산업 현장에서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한 경각심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재계는 중소기업의 준비 부족을 호소하고 있으나 유예기간이 3년에 달했다는 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교육과 안내, 무료 컨설팅 등 많은 지원 사업을 벌였다. 그런데 또 시행을 유예하면 법을 지킬 유인을 떨어뜨릴 수 있다. 2년이 지난 뒤에도 재계는 준비 부족을 이유로 다시 유예를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부작용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킬러 규제’가 아니다. 선진국보다 중대재해가 과도하게 많은 한국의 산업 현장을 더 안전한 일터로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법이다. 불분명한 규정이 있으면 손질하면 된다. 시행을 유예하거나 법 취지를 무력화하는 전면 개정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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