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450원 돌파…금융위기 이후 최고
미국 금리인하 늦어지면 강달러 지속
반도체 수요 감소에 중국은 덤핑 공세
삼성전자·SK하이닉스 실적 부진 초래
트럼프 2기 출범 후 벌어질 관세 전쟁
대미·대중 수출 감소…위기 더 커질 듯
국내 정치 불안이 완전하게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 한국 경제를 강타할 3대 대외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19일 서울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의 환율과 주가 흐름은 그 전조 현상을 보여줬다. 대외 악재는 달러 강세와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 도널드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펼쳐질 글로벌 관세 전쟁이다. 이들 악재가 내년에 한국 경제를 덮치면 한국은행이 가장 최근 발표한 성장률 전망치 1.9%도 위태로울 수 있다.
대외 악재 겹치며 환율 치솟고 주가 급락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이 열리자마자 달러당 1450원을 돌파했다. 심리적 저지선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다.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환율 급등의 진원지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제롬 파월 의장의 입이었다. 연준은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해 4.25~4.50%로 낮췄다. 그런데 금융시장을 뒤흔든 건 금리인하가 아니라 연준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나온 파월 의장의 발언이었다.
“오늘 공개된 통화 정책 방향 결정문에 금리조정의 ‘폭과 시기’라는 표현으로 금리 추가 조정 속도를 늦추는 게 적절한 시점에 도달했거나 부근에 도달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인플레이션 전망이 다시 높아짐에 따라 금리 전망 중간값도 다소 높아졌다. 인플레이션이 더 강해지면 금리인하 속도를 더 늦출 수도 있다.”
연준은 이날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내년 기준금리 전망치 중간값은 3.9%로 지난 9월 전망보다 0.5%포인트 높였다. 내년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 전망치도 2.1%에서 2.5%로 높였다. 물가 안정에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파월 의장 발언 전에는 연준이 내년에 3회 이상 금리를 내릴 것으로 시장은 예상했다. 그러나 연준에서 매파적(통화 긴축적) 정책 방향이 제시되며 금리인하가 2회에 그칠 확률이 높아졌다.
이에 다우존스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나스닥 지수 등 뉴욕 증시는 일제히 급락했다. 국내 증시도 외국인 투자자 매도 물량이 늘며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 모두 큰 폭으로 하락했다.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48.50포인트(1.95%) 내린 2435.93에 장을 마쳤고, 코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3.21포인트(1.89%) 하락한 684.36을 기록했다.
연준 금리인하 속도 조절 소식에 환율 급등
미국이 금리인하 속도를 늦춘다는 건 내년에도 달러 강세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원화뿐 아니라 이날 주요국 통화 가치도 급락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화 지수가 가파르게 오르면 2022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화 지수는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상승세를 탔는데 파월 의장의 매파적 발언이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환율 급등은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다. 수출 단가가 높아지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원자재 수입 비용이 급증해 기업들의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등 해외에 생산시설을 늘리고 있는 반도체와 배터리 기업들도 투자비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 연간 10억 배럴 이상의 원유를 수입하는 정유업계와 유류 비용이 많은 항공업계도 타격이 크다. 다른 업종도 정도의 차이일 뿐 고환율로 부담이 커지는 건 마찬가지다. 한국 경제 전체가 고환율 폭탄으로 큰 피해를 보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제 겨우 안정된 물가가 다시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고환율은 수입 물가를 밀어 올리고 몇 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국내 경기가 부진해 물가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부도 내수 진작을 위해 확장 재정을 펼쳐야 할 시기다. 물가가 다시 상승해도 대응할 카드가 없다. 고물가로 국민 지갑이 얇아지는 사태가 다시 벌어질 수 있다.
주력 수출 품목 반도체 시황도 부정적
미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마이크론)의 실적 전망도 19일 국내 주가를 끌어내린 요인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마이크론의 점유율은 높지 않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보다 실적을 먼저 발표하기 때문에 마이크론의 전망은 메모리 반도체 시황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마이크론이 이날 발표한 9~11월 실적은 시장 기대치에 부응했다. 그러나 PC·스마트폰 D램 수요 부진이 내년 2월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전망이 국내 반도체 기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가 발표한 PC용 D램 범용 제품의 평균 고정 거래가격은 지난 7월 2.1달러에서 지난달 1.35달러로 4개월 만에 35.7% 하락했다. 반도체 기업들의 감산 효과로 D램 가격은 작년 10월부터 반등했으나 지난 8월부터 상승세가 꺾였다. 정보기술(IT) 기기의 판매가 줄며 메모리 수요와 가격도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격 하락을 초래하는 또 다른 요인은 중국 반도체 기업의 덤핑 공세다.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등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은 저가로 물량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 중국 대표주자인 CXMT가 한국 기업이 생산하는 고사양 반도체까지 양산에 성공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기술 수준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턱밑까지 이른 것이다. 중국 기업들의 약진은 한국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줄어든다는 걸 의미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서는 대외 악재가 이중삼중 겹친 셈이다.
트럼프 2기 출범 후 관세 전쟁 격화 우려
내년 1월 트럼프 2기 출범도 나쁜 쪽으로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트럼프는 보편관세와 중국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결정된 미국 투자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약속도 불투명해졌다. 그의 공약이 실행되면 글로벌 관세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각국이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세계 교역량은 줄어든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치명적이다.
한국무역협회는 19일 열린 ‘2025년 산업경제 진단 및 대응 방향’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 공약대로 10%의 보편관세와 60%의 대중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이 10.1%, 대중 수출도 2.5%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환율과 반도체 부진, 관세 전쟁이라는 3대 악재 한국 경제를 집어삼킬 태세다. 내년 우리 경제에 초대형 쓰나미가 덮칠지 모른다.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만이라도 빨리 해소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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