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올해 100명 시범사업으로 도입하기로

최저임금 감안하면 중국동포와 차이 별로 없어

정부가 일부 비용 부담…저소득층은 ‘그림의 떡’

먼저 시행한 싱가포르 등 출산율 안 높아져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3.28.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3.28. 연합뉴스

정부가 외국인 가사노동자 100명을 연내 시범사업으로 입국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들어와도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부작용이 많다는 비판이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31일 ‘외국인 가사근로자 시범사업 계획안’ 공청회를 열었다. 계획안에 따르면, 고용허가제(E-9) 인력으로 들어온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은 서울에 거주하며 아이를 키우는 20∼40대 맞벌이 부부, 한부모 가정, 임산부 등이 있는 집에서 일한다. 가사노동자 규모는 약 100명이며 시범사업 기간 6개월을 거쳐 본 사업으로의 확대 여부를 판단한다. 고용허가제는 국내 근로자를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 등이 정부로부터 고용허가서를 발급받아 외국인을 고용하는 제도다. 이 제도로 필리핀·베트남·태국 등 16개국 노동자가 국내서 일하고 있다.

정부 인증을 받은 기관(업체)이 외국인 가사노동자와 계약을 맺고, 노동자는 숙소에서 일할 가정으로 출퇴근하며 일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검토된다.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출신 국가로는 가사서비스 관련 자격증 제도를 운영하는 곳이 우선 검토한다. E-9 비자가 적용되는 16개국 중에서 필리핀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필리핀 출신 가사노동자는 자국 직업훈련원에서 6개월간 훈련받은 뒤 수료증을 발급받아 외국에서 일할 수 있다.

정부는 가사노동자의 경력과 지식, 연령, 한국어와 영어 능력, 범죄 이력 등을 검증한다. 정신 질환자, 마약류 중독자, 범죄 이력이 있으면 선발에서 제외된다.

비용 만만치 않아 고소득층만 혜택

정부는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근로기준법도 적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이들이 받은 임금은 최소 월 201만580원이다.

현재 입주형 내국인 가사노동자는 서울 기준으로 월 350만∼450만 원을 받는다. 외국인 가사노동자(주로 중국동포)의 경우 월 250만~350만 원을 받는다. 정부 계획대로 필리핀 등의 가사노동자가 들어와도 중국동포 가사노동자 등과 비교할 때 비용이 크게 줄지 않는다. 서민층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부대 비용도 만만치 않아 고용주인 업체가 의무 부담하는 보험료, 교육비, 일부 중개 수수료가 서비스 이용료에 포함될 수 있다. 이 같은 비용을 포함하면 실질 비용은 200만 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혜택은 고소득층에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내국인이나 중국동포 가사노동자보다 조금 적게 비용을 지불하고, 자녀의 영어 공부 등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필리핀 이모’를 고소득층이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숙소는 서비스 제공기관(인증 받은 업체)이 마련하지만, 서울시가 예산 1억 5000여만 원을 들여 숙소비, 교통비, 통역비 등 초기 정착 비용을 지원한다. 서민층은 고용하기 힘든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비용을 정부가 지원해 고소득층이 혜택을 보는 구조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의 도입 과정을 보면 고소득층을 위한 것이라는 의심이 더욱 짙어진다. 이 제도를 처음 주장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9월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육아 도우미 정책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은 합계출산율(여성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 0.81명(올해 1분기 기준)이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1970년대부터 이 제도를 도입했고 출산율 하향세가 둔화됐다. 한국 육아 도우미는 월 200만~300만 원이 드는데 싱가포르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76만 원 수준”이라고 적었다.

그러자 3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100만원 외국인 가사도우미’ 법안을 발의했고, 윤석열 대통령도 국무회의 비공개 발언을 통해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명목은 저출생 극복이었지만 실제 목적은 ‘고소득층의 가사노동자 비용 절감’이 아닌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저출산 해소에 도움 안 될 듯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도입한 홍콩과 싱가포르의 합계출산율은 2021년 기준으로 각각 0.7명과 1.02명으로 세계 꼴찌 수준이다. 세계 238개국의 합계출산율을 낮은 순으로 보면 홍콩이 1위, 한국이 2위(0.88명), 싱가포르가 5위이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돌봄을 개인 부담으로 전가하고 돌봄의 가치를 평가절하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조정훈 의원이 말하는 가사도우미 제도는 가사노동 자체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대한 임금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내국인 가사노동자들에 대해서도 그 정도의 임금을 받으면 되는 일이라고 보는 시각, 가사노동 자체에 대한 폄하가 깔려 있다”라고 말했다.

제도 도입은 가사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지난해 도입된 ‘가사근로자법’을 무력화하기도 한다. 가사근로자법은 요건을 갖춘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을 정부가 인증하고, 가사노동자의 최저임금, 4대 보험 등을 보장하지만 아직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저임금인 국내 가사노동자와 외국인 가사노동자 사이의 ‘을과 을 갈등’을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 내국인 돌봄·가사 업무 취업자는 지난해 현재 11만 4000명으로 이들 중 63.5%가 60대 이상, 28.8%가 50대로 고령화돼 있다. 젊은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들어오면 이들은 더욱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

이날 공청회가 열린 서울 중구 로얄호텔서울 정문 앞에서는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시민단체들이 ‘가사노예제도 시범사업 웬말이냐, 당장 중단하라’라는 제목으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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