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8월 경제 동향’서 “내수 회복 조짐”

KDI는 “내수 미약한 수준 경기 회복 제약”

소매판매지수 금융위기 이후 감소 폭 최대

내수 침체에 청년·건설업 취업자 크게 줄어

길어진 고물가·고금리에…내수 회복 요원

“설비투자 중심으로 완만한 내수 회복 조짐을 보이며 경기 회복 흐름이 지속되는 모습” (기획재정부)

“반도체를 중심으로 높은 수출 증가세가 지속되었으나, 내수는 미약한 수준에 그치며 경기 개선을 제약하는 모습” (KDI)

기획재정부(기재부)와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상반된 내수 경기 진단과 전망을 발표했다. 두 곳은 모두 통계청의 같은 경제 지표를 인용했다. 그런데 내수 경기를 보는 시각은 딴 판이다. 어느 한쪽은 거짓말을 하거나 현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민 눈을 가리고 있는 쪽은 정부의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하는 기재부다. 내수가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고 당분간 회복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은 최근 발표된 몇 가지 경제 지표만 봐도 알 수 있다.

 

기획재정부 중앙동 청사 기재부 사옥 전경-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제공]
기획재정부 중앙동 청사 기재부 사옥 전경-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제공]

소매판매지수 2022년 2분 이후 9분기째 감소

통계청은 지난 11일 올해 2분기 소매판매액지수(불변)를 발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 떨어졌는데 이는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분기(-4.5%) 이후 15년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2022년 2분기 0.2% 하락을 시작으로 9분기 연속 감소이기도 하다.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 등 소비와 밀접한 서비스업 생산도 1년 넘게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소매판매액지수는 개인·소비용 상품을 판매하는 2700개 기업의 판매액을 조사한 결과다. 이중 불변지수는 물가 상승의 영향을 제거한 값이다. 경제 주체들의 실질적인 재화 소비를 보여주는 지표다.

올해 2분기 설비투자지수(계절조정)도 1년 전보다 0.8% 감소했다. 지난해 3분기(-10.5%)와 4분기(-4.5%) 연속 감소했던 설비투자지수는 올해 1분기 0.6% 소폭 상승했으나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공사비 급등 등의 여파로 건설경기도 얼어붙었다. 건설업체 국내 공사의 현장별 시공 실적을 금액으로 환산해 집계하는 건설기성(불변)은 1년 전보다 2.4% 감소했다.

 

 자료 : KDI. 소매판매액지수와 소비심리지수 추이.
 자료 : KDI. 소매판매액지수와 소비심리지수 추이.

내수 침체에 고용의 질도 계속 나빠져

통계청이 8일 내놓은 제조업 국내 공급지수도 내수 부진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 지수는 국내외에서 생산된 제품이 국내에 유입돼 유통되는 제품의 실질 공급 금액을 의미한다. 올해 2분기 제조업 국내 공급지수(잠정치)는 106.8(2020년=100)로 작년 2분기보다 2.2% 감소했다. 지난해 3분기 이후 4분기째 줄고 있다. 제조업 국내 공급지수가 이처럼 오랫동안 감소한 것은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0년 이후 처음이다.

내수 불황은 고용시장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7월 고용동향’을 보면 전체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7만 명가량 늘었으나 청년층(15~29세) 취업자는 15만 명 줄었다. 청년층 취업자 감소는 2022년 11월 이후 21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고용의 질도 좋지 않다. 60대 이상 고령층 취업자는 7월에 약 28만 명이 늘었다. 고령자를 빼면 취업자는 큰 폭의 감소로 바뀐다. 고령층 일자리는 저임금 단기가 많다. 건설경기가 나빠지며 건설업 취업자도 지난달 8만 명 넘게 줄며 2013년 이후 감소 폭이 가장 컸다.

 

2024년 7월 고용동향. 연합뉴스
2024년 7월 고용동향. 연합뉴스
2024년 7월 고용동향(연령별 취업자 현황) 자료 : 통계청
2024년 7월 고용동향(연령별 취업자 현황) 자료 : 통계청

기재부는 “내수 회복 조짐, 경기 회복” 딴소리

현실이 이런데도 기재부는 내수 전망을 낙관하고 있다. 수출과 제조업 호조세에 설비투자 중심의 완만한 내수 회복 조짐을 보이며 경기 회복 흐름이 지속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내수 지표들은 최악을 향하고 있는데 회복 조짐이 보인다는 설명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기재부는 이 논평을 내놓기에 앞서 부진한 경제 지표를 열거했다. 기재부는 “내수 회복이라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모자라 ‘조짐’이라는 단서를 달았으나 경기 회복이라는 큰 틀은 변화하지 않았다”고 했다.

기재부가 ‘내수 회복 조짐’을 주문처럼 반복한 건 처음이 아니다. 4개월 전부터 내수 회복 조짐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내수 경기 침체는 계속되고 있다. KDI의 경기 동향 판단은 기재부와 완전히 다르다. 똑같은 통계를 인용하면서도 “내수가 미약한 수준에 그치며 경기 개선을 제약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KDI는 "반도체 업황 호조로 수출이 양호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으나 서비스업 생산이 낮은 수준이고 건설투자도 감소세를 지속하는 등 내수 회복세가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소매 판매 감소세와 대출 연체율 상승세가 이어지고 건설 수주의 누적된 부진이 건설투자의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고용 여건도 점차 악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KDI는 지난해 12월부터 줄곧 내수가 부진하다는 진단을 해왔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 지속되면서 경제 전반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비관적'으로 돌아섰다. 사진은 최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의 모습. 연합뉴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 지속되면서 경제 전반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비관적'으로 돌아섰다. 사진은 최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의 모습. 연합뉴스

극심한 내수 부진에 올해 성장률 전망치 하향

내수 부진은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 2분기 한국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한 주요 원인도 내수 침체에 있다.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2%를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다섯 분기 연속 이어진 플러스 성장 기조가 깨진 것이다.

내수 부진을 반영해 KDI를 비롯해 주요 기관들이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KDI는 5월 전망치 2.6%를 3개월 만에 2.5%로 낮췄다.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 등 민간 연구소들도 2%대 후반에서 2%대 중반으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내수 침체 원인은 고물가와 고금리가 길어지고 있어서다. 물가가 폭등하며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은 2022년과 지난해 2년 연속 줄었고 올해도 뒷걸음질 중이다. 지갑이 얇아지고 이자 부담이 늘면서 대다수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니 내수가 좋을 리 없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줄줄이 폐업하고 이들의 대출 연체율도 최고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임금 소득자와 자영업자, 영세 중소기업인들은 극심한 내수 침체에 하루하루 힘들게 살고 있는데도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앞세워 내수 부양책을 쓰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대기업과 부자를 위한 감세에만 혈안이 돼 있다. 기재부가 ‘내수 회복 조짐’ ‘경기 회복 중’이라는 사이비 진단만 하고 있으니 민생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성장률 추이(2024년 2분기)
경제성장률 추이(2024년 2분기)
 KDI 올해 경제성장률과 소비자 물가 전망. 연합뉴스
 KDI 올해 경제성장률과 소비자 물가 전망.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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