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일가 요직 독점…지배구조 불투명

실적 나쁜데도 급여·성과급 두둑이 챙겨

ESG에서 E(환경)·S(사회적 책임)만 강조

“혈족 경영으론 지배구조(G) 개선 요원”

“국내 ESG(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 정보 공시 의무화가 2026년 이후로 예정되면서 ESG 경영은 이제 단순한 투자 트렌드를 넘어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 적극적인 ESG 경영을 통해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주주행동주의에 대응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대한투자공사-대한상의, ESG와 주주권리 세미나. [대한상의 제공] 연합뉴스.
대한투자공사-대한상의, ESG와 주주권리 세미나. [대한상의 제공] 연합뉴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투자공사(KIC)가 15일 공동으로 개최한 ‘ESG와 주주 권리 세미나’에서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이 강조한 말이다. 이번 세미나는 글로벌 투자기관들의 ESG 경영 요구가 거세지면서 국내 기업도 이에 대응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마련됐다. 세미나에서는 ESG 경영을 통해 기업이 장기적 가치를 높여야 글로벌 투자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과 한국에서도 행동주의 펀드에 의한 주주제안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이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이처럼 ESG 경영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나 한국 재벌기업들은 반쪽짜리 ESG 경영을 펼치고 있다. ESG 중에 환경 경영과 사회적 책임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총수 일가가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경영에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 관행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ESG 경영을 가장 강조하는 SK그룹만 해도 그렇다. SK는 어느 기업보다 열심히 환경 경영에 주력하고 있다. 주력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은 정유와 석유화학, 배터리, 자원개발 등 전 분야에 걸쳐 친환경 기술을 적용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하기도 했다. SK는 이사회 독립 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등도 강조해왔다.

 

최태원 SK 회장(오른쪽)이 지난 9월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과 경기 용인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공사 현장을 방문해 둘러보고 있다. 2023.9.15. 연합뉴스
최태원 SK 회장(오른쪽)이 지난 9월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과 경기 용인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공사 현장을 방문해 둘러보고 있다. 2023.9.15. 연합뉴스

그러나 올해 연말 인사를 보면 새로운 지배구조를 갖추겠다는 말이 진심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최태원 SK 회장은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그룹 총괄 협의체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앉혔다. 내년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고 주요 계열사의 실적이 저조한 상황에서 책임 경영으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설득력이 떨어진다. 최창원 부회장이 전문경영인보다 위기 극복을 위한 적임자인지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총수인 최 회장과 피를 나눈 혈족일 뿐이다.

SK그룹에서 수펙스는 계열사들의 사업을 조율하는 협의체에 불과하지만 그룹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과거 삼성의 미래전략실과 유사하다. 협의체 의장을 그룹 2인자로 보는 이유다. 이런 자리를 총수 일가가 차지했다는 것은 '전문경영인 중심 경영'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든다. 이번 인사가 “결국 믿을 사람은 혈족뿐”이라는 메시지를 준다는 점에서 ESG 경영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SK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거의 모든 재벌기업에서 총수 일가는 투명한 지배구조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성역'이다. 리더스인덱스 조사에 따르면 총수 일가는 평균 29세에 입사해 33세 무렵 임원이 되고 42세 전후로 대표를 맡는다. 그룹 총수에 오르는 나이도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이다. 일반 직장인과 비교하면 초고속 승진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그들의 승진이 실적이나 경영 성과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부진한 경영 성적을 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실적이 저조하면 퇴출되는 전문경영인과 전혀 다르다.

 

 자료: 경제개혁연대. 재벌개혁에 대한 여론
 자료: 경제개혁연대. 재벌개혁에 대한 여론

총수는 실제 일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많은 보수를 받고 있다. 주요 그룹 반기보고서를 보면 올해 상반기에만 총수들이 받은 보수는 적게는 수십억 원, 많게는 100억 원대에 달한다. 대표직을 맡고 있는 기업들이 적자를 내도 두둑한 보수를 챙기고 있는 것이다. 올 상반기 가장 많은 보수를 받은 재벌기업 총수는 신동빈 롯데 회장으로 총 112억5400만 원을 받았다. 박정원 두산 회장은 총 67억 7600만 원, 구광모 LG 회장은 59억 9500만 원을 챙겼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상장사 고액 보수 임원을 분석한 결과 복수의 계열사에서 각각 5억 원 이상의 근로소득을 올린 임직원은 2021년 75명, 2022년 95명이었는데 대부분 대기업 지배주주인 것으로 집계됐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20년 보수 공시를 분석한 자료에서도 5억 원 이상 보수 수령 임원 1512명 중 미등기 지배주주 비중은 8.6%에 불과했으나 50억 원 이상 구간에서는 27.1%이었다. 미등기 총수 일가의 보수가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다.

이런 현실은 ESG 경영 측면에서 한국 재벌기업의 지배구조가 단기간에 개선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해준다. 총수 일가를 특별 대우하는 관행이 바뀌지 않으면 글로벌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온전한 ESG 경영을 달성하기 어렵고 기업 가치를 올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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