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5년 만에 임원, 이후 8년 지나면 사장
일반 직원은 대표이사 오르려면 27년 걸려
"100m 달리기에서 70m 앞서 출발하는 셈"
"대기업 절반 이상 CEO 승계 원칙 없어"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30대 임원 달고 40대 초반에 사장”
재벌 총수 일가 경영인의 경력경로를 요약한 문장이다. 통상 일반 직원은 빨라도 40대 중반 임원이 될 수 있고 50대가 돼야 대표이사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이와 달리 총수 일가는 능력이나 성과와 상관없이 ‘금수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초고속 승진을 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처음부터 임원으로 입사한 사례도 적지 않다. 일반 직장인들과 출발선 자체가 다른 셈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는 국내 자산 순위 100대 그룹에서 현재 재직하고 있는 총수 일가 827명 중 사장단에 포함된 199명의 이력을 분석한 결과를 6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총수 집안 출신 경영인은 평균 30대 초·중반에 임원으로 승진해 이후 8년도 안 돼 사장 자리에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평균 28.9세에 입사해 5.4년 후인 34.3세에 임원으로 승진하고 이어 7.8년 후인 42.1세에 사장이 됐다. 40명은 입사와 동시에 임원을 달았는데 이들 중 21명은 경력 입사이며 나머지 19명은 경력 없이 처음부터 임원으로 회사에 들어왔다.
입사부터 초임 임원으로 임명되는데 걸리는 기간이 세대별로 차이가 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재벌 2세는 입자 후 평균 4.7년 만인 34.7세에 임원에 올랐으나 3, 4세는 이보다 0.6년 짧은 평균 4.1년 걸렸다. 그 결과 3, 4세는 2세보다 약 2년 빠른 32.8세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임원에서 사장을 거쳐 부회장이 되는 기간도 3, 4세들이 빨랐다. 임원에서 사장이 될 때까지는 2세들이 평균 7.8년(42.6세)으로 8.4년(41.2세) 걸린 3, 4세보다 승진 속도가 다소 빨랐으나 사장에서 부회장까지는 3, 4세가 4.8년(46.0세)으로 평균 6.5년(49.1세) 걸린 2세보다 기간이 짧았다. 2세는 50세 전후 부회장이 됐고 3, 4세는 40대 중반이면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100대 그룹 사장단 중에 최연소 경영인은 올해 초 사장으로 승진한 김동원 한화생명 최고글로벌책임자(CGO)다. 그는 1985년생으로 김승연 한화 회장의 차남이다. 부회장 중 가장 젊은 사람은 코오롱 4세인 이규호 ㈜코오롱 전략부문 대표이사다. 이외에 김동관 한화 부회장(1983년생)과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홍정국 BGF 부회장(이상 1982년생),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1981년생) 등이 1980년대생이다.
총수 일가 경영인의 이런 경력경로는 일반 직장인은 꿈도 꿀 수 없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기업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도 30대 임원, 40대 사장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지난 5월 월간 현대경영이 매출액 기준으로 국내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 146명 중 127명의 프로필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59.37세였다. 거의 환갑이 돼야 최고직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재벌 3, 4세와 비교하면 13년가량 차이가 난다. 이들 CEO의 평균 재직 기간은 27.20년이었으며 대표이사가 되기까지 21.91년이 걸린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를 처음 시작한 1994년에는 CEO 평균 나이가 50대 중반이었으나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둔화하며 기업 발전 속도라 느려진 데다 정년이 길어지며 50대 후반까지 밀린 것으로 분석된다. CEO들의 평균 재직 기간도 1994년에는 23.2년이었는데 올해는 27.2년으로 길어졌다. 대표 승진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 역시 1995년 17.3년이었으나 지금은 21.9년이 걸린다. 3, 4세 세대일수록 승진하는 속도가 빨라진 총수 일가와 정반대 흐름을 보이는 셈이다.
최고경영자의 판단은 기업 운명을 좌우한다. 총수 일가라는 이유로 쉽게 고위직에 오르는 관행은 기업 경영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선진 기업들은 대표이사를 포함해 주요 의사결정이 필요한 고위 임원을 선임할 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이에 반해 국내 기업의 절반 이상은 승계에 대한 구체적 정책 보고서가 없다. 리더스인덱스가 매출액 기준 상위 500대 기업 중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제출한 205개 기업의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승계 정책 관련 내용을 명시한 기업은 102곳에 불과했다. 승계 기준과 원칙을 제시하지 않은 기업이 절반에 달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3월 기업지배구조 의무 공시 대상을 자산총액 1조 원 이상 상장법인으로 확대하면서 최고경영자 승계와 관련해 후보자 선정과 관리, 교육 등 세부 내용을 기재하도록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재벌기업은 금융위 권고를 무시하고 있다. 이는 총수 일가라는 이유로 별다른 검증 없이 고위직과 CEO에 오르는 행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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