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범 회장 구속 중에도 보수 78억 챙겨

사내이사 사임했으나 계열사 임원직 유지

혈육 간 경영권 싸움에 실적 대비 주가 저조

"모든 직책 내려놓고 받은 보수 반납해야"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는 재벌의 어두운 실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아버지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은 둘째 아들이 계열사를 부당 지원하고 회삿돈과 차량 등을 사적으로 유용한 죄로 구속됐다. 이 와중에 경영서 배제된 형과 누이들은 사모펀드와 손잡고 경영권 쟁탈전에 나섰다.

지난해 이사회는 지배주주인 조현범 회장이 구속돼 사실상 경영 활동을 할 수 없었는데도 수십억 원에 달하는 보수를 승인했다. 조 회장은 주요 계열사 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전기차 판매 증가로 타이어 수요가 늘면서 영업실적은 좋았으나 주가는 지지부진했다. 총수 사법 리스크와 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으로 실적이 주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일반 주주들이 손해를 봤다. 재벌체제에서 일어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전형적 모습이다.

 

계열사 부당지원 및 횡령·배임 의혹을 받는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이 지난 1월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계열사 부당지원 및 횡령·배임 의혹을 받는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이 지난 1월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타이어는 오는 28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 안건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을 삭제한다고 25일 공시했다. 계열사 부당지원과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조 회장 스스로 결단을 내렸다고 회사 측은 강조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이것만으론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모든 계열사 임원직에서 사임하고 작년에 받았던 보수도 회사에 반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요구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조 회장은 지난해 한국타이어에서 급여로 10억 원, 상여금으로 20억 원 등 30억 원이 넘는 보수를 받았다. 한국앤컴퍼니에서도 급여와 상여금을 합쳐 47억 원 이상을 챙겼다. 이는 한앤컴퍼니의 전문경영인 가운데 가장 많은 보수를 받은 임원의 6배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조 회장의 이사회 출석은 두 회사 모두 한 번에 그쳤다.

조 회장은 작년 11월 보석으로 풀려나기 전까지 약 9개월 동안 구속 상태였다.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했는데도 78억 원의 보수를 받은 셈이다. 지난 2022년에도 두 회사에서 보수로 58억 원을 받았는데 이보다도 많았다. 하지만 이사회에서는 조 회장의 보수 지급이 승인됐다. 

여기엔 법을 위반한 정황도 있다.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은 임원인 주주의 특별한 이해관계에 해당한다. 현행 상법은 특별이해관계자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 분석 결과 이사회에서 한국앤컴퍼니 지분 약 42%를 소유한 조 회장에 대해 특별이해관계자의 의결권을 제한했다면 지난해 이사 보수 한도 승인 건은 부결됐을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에서는 법원이 테슬라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의 560억 달러 규모의 스톡옵션에 제동을 걸었다. 독립적이지 못한 테슬라 이사회가 머스크의 보상을 의결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타이어도 이와 유사할 경우로 볼 수 있다. 독립성이 없는 이사회 또는 그 이사회가 권한을 위임한 대표이사가 조 회장 보수를 결정한 것이다. 조 회장이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과도한 보수를 책정했다는 점에서 배임의 소지가 다분하다. 시민단체들이 조 회장을 향해 보수를 회사에 반납해야 한다고 주장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타이어가 지분 구조. 2021.3.30. 연합뉴스
 한국타이어가 지분 구조. 2021.3.30. 연합뉴스

조 회장이 사내이사를 사임했으나 이것 역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그는 한국타이어 대표이사 외에 지주회사인 한국앤컴퍼니 대표이사, 한국프리시전웍스와 에프더블유에스투자자문 등 계열사에서 임원을 겸직하고 있다. 그는 현재 공정거래법과 특정경제범죄법 위반으로 재판받는 중이다. 그가 상당한 지분을 소유한 한국프리시전웍스에 대한 부당지원과 이와 관련한 130억 원의 배임을 비롯해 법인차량과 법인카드 사적 사용, 계열사 자금 사적 대여 등 개인 비위 혐의로 지난해 3월 기소됐다.

개인 비위 혐의는 지난 2020년 11월 최종 확정된 형사사건의 집행유예 기간에 발생한 범죄다. 이것만으로도 사실상 주요 계열사 임원직을 유지할 자격이 사라진 셈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조 회장이 단지 등기이사직만 내려놓고 미등기임원으로 전환하려는 꼼수를 써서는 안 되며, 아직 임기 만료가 되지 않은 한국앤컴퍼니와 에프더블유에스투자자문의 이사직도 함께 내려놓아야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회장의 사법 리스크는 경영권 분쟁을 촉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조양래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조 회장의 형인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고문과 조 명예회장의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과 차녀 조희원 씨는 지난해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와 함께 한국앤타이어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했다. 이들은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확보를 위해 공개매수를 진행했으나 목표 지분 확보에 실패했다.

조희경 이사장은 조 명예회장에 대한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지난 2020년 6월 조 명예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지분 전량(23.59%)을 시간 외 대량매매로 조 회장에게 넘겼다. 이에 대해 조 이사장은 부친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지분을 넘겼다고 보기 힘들다며 한정후견인 심판을 청구했다. 지난 2022년 1심에서는 기각됐으나 한국타이어 총수 일가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지난해 3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변 관계자들이 한국타이어 경영진 사퇴와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3.21
지난해 3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변 관계자들이 한국타이어 경영진 사퇴와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3.21

총수 일가의 불미스러운 행태는 기업 가치를 깎아내린다. 지난해 조 회장의 사법 리스크와 혈육 간 경영권 분쟁이 겹치면서 핵심 사업인 타이어 관련 시장이 호황이었는데도 주가는 그만큼 오르지 않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주주 몫이다.

일부 언론과 재계는 조 회장이 구속 상태에서 재판받으면서 기업 가치가 떨어졌다는 논리를 펼친다. 총수의 경영 공백을 주가 하락 원인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본말이 전도된 해석이다. 조 회장 대신 능력이 탁월한 전문경영인과 독립이 보장된 이사회가 회사를 운영했다면 기업 가치가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주가도 실적에 따라 큰 폭으로 뛰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한국타이어야말로 재벌체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한 전형적 사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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