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인 회장 부당노동행위 혐의

조합원 승진 막고 노조 탈퇴 강요

어용 노조 동원해 노조 와해 시도

노동자 사망·노조 파괴 혐의에도

허 회장 책임진 적 한 번도 없어

파리바게뜨와 배스킨라빈스, 던킨 등 유명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운영하는 SPC그룹의 허영인 회장이 5일 검찰에 구속됐다. 그는 지난 2019년 7월부터 2022년 8월까지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에게 노동조합 탈퇴를 압박하고 이에 불응하면 승진 누락 등 불이익을 주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2일 허 회장을 긴급 체포하고 4일 영장을 청구했다.

 

SPC그룹 허영인 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SPC그룹 허영인 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기업 총수가 이 정도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건 이례적이다. 그만큼 죄질이 좋지 않다는 의미이며 기업의 반노동 행태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검찰이 총선을 앞두고 허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건 논란이 될 수 있다. SPC의 노조 파괴 행위가 7년 전에 시작됐다는 점에서 질질 끌다가 느닷없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남천규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를 받는 허 회장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최장 20일 허 회장의 신병을 확보해 노조 탈퇴를 강요하는 과정 등에 개입했는지를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가 5일 허 회장과 같은 혐의로 이미 구속 기소된 황재복 SPC 대표이사의 공소장을 입수해 보도한 내용을 보면 이번 사건은 지난 2017년 9월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결과에서 발단이 됐다. 당시 노동부는 파리바게뜨 가맹본부인 파리크라상에 협력업체 소속 제빵기사를 직접고용하고 협력업체들에 체불된 임금을 지급할 것을 시정 지시했다.

이에 SPC는 자회사인 PB파트너즈를 세워 제빵기사를 고용하려 했으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는 본사 직접고용을 요구했다. 양쪽은 수개월 논쟁을 벌이다가 2018년 1월 파리바게뜨지회가 자회사 고용을 받아들이는 대신 본사는 3년 이내에 파리크라상 수준으로 임금을 인상하기로 ‘사회적 합의’을 했다. 여기에는 정당과 시민단체 등도 참여했다.

그러나 PB파트너즈는 협력업체 출신 중간관리자를 내세워 한국노총 전국식품산업노동조합연맹 PB파트너즈노동조합(PB노조)을 설립했다. 그 중간관리자가 PB노조 위원장을 맡아 회사의 부당노동행위에 적극 협조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들의 승진을 막고 어용 노조인 PB노조로 옮기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황 대표 공소장에 따르면 SPC는 또 어용 노조를 이용해 회사가 사회적 합의를 이행했다는 것을 홍보했다. 이에 파리바게뜨지회 임종린 지회장은 2022년 3월 말부터 두 달 가까이 단식투쟁을 벌이는 등 합의 이행을 촉구했다. 임 지회장은 당시 집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명단을 만들어 관리자들에게 다른 업무는 하지 말고 민주노총 조합원 매장만 찾아가고 민주노총 0% 만들라고 업무 지시하고 민주노총 탈퇴서를 받아 가면 돈을 줬다고 한다. 민주노총 탈퇴시키고 한국노총 가입시키면 추가로 돈을 줬다고 한다”고 폭로했다. 그는 또 “지노위, 중노위, 고용노동부에서 진급 차별, 부당노동행위 인정했는데도 회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 노노갈등으로 몰아간다”며 SPC의 노조 파괴 실태를 알렸다.

검찰도 파리바게뜨지회가 허 회장 자택 주변 등에서 시위를 벌이자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 노조 파괴에 나선 것으로 본다. 황 대표 지시로 민주노총 조합원이 없는 ‘클린 사업장’을 만들라는 목표를 각 지역 사업장에 전달해 본격적인 노조 탈퇴 종용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런 부당노동행위를 허 회장이 지시했고 이후 진행 상황을 보고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도 검찰이 확보했다고 한다. 검찰은 또 SPC가 2020년 9월부터 2023년 5월까지 검찰 수사관을 통해 허 회장의 공정거래법 위반 및 배임 혐의 수사 정보를 빼돌리는 과정에도 허 회장이 관여했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다.

 

서울 서초구 SPC그룹 본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SPC그룹 본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SPC그룹의 반노동 경영이 질타를 받기 시작한 것은 2022년 10월 SPC 계열사 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 근무자가 소스 배합기 기계에 몸이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부터다. 허 회장은 곧바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노동자 안전을 위해 3년간 1000억 원을 투자하고 안전 경영을 위한 위원회 출범도 약속했다.

그러나 달라진 게 없었다. 지난해 8월 SPC 계열 샤니 제빵공장에서 50대 여성 노동자가 반죽 기계에 끼여 결국 목숨을 잃었다. 비슷한 사고가 1년도 안 돼 또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도 허 회장은 처벌은커녕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사고가 난 회사가 별도 법인이라는 이유로 그룹 총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허 회장은 이번 구속 사유가 된 노조 파괴 건에 대해서도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SPC그룹은 입장문에서 “병원에 입원 중인 고령의 환자에 대해 무리하게 체포영장을 집행하고 피의자에게 충분한 진술 기회와 방어권도 보장하지 않은 채 구속영장까지 청구할 정도로 이 사건에서 허 회장의 혐의가 명백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SPC그룹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해 중요한 시기에 유사한 상황(검찰 수사)이 반복돼 매우 유감이며 검찰이 허 회장 입장에 대해 더 신중하게 검토하기를 바랐으나 그렇지 않은 현 상황에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밝혔다. SPC그룹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파리바게뜨 4000개, 배스킨라빈스 1600개, 던킨 600개 파스쿠찌 470개 등 약 6200개의 가맹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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