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연봉자 2.9% 늘고 직원은 2.8% 감소
경영자와 직원 연봉 격차 24배로 더 벌어져
대기업 총수도 수십억에서 최대 212억 수령
"공정한 보상체계 없으면 책임 경영도 실종"
국내 주요 기업들이 지난해 실적이 부진했는데도 최고연봉을 받은 경영자는 더 많은 보수를 챙긴 반면 직원 평균연봉은 전년보다 3%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경영자가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직원들에게만 고통을 전가한 것이다. 그 결과 최고 경영진과 직원의 보수 격차는 더 벌어졌다.
경영 성적표가 좋지 않으면 경영자 연봉도 깎아야 하는 게 상식이자 책임 경영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직원 보수를 줄이고 경영진 연봉을 올렸다. 이는 기업 보상 결정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재벌기업 총수들은 작년에도 수십억 원에서 최대 200억 원이 넘는 보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는 매출 상위 국내 500대 기업 중 최근까지 사업보고서를 제출하고 5억 원 이상 연봉 수령자를 공개한 291개 기업 최고경영자 연봉(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포함)과 직원 평균 보수(미등기임원 보수 제외)를 분석한 자료를 2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경영진 중 최고 연봉자 보수 평균은 20억 9588만 원으로 2022년 20억 3608만 원보다 2.9% 증가했다. 이에 반해 직원 평균연봉은 8713만 원으로 2.8% 감소했다. 이에 따라 최고 연봉자 대비 직원 연봉 간 평균 격차는 2022년 22.7배에서 지난해 24.1배로 더 벌어졌다.
최고 연봉자와 직원 평균 보수 간 격차가 가장 큰 기업은 카카오다. 남궁훈 전 대표는 스톡옵션 행사 이익을 포함해 총 98억 9900만 원을 받았다. 카카오의 직원 평균 보수는 9978만 원으로 98배의 격차가 났다. 카카오에 이어 이마트(77.1배)와 현대자동차(70.1배), 하이트진로(68배), 엔씨소프트(67.7배), 삼성바이오로직스(66.9배) 순으로 격차가 컸다.
업종별로는 유통(35.8배)과 식음료(34.9배), IT전기전자(31.7배), 서비스(31.0배), 자동차·부품(28.3배) 등이 평균보다 높았다. 가장 격차가 작은 업종은 은행인데 이는 직원 평균연봉 자체가 1억 원 이상으로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사 대상 기업 중 직원 실질 평균연봉이 1억 원을 넘는 곳은 82개 사(28.2%)로 전년보다 7곳 줄었다. 미등기임원 평균연봉도 3억 1369만 원으로 전년 대비 8.1% 감소했다.
대기업들은 지난해 수출 감소와 내수 부진이 겹치면서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기업 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3월 25일까지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264곳을 대상으로 지난해 연간 실적을 조사했더니 이들 기업의 영업이익은 104조 7081억 원으로 2022년 141조 2024억 원 대비 25.8% 감소했다. 전체 매출액도 2506조 164억 원으로 1.5% 줄었다.
업종별로는 전체 18개 업종 중 13개 업종에서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가장 많이 줄어든 업종은 지난해 글로벌 경기 둔화로 극심한 수출 부진을 겪었던 IT전기전자 분야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6조5203억 원으로, 2022년 59조986억 원보다 89.0% 급감했다. 석유화학은 23조7755억 원에서 11조8970억 원으로 반토막 났고 운송업도 영업이익이 65.3% 줄어 5조8873억 원에 그쳤다. 철강과 제약은 40%대 감소율을 기록했고 건설·건자재도 16% 이익이 줄었다.
자동차 등 일부 업종은 실적이 좋았으나 대다수 기업은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감소했다. 그런데도 최고경영자 평균 보수가 오른 건 이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저조한 실적에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기업 총수들이 막대한 보수를 챙긴 것은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이들이 수십억 원의 보수를 받으면서 최고 연봉자 평균 보수 수준도 높아졌다.
퇴직금을 제외한 개인 최고 보수 수령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다. 그는 총 212억 8100만 원을 받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122억 100만 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108억 200만 원,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99억 3600만 원,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은 91억 9900만 원, 박정원 두산 회장은 84억 2900만 원, 구광모 LG 회장 83억 2900만 원, 조원태 한진 회장은 81억 5715억 원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총수 일가를 포함한 최고경영자들이 실적과 상관없이 많은 보수를 챙길 수 있는 것은 감시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지배구조 상 보수 결정 시스템에 구멍이 있다는 의미다. 경영진에 대한 무분별한 보수 지급을 막으려면 지배주주 등 특수관계인이 참여하지 않는 독립적 보상위원회를 두어야 한다. 보상위원회는 이사 보수 결정 과정에서 객관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한 이사회 내 위원회를 말한다. 주주총회에 상정될 이사 보수 한도에 대해 사전 심의와 승인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 대기업 중 절반 이상은 보상위원회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 리더스인덱스가 한겨레와 공동으로 국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중 코스피에 상장된 기업을 전수조사한 결과 오직 125개(43.6%)만 보상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금융사를 제외하면 81개(33.3%)로 확 준다. 보상위원회를 운영하는 기업들도 실제 보수 한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총수 일가의 뜻이 반영될 수 있다. 결국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기업지배구조 개혁이 이루어져야 실적이 좋지 않은 데도 많은 보수를 받는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보수 결정체계가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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