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두 달째 '경기 둔화 완화' 진단 내놔
물가 잡힌다?…국제유가 상승으로 불안 여전
수출 회복세?…이달에도 감소 연중 지속 전망
고용 나아져?…청년 취업자 줄고 전망도 암울
소매판매 줄고 경기동행지수도 기준점 이하로
"건강이 나쁘지만 나빠지는 속도는 줄어든다."
정부 당국의 우리 경제에 대한 진단이다. 그나마 이런 진단의 근거도 현상을 왜곡하거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듯하다. 정부는 말버릇처럼 '상저하고', 즉 상반기는 낮겠지만 하반기에는 올라간다는 주문을 외고 다녔다. 경제성장률이 하반기에는 올라갈 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하반기에 들어 벌써 두 달이 지나 석 달째를 절반이나 지났지만 경기가 나아진다는 기미나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상저하고'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가 상승세는 잡히고, 수출 부진은 완화되고, 고용 사정은 나아지고 있다고 정부는 주장한다.
기획재정부는 15일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9월호에서 "국제유가 상승 및 계절적 요인에 따른 변동성은 있지만, 경기 둔화 흐름이 일부 완화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도저히 경기가 회복된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으니 '둔화'가 '완화'된다고 한다. 지난달 '경기 둔화 지속'에서 '경기 둔화 완화'로 표현을 바꾼 뒤 이를 고수하고 있다.
정부가 진단의 근거로 든 물가부터 짚어보자.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3.4%가 상승했다. 절대 수준은 높다고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지난 7월의 상승률 2.3%와 비교하면 가파른 오름세다. 더구나 반년 가량 지켜온 상승률 둔화세가 꺾였고, 지난 4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이다.
기재부는 지난달 물가 상승세가 국제유가 상승과 농산물 가격 불안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강변한다. 전반적인 물가 상승세의 둔화 흐름은 유지되고 있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의 감산으로 국제 유가는 급등하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해 작년 11월 이후 10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11월 인도분 브랜트유도 올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처럼 국제유가 급등의 영향으로 지난달 수출입 물가가 지난해 3월 이후 1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기준 수입 물가는 전달 대비 4.4%, 수출 물가도 4.2%나 상승했다. 수출입 물가 모두 지난해 3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수출입 물가는 1~3개월 시차를 두고 국내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전반적인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정부의 진단은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 어렵다.
정부는 경기 둔화의 완화의 근거로 수출 감소의 둔화를 들었다. 지난달 수출의 전년 동기 대비 감소율이 전달인 7월보다 거의 절반 수준으로 둔화됐다는 주장이다. 무역수지도 8억 7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해 3개월 연속 흑자를 보이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월별 수출 증감률은 지난 5월 –15.4%에서 6월 –6.0%로 감소 폭이 줄었다가 7월에 다시 –16.4%로 크게 내려갔다가 지난달 –8.4%를 기록했을 따름이다. 이달 들어서도 10일까지 수출 감소율은 7.9%를 보이고 있어 이런 추세라면 수출 감소가 1년 이상 지속될 공산이 크다.
무역수지 흑자도 수출 감소보다 수출이 더 크게 줄어 생긴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다. 지난달 수입은 22.8%나 크게 감소했다.
7월 경상수지는 35억 8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상품수지와 소득수지는 흑자가 유지됐지만, 서비스 수지는 여행수지 악화의 영향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8월 경상수지는 서비스수지 적자가 확대되고 중간배당 등의 영향을 받아 흑자 폭이 축소될 전망이다.
고용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는 정부의 설명도 어이가 없을 정도다.
지난달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26만 8000명 증가했다는 게 정부가 강변하는 근거다. 7월보다 증가 폭이 커졌고 이는 3월 이후 5개월 만이다. 15세 이상 고용률은 63.1%로 통계 작성 이후 8월 기준으로는 역대 최고치다. 실업률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수치를 놓고 고용 사정을 나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고용률이 늘어난 것은 60대 이상 고령층의 취업자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60세 이상 취업자는 30만 4000명 늘었다. 바꿔 말하면 60대 이상을 제외한 나머지 연령대에서는 취업자가 3만 6000명이나 줄었다는 얘기다. 특히 청년층(15~29세) 10만 3000명, 경제 사회생활의 중추인 40대도 6만 9000명이 감소했다.
내수 회복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소매 판매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7월 소매 판매는 전월보다 3.2%로 전년 동월보다 1.7% 감소했다. 8월 소비자심리지수도 전월보다 0.1p 하락한 103.1을 기록했다. 7월 전산업생산은 작년 동월보다 1.4% 감소했다. 서비스업과 건설업 생산은 늘었으나 광공업과 공공행정 생산은 줄었다. 현재 경기를 가늠하는 지표인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전월보다 0.5p 하락해 기준점인 100 아래(99.6)로 떨어졌다.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IT 업황 개선 기대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 관광객 증가 기대감과 주요국 경기 둔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며 "추석 물가안정 등 민생안정에 역점을 두면서 대내외 리스크의 철저한 관리 및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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