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등에 소비자물가 다시 들썩

고환율 내년 하반기까지 이어질 수도

느려진 미국 금리 인하 속도도 악재

되살아난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악몽

실질소득 줄어 국민 고통 더 커질 듯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민 삶을 고달프게 만들었던 고물가가 새해 다시 덮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통계청이 2024년 마지막 날인 31일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도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고물가의 진원지는 12.3 내란 이후 급등한 원/달러 환율이다.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환율이 급등했다. 한 달도 안 돼 달러 대비 원화 가격은 100원가량 떨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환율은 상승세를 타고 있었는데 내란 사태까지 겹치며 더 가파르게 올랐다.

원/달러 환율은 석유류를 필두로 수입 물가를 밀어 올리고 생산자물가를 거쳐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이달 급등한 환율은 내년 2~3월 소비자물가에 반영될 것이다. 문제는 달러당 1500원에 육박한 고환율이 내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 정책으로 달러 강세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인덱스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100선에 머물렀으나 지금은 108 안팎을 넘나들고 있다.

 

통계청 공미숙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이 3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동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24.12.31. 연합뉴스
통계청 공미숙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이 3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동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24.12.31. 연합뉴스

내란 사태로 급등한 환율, 내년 물가 위협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31일 열린 ‘물가상황 점검회의’에서 “최근 고환율로 내년 1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가 전망경로 상에는 환율 움직임과 소비심리 위축 영향, 공공요금 인상 시기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커져 향후 물가 흐름을 주의 깊게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불길한 전망은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9%로, 전월(1.5%)보다 0.4%포인트 상승했다. 물가가 다시 2%대에 근접한 것은 우리 경제에는 매우 위험한 신호다. 올해 월별 물가 상승률을 보면 연초에는 높은 농산물 가격으로 3%대에 달했으나 4월부터 2%대로 내렸고 9월 1.6%를 기록한 뒤 10월(1.3%)과 11월(1.5%)은 비교적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12월 들어 하락 안정세를 보이던 물가 흐름이 바뀌었다. 통계청은 석유류 가격이 1.0% 올라 4개월 만에 상승 전환한 것에 주목했다. “석유류가 환율 영향과 전년도 하락에 따른 기저효과, 유류세 인하 변화 등으로 올랐다.” 여기에 더해 농산물 가격도 작황 부진에 따른 출하 부족으로 2.6% 상승률을기록했다. 가공식품은 출고가가 인상으로 2.0% 올랐다.

 

소비자 물가 추이. 연합뉴스
소비자 물가 추이. 연합뉴스

고환율 여파로 올해 물가 안정 목표 달성 실패

물가가 다시 들썩이며 정부는 올해 물가 안정 목표인 2.0%를 달성하지 못했다.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지수는 114.18(2020년=100)로 지난해보다 2.3% 올랐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돼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2.7%에 달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첫해인 2020년 0.5% 이후 4년 만에 상승률이 가장 낮았지만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최근 연도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1년 2.5%에 이어 2022년 5.1%, 2023년 3.6%로 높은 흐름을 이어갔다.

올해 농산물과 과일은 작황이 부진했던 데다 전근대적 유통 구조 탓에 폭등했다. 농산물 물가는 10.4% 올라 2010년(13.5%) 이후 14년 만에 가장 높았다. 귤과 사과, 배추 등 과일과 채소 가격도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국제 유가가 하락하며 석유류 가격이 작년보다 11.1% 떨어졌고 서비스와 전기·가스·수도 물가 오름세가 약해지며 지난해보다는 상승률이 하락했다.

 

자료 : 통계청. 12월 소비자물가 동향
자료 : 통계청. 12월 소비자물가 동향
자료 : 통계청. 2024년 연간 소비자물가 동향
자료 : 통계청. 2024년 연간 소비자물가 동향
자료 : 통계청, 주요 품목 물가 상승률
자료 : 통계청, 주요 품목 물가 상승률

‘달러당 1500원’ 2025년 하반기까지 이어질 수도

2025년에는 새해 벽두부터 물가가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원/달러 환율 흐름이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이다.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환율이 더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의원이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서 받은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내년 1분기 말 환율 전망치 중간값을 1435원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당선이 확정된 직후인 지난달 8일 기준 전망치 중간값보다 130원 급등했다. 12.3 내란 사태가 그렇지 않아도 약세인 원화 가치 하락을 더 부추긴 결과다. 투자은행들은 내년 2분기 말 전망치 중간값을 1440원, 3분기 말 1445원으로 하반기에 환율이 더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내년 2분기에 1500원으로 오른 뒤 3분기까지 이 수준을 이어질 것으로 보는 곳도 있다.

한국은행 외자운용원도 30일 공개한 ‘2025년 글로벌경제 여건 및 국제금융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달러 강세가 지속될 것으로 봤다. 미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탄탄한데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 등으로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 인하 속도를 낮출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대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내년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거나 찔끔 인하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본다. 특히 도이체방크는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노무라는 0.25%포인트, 바클레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 모건스탠리 등 3곳은 0.5%포인트 인하를 전망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 이전에는 연준이 이보다 큰 폭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원/달러 환율 추이. 연합뉴스
원/달러 환율 추이. 연합뉴스

새해 경제 안갯속인데 제주항공 참사까지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미국의 금리 인하 속도가 느려지면 한국은 곤란한 처지에 빠진다. 기업 투자를 촉진하고 내수 경기를 부양하려면 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보유한 달러를 푸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KIEP 등은 환율이 급등할 때 보유한 외환(달러)을 방출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단기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국가 신인도를 약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섣부른 시장 개입은 환율 안정 효과보다 외환보유액 소진과 대외신인도 하락이라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도, 적극적으로 외환 시장에 개입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내란 사태로 정부가 정상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악재 중에 악재다. 설상가상으로 무안 제주항공 참사까지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30일 예정됐던 ‘2025년 경제 정책 방향’ 발표를 연기했다. 지금 우리 경제에 고물가와 고환율, 고금리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그런데도 이를 막을 방파제가 없는 형국이다. 실질소득 감소와 자산 가격 하락으로 국민 고통은 더 심해질 것이다. 그나마 내란 사태의 빠른 종식만이 경제 혼란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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