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고 노동할 권리, 실천적 토론의 필요성

노동자 반발과 고용불안 공포, 해법은 없는가?

소비자 편리? 장시간 노동과 돌봄 붕괴의 산물

욕구의 대립을 강요하는 자본과 '과로사' 위험

사회적 합의 성과 초토화한 윤석열 정권 3년

쿠팡의 독주와 파편화된 노동, 새로운 걸림돌

노동자 조직화와 주체화, 사회적 연대의 희망

쿠팡 새벽배송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뜨겁다. 사실, 이 문제가 '논란'이나 '논쟁'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21세기 한국 사회가 처한 서글픈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사람은 죽을 정도로, 혹은 죽음을 감수할 정도로 너무 힘들게 일하면 안 된다.' 이것은 이념이나 정파적 입장을 떠나 문명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상식이자 기본적 원칙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직업적 활동과 부업 등에서 새벽 노동을 몇 년간 직접 경험했던 터라, 이 문제는 단순한 뉴스 기사를 넘어 더욱 뼈저리게 다가온다. 모두가 잠든 어둠 속에서 쏟아지는 피로와 잠을 쫓아가며 일하던 그 시간의 무게를 알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로켓'과 같은 속도를 위해 자기 삶을 깎아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지극히 당연한 생명과 건강의 문제를 두고, 윤석열 정권에서 영광과 추락을 모두 경험한 '비운(?)의 황태자' 한동훈 같은 정치인이 나서서 "맞짱 토론" 운운하며 '한판 승부'를 하자며 민주노총을 공격하던 모습은 참으로 볼썽사나웠다. 한동훈은 그동안 노동자의 절박한 외침을 짓밟으며 민주노총을 마녀사냥 하는 저열한 정치 공세 말고는 보여준 게 없다.

아무런 성찰도, 대안도 없는 극우 내란 정권과 정치검찰의 황태자였던 이런 정치인의 '어그로 끌기'에 왜 장혜영 전 의원 같은 진보 정치인이 '먹이 금지'가 아니라 관심을 보이며 토론에 나서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새벽배송 문제에서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토론이 있다면, 그것은 '찬성'이냐 '반대'냐는 식의 이분법적 선택지가 아니다.  

 

한동훈과 같이 있는 사람은 2022년에 윤석열 대선 후보 찬조 연설을 하고 '택배노조는 불법 파업 테러집단'이라고 공격했던 사람이다. 출처: 한동훈 페이스북
한동훈과 같이 있는 사람은 2022년에 윤석열 대선 후보 찬조 연설을 하고 '택배노조는 불법 파업 테러집단'이라고 공격했던 사람이다. 출처: 한동훈 페이스북

토론의 주제는 오로지 '이 당연한 과제(죽지 않고 노동할 권리)를 어떻게 현실로 만들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실천적 물음이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넘어서야 할 첫 번째 장벽은, 정작 새벽배송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상당수가 이 변화에 소극적이거나 심지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역설적인 현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유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완성차 공장의 상당수 노동자는 '야간노동 철폐'라는 의제에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다. 밤샘 노동의 고됨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야간노동에 붙는 1.5배의 할증 임금이 사라지는 순간 당장의 생계가 위협받는다는 공포가 더 컸기 때문이다.

야간 특근 수당은 전체 임금의 30~40%를 차지하는 핵심적인 소득원이었다. 이 문제는 오래고 지난한 투쟁과 논의 끝에, '임금 삭감 없는 주간 연속 2교대'라는 혁신적인 대안을 현실화함으로써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노동시간은 줄이되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줄어드는 임금 총액을 회사가 보전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새벽배송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내일 당장 새벽배송을 중단하더라도 현재의 소득 수준이 보장되고,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인력이 충원되어 동료들의 업무 강도가 높아지지 않으며,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확신만 있다면, '그래도 나는 왠지 컴컴한 새벽이 좋다'며 기꺼이 죽음의 위험을 감수할 노동자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 넘어야 할 산은 새벽배송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반발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소비자들 역시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노동자들이다. 그들이라고 해서 '다른 노동자들이 새벽에 피땀 흘려 고생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라는 가학적인 필요나 욕구를 가진 것일 리는 결코 없다. 

 

택배 노동자가 남긴 마지막 대화. 출처: 민주노총 택배노조  
택배 노동자가 남긴 마지막 대화. 출처: 민주노총 택배노조  

이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사람이 처해 있는 노동, 생활, 소비, 돌봄, 여가의 패턴과 구조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발생한다. 예컨대, 저녁 늦게 퇴근해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오고, 집에 와서 먹이고 씻겨 재운 뒤, 다음 날 아침 아이를 다시 등원시키고 허겁지겁 출근까지 해야 하는 맞벌이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생각해보자.

이들에게는 저녁에 장을 볼 시간조차 사치다. 전날 밤늦게 주문한 식재료가 다음 날 새벽에 문 앞에 놓여있지 않다면, 그들의 아침은 고달파질 수밖에 없다. 어떤 언론 인터뷰에서 한 워킹맘은 "새벽배송이 누군가의 피눈물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걸 포기하면 당장 제 삶이 무너져요. 저도 죄책감을 느껴요"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새벽배송에 대한 수요는, OECD 최고 수준인 이 나라의 장시간 노동과 부실한 공적 돌봄 시스템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축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결과물이다. 따라서 이것은 단지 쿠팡이라는 특정 기업의 탐욕을 제어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노동 및 생활 구조의 변화와 함께 이뤄지거나 최소한 그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과거 '주 5일 근무제' 도입 과정도 그러했다. 2004년 시행 당시, 재벌 기업들과 보수언론은 '경제가 망한다' '나라 경쟁력이 추락한다'라며 총력 저지에 나섰다. 하지만 결국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고, 그것에 맞게 우리 사회의 교육, 돌봄, 여가, 문화, 외식 산업 체계가 함께 변화하며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서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중소·영세업체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것도 현실이다. 이 모든 논의는,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노동자의 욕구든, 더 편하게 생활하고 싶은 소비자의 욕구든, 그 '욕구' 자체는 전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그 인간적 욕구들을 오직 '기업 이윤의 최대화'라는 단 하나의 방식과 틀 안에서만 해결 가능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소비자의 편의가, 혹은 노동자와 노동자가 서로 대립하도록 구조를 설계한 것이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이윤 극대화를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자본은 스스로 이 '죽음의 속도'를 조절할 능력도, 의지도 보이기 어렵다.  

 

쿠팡의 노동조건은 다른 회사와 비교해도 훨씬 열악하다. 관련 방송 화면 갈무리 
쿠팡의 노동조건은 다른 회사와 비교해도 훨씬 열악하다. 관련 방송 화면 갈무리 

이 때문에 우리 사회는 이미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2020년 한 해에만 16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로 쓰러졌다. "개처럼 뛰고 있어요"라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사망한 정슬기 님의 비극은, 이윤에 눈먼 속도 경쟁이 얼마나 잔인한지 보여주었다. 이러한 사회적 비극이 폭발하자, 앞서 2021년부터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기구'가 만들어졌다.

이 기구에는 택배노조, 택배회사(CJ대한통운, 롯데, 한진 등), 시민사회단체,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당시 문재인 정부가 참여해 의미 있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노동시간을 주 60시간 이내로 제한하고, 과로의 원인이던 '분류 작업'을 택배사가 책임지게 하고, 표준계약서를 도입하고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1차 합의(2021년 1월)와 2차 합의(2021년 6월)가 있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은 여러 차례의 총파업과 집회, 농성을 통해 이러한 성과를 이뤄내는 데 중요한 힘이 되었다. 또한 '택배기사 과로사 대책위원회' 등이 주도한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관심과 여론의 압박도 중요한 구실을 했다. "우리가 조금 느린 배송을 감수할 테니, 기사님들을 살려달라"는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의미 있는 사회적 변화가 거꾸로 되돌려지고, 노동조합에 대한 가혹한 탄압만이 몰아치던 윤석열 정권 3년이 있었다. 이 시기에 윤석열 정권과 '반노동 족벌언론'들은 한목소리로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통진당 출신 주사파들의 숙주' '불법 파업과 무단 점거를 일삼는 폭력 테러집단'이라는 식의 악랄한 공격과 마녀사냥에만 열심이었다.

결국 사회적 대화는 전면 중단되었고, 일부 노조는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민주노총을 탈퇴했으며, 투쟁도 연대도 얼어붙었다. 하지만 '빛의 혁명'과 정권 교체 이후, 멈춰 섰던 사회적 대화의 시계가 다시 움직이고 있다. 과거의 합의를 넘어서 심야·휴일배송 규제, 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 택배요금 및 수수료 구조 정상화를 위한 3차 사회적 대화가 시작되고 있다. 

 

택배노조를 마녀사냥하고 공격하는 데 앞장서 온 조선일보. 관련 기사 화면 갈무리 
택배노조를 마녀사냥하고 공격하는 데 앞장서 온 조선일보. 관련 기사 화면 갈무리 

문제는, 지난 4년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택배·물류 산업은 더 급속히 변화하고 발전했다는 점에 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마저 쇠락하면서, 이제 유통업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온라인에서 이뤄진다. 특히 1, 2차 사회적 대화에 참여조차 않았던 쿠팡은, 그 어떤 합의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살인적 속도 경쟁에 앞장서며 노동자들을 더욱 극한으로 쥐어짰다.

이렇게 폭발적으로 성장한 쿠팡은 전통의 강자 CJ대한통운을 넘어 명실상부한 업계 1위가 되었고, 이제는 시장의 규칙 자체를 좌우하고 있다. 이처럼 택배 산업은 수십만 명이 일하는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지만, 노동자들의 노조 조직화는 더디기만 했다. 1, 2차 합의의 주역이었던 택배노조의 조합원은 전체 택배 종사자의 10%도 안 된다.

쿠팡은 물론이고, 택배 종사자 대부분과 수많은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울타리 밖에 있다. 이것은 더 철저히 노동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성장하며 노동자를 파편화하는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의 구조적 제약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조직된 힘과 단결된 목소리는 1, 2차 사회적 합의 때보다 지금, 이 순간 더욱더 절실하다.

단지 정권이 교체되었다는 정치적 효과와 거대 야당이 된 민주당의 의지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가 없는, 절대 만만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바로 쿠팡 같은 거대 플랫폼 자본과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동훈 같은 친자본 정치세력과 국민의힘, 그리고 주류 보수언론들이다. 

그래서 한동훈, 국민의힘, 그리고 족벌언론과 경제신문들이 득달같이 나서서 '새벽배송 금지하면 수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정작 택배기사들 모두가 반대한다', '새벽배송에 의지하는 맞벌이 부부와 자영업자들은 다 죽으라는 것이냐' '민주노총이 또다시 경제를 망치려 하는데 민주당이 끌려가고 있다'라며 연일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을 공격해서 택배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주체적 성장을 막으려는 시도들. 관련 방송 화면 갈무리
민주노총을 공격해서 택배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주체적 성장을 막으려는 시도들. 관련 방송 화면 갈무리

이들은, 인간답게 살고 노동하고 싶다는 택배노조의 모든 구체적인 요구(인력 충원, 노동시간 단축, 알고리즘 규제, 임금 보전 등)를 삭제하고, 문제를 '새벽배송 찬반'이라는 극단적인 프레임으로 단순화하고 왜곡한다. 그리고 그 프레임 안에서 노동자와 소비자, 택배 노동자와 물류센터 노동자, 노조원과 비노조원을 끝없이 갈라치고 서로 싸우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동훈이 앞장서서 보여주듯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민주노총'으로 돌리는 악마화와 마녀사냥 불 지피기에 매달리고 있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단 하나다. 어렵게 다시 열린 3차 사회적 합의 기구에 거대 플랫폼 자본들이 들어가지 않거나, 들어가더라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자신들의 막대한 이윤을 단 1원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는 계산이다.

이것을 위해서도 핵심은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단결을 막는 데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이 거대한 장벽을 이겨내며 택배, 물류 산업의 노동자들이 서로를 갈라놓는 틈과 벽을 넘어서, 노조 안과 밖에서 더 폭넓게 스스로를 조직하며 목소리를 내고 함께 싸울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죽음으로 향하는 살인적 무한경쟁의 수레바퀴'를 멈출 수 있다.

그것이 "조금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시민들의 사회적 지지와 연대를 통해 굳건히 뒷받침되고,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자성'과 권리를 당당히 인정받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모든 측면에서 '속도'가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두는 인간다운 삶과 노동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확실하고 중요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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