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재해 감소 효과 조사 결과 왜곡 보도
"긍정" 58%인데, 제목은 "42% 부정적"
경총, 기업들 긍정적인 이유 언급도 안해
기레기 가려내려면 시민의 분별력 키워야
'기레기'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심하다 생각했다. 자칫 '모든 기자가 쓰레기다'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놓고 위조 뉴스(가짜 뉴스)를 만들어내는 스카이데일리 같은 사이비 언론에만 해당되는 말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과 관련된 보도를 보면서 기레기의 메커니즘을 이해했다. 대부분의 미디어가 기레기고, 괜찮은 곳은 드물다. 안타까운 결론이다.
해도해도 너무 한다…중처법에 긍정적인 기업인이 훨씬 많은데
“중처법 시행 4년차, `사망재해 감소효과`에 기업 42% `부정적`”(디지털타임스, 25.2.19)
처음에 발견한 기사다. ‘부정적’이라는 제목을 보고는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또 비판적 논조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다시 보니 숫자가 들어왔다. ‘42%’. 그러면 58%는 긍정적이라는 얘긴데. 조사자가 누군가 보니, 경총이다. 사용자, 기업가, 자본가를 대변하는 대표적 이익단체가 아닌가. 경총이 조사했는데도 중처법에 이렇게 긍정적인 시각이 많다고? 기업인들이? 그래도 긍정적이라고 답변한 기업인이 ‘당연히(?)’ 더 적겠지? 경총 조사니까.
“이번 조사에서 정부의 산업안전정책이 사망재해 감소에 효과적인지에 대해 기업의 58%는 '긍정적', 42%는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기사 본문이다. 보통 여론조사는 ‘긍정적’과 ‘부정적’ 그리고 가운데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경총 조사는 달랐다. 분명히 '기업 안전투자 현황 및 중대재해 예방정책 개선 실태조사'에서 58%의 기업이 정부의 산업안전정책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답변했다. 그런데 왜 제목은 마치 기업이 부정적인 것처럼 나왔을까?
경총의 악의적 왜곡과 받아쓰기 미디어
경총 보고서 원문을 찾아봤다. 정부산업정책의 사망재해 감소 효과 관련은 3번째 항목으로 나온다.
‘부정적’ 응답 이유는 중처법 시행 이후 대폭 증가된 산재예방예산 대비 사고사망자 수가 더디게 감소하고 있고, 중처법과 같이 실효성이 낮은 안전법령과 불합리한 안전규제 등에 대한 제도개선이 추진되지 못하고 있어 많은 기업들이 부정적 평가를 한 것으로 판단됨 (보고서 5p.)
경총의 보고서는 애초에 경도되어 있다. 이는 조사분석을 한 이들의 문해력의 문제가 아니라 악의적으로 조사 결과는 왜곡한 것이다. 58%가 긍정적이라고 했으면 객관적으로 '긍적적'인 의견이 더 많다고 결론을 내려야 마땅하다. 더구나 보고서에는 ‘긍정적’ 응답 이유에 대한 분석은 별도로 없다. 경총은 사용자, 기업가, 자본가의 이익단체이니 편향된 분석을 내보낸 행태가 이해는 된다. 우리나라 사용자, 기업가, 자본가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확인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해당 기사는 경총의 엉터리 분석을 그대로 옮겨쓴 것도 모자라, 비율이 낮은 ‘부정적’을 제목으로 뽑았다. 언론은 보고서나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쓰면 안 되지 않는가? 이익단체의 여론 왜곡 시도에 대한 비판이 언론의 사명이라는 상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미디어도 더 찾아봤다. 대부분 '기업 10곳 중 8곳이 법 개정을 원한다'는 제목을 뽑았다.
기업 10곳 중 8곳 "실효성 낮은 중처법 개정해야" (파이낸셜뉴스)
기업 10곳 중 8곳 "실효성 낮은 중처법 개정해야" (이데일리)
기업 80% "실효성 낮은 현행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시급" (헤럴드경제)
중처법 실효성 논란 여전…기업 81% "개정해야" (노컷뉴스)
중처법 3년, 실효성 논란… 기업 81% “법 개정 필요” (문화일보)
"서류 많다고 사망재해 감소하나" 기업들 81%, 중처법 개선해야 (뉴스퀘스트)
대·중소기업 안전 투자 격차 1255배…기업 81% "중처법 개정해야" (뉴스1)
기업 81%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필요" (에너지경제)
기업 10곳 중 8곳 "실효성 낮은 중처법 시급히 개정 필요" (워크투데이)
기업 10곳 중 8곳 "중처법 개정해야"…63% 안전 인력 늘려도… (서울신문)
악의적 왜곡에 동조하지 않았으면 기레기 아닌가?
디지털타임스의 모회사인 문화일보도 ‘42% 부정적’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애매모호하게 제목을 뽑은 곳도 있다.
경총 "중처법 시행 3년…인력·예산 증가에도 재해 감소 불분명" (아시아투데이)
국내 기업들, 안전인력·예산 늘렸지만 '과도한 서류'에 업무 어려움 (서울파이낸스)
"실효성 낮은 중처법 개정해야...경영책임자 의무 구체화 필요" (뉴스핌)
찾아보니 한겨레나 조선일보는 관련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다. 악의적 왜곡을 그대로 보도하지 않았으니 훌륭한가? 다수 미디어가 이익단체의 편향적 조사에 베껴쓰기로 동참하는 가운데 이를 외면했으니 높이 평가해야 하나? 경총의 엉터리 분석을 알았다면 그래도 일부 훌륭한 기자들은 비판하는 논조로 보도했을 것이다. 한국 언론의 수준이 이 정도로 낮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나마 객관중립으로 보도했다고 할 만한 곳은 이 정도다.
중대재해처벌법 3년⋯ “기업, 안전 인력·예산 대폭 증가” (브릿지경제)
경총 "소규모 기업, 절반만 중처법 모두 이행…법령 정비해야" (머니투데이)
경총의 「기업 안전투자 현황 및 중대재해 예방정책 개선 실태조사」 내용을 직접 요약하고 분석해 보기로 한다. 경총의 보고서에 따르면 다수 기업은 중대재해처벌법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고 의무도 다하고 있다
이 조사는 경총이 2024년 12월 23일부터 2025년 1월 7일까지 16일간 「기업 안전투자 현황 및 중대재해 예방정책 개선 실태조사」라는 제목으로 자체 실시했다. 보고서 원문은 경총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할 수 있다.
1.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인력 및 예산 변화
- 「안전인력」 증가 기업 63%, 「안전예산」 증가 기업 72%
과반수가 훨씬 넘는 기업이 안전인력과 안전예산을 증가시켰다. 50인 미만 소기업도 0.5억 원의 예산이 늘었다.
2. 안전관리 업무 수행 시 가장 큰 어려움
- (전체) 「과도한 서류작성에 따른 행정력 낭비」 62%,
- (300인 이상) 「관리대상 도급업체 증가 및 책임강화」 59%
이외에도 안전인력 확보 및 예산 부족(32%), 현장근로자의 관심과 협력 미흡(31%), 관리해야 할 도급업체 증가 및 책임 강화(26%), 업종특성에 적합한 매뉴얼·가이드 부족(25%), 불합리한 정부감독 및 행정규제(22%) 등으로 어려움이 조사됐다.
1항과 2항의 내용을 종합하면 기업들은 대부분 중처법을 비롯해 정책을 이행하려고 하고 있으나 애로점이 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3. 정부 산업안전정책의 사망재해 감소 효과에 대해 「긍정」 58%, 「부정」 42%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핵심 정책 「감독정책을 처벌에서 지도·지원으로 전환」 50%
경총과 기레기의 악의적 여론 왜곡으로 강조된 내용이다. 관련 내용을 그대로 전달한 미디어는 단 한 곳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모든 언론이 기레기라고 하지는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중처법 시행후 정부 산업안전정책 긍정 58%·부정 42% (안전신문)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정부가 추진해야 할 핵심정책이 무엇인지 묻는 물음에 대해서 조사대상 기업의 50%가 ‘감독정책을 처벌에서 지도·지원으로 전환’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오히려 이 부분을 내세웠다면 그래도 객관적인 수치에 바탕했으니 중처법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조성의 근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대부분의 미디어는 기레기의 길을 선택했을까.
4. 중대재해처벌법 의무 이행 여부 「전부 완료」 71%, 「50인 미만 전부 완료」 53%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필요성 「그렇다」 81%
대부분의 미디어가 기업 10곳 중 8곳, 운운하는 제목으로 뽑은 내용이다. 오히려 여기에서 우리 기업의 70%가 중처법과 관련된 의무를 잘 이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기업 압도적 다수, 노동자 산업안전 노력에 만전” 같은 제목의 기사는 왜 볼 수 없을까, 이 또한 의문이다. 50인 미만 중소기업도 절반 이상이 산업안전정책을 잘 시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5. 중대재해처벌법 개선사항 「안전·보건 관계법령 등 의무 구체화」 47%,
「경영책임자 형사처벌 완화」 41%
의외로 우리 기업들은 법의 폐지를 원하지 않는다. 경총에서 조사 항목을 만들면서 정부의 반발을 우려해 폐지 항목은 아예 뺐기 때문일까? 기업인들은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완화는 원하고 있지만(41%), ‘안전·보건 관계법령 등 경영책임자 의무 구체화’를 더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47%).
경총 보고서 원문 링크. https://www.kefplaza.com/web/pages/gc38139a.do
기레기는 여론 왜곡을 중단하라
이번 경총 조사는 총 202개 기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혹시 경총이 중대재해 관련 정책에 우호적인 기업만 대상으로 진행된 편향된 조사일 가능성은 없을까? 경총이 그럴 리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사용자, 기업가, 자본가를 대변하는 이익단체인 경총의 악의적 왜곡과 받아쓰기 미디어의 합작으로 중처법과 관련된 여론의 왜곡을 노린 행각이라는 게 가장 적절한 평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레기가 기득권을 가진 강자의 악의적 여론 왜곡에 편승하고 한술 더 뜨는 행각을 막을 길은 없다. 그렇지만 표현의 자유를 악용하는 기레기를 기레기로 적확하게 규정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를 사는 시민의 권리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같은 시민의 노력이 대안일 수밖에 없다. 시민은 계속 피곤하게 살 수밖에 없다.
기레기가 내놓는 기사는 사실관계부터 직접 확인해야 한다. 사실관계에서 도출한 해석은 반대로 보아야 진실에 가깝다는 점을 늘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칼럼을 쓰는 시민기자도 구호를 외치는 것 이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정말 피곤하다. 몇 가지 구호를 외쳐 본다.
기레기는 여론 왜곡을 중단하라.
기득권 이익단체의 편향적 여론 유도를 객관적으로 비판하라.
정부는 기레기의 사실 왜곡과 진실 호도에 대한 대책을 세우라.
기레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참 기자를 발굴하고 지원하라.
민들레 언론,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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