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출신으로 왕립 미술원장까지 꿰차
셰익스피어 작품 기괴한 화풍으로 재해석
존 컨스터블 등 제자들 영국 낭만주의 주축
영국인들의 각별한 공포영화 애호의 뿌리
자부하는 문화의 상당 부분 이방인들 덕분
스위스 괴짜가 영국을 뒤흔든 이야기
영국 미술사에서 가장 기묘한 인물을 꼽으라면, 헨리 퓨젤리(Henry Fuseli, 1741~1825)를 빼놓을 수 없다. 스위스 출신의 화가 퓨젤리는 18세기 말 런던에 나타나 영국인들의 꿈속에 악마를 심어놓고는 태연히 왕립미술원 원장 자리까지 꿰찬 진정한 '문화적 침입자'였다.
목사의 아들이 악마를 그리다
퓨젤리는 취리히의 독실한 목사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퓨젤리(Johann Caspar Füssli, 1706~1782)는 아들이 성직자가 되길 바랐지만, 젊은 하인리히(본명)는 교회보다 화실을, 찬송가보다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를 선택했다.
"하나님의 나라를 그려야 할 목사의 아들이 지옥을 그리다니!"
당시 사람들의 혀를 찼을 법하다. 하지만 퓨젤리는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는 천국보다 인간의 무의식이, 천사보다 악마가 더 흥미로웠으니까.
런던을 정복한 스위스의 악몽 제조기
1770년 런던에 정착한 퓨젤리는 곧 영국 미술계의 이단아로 떠올랐다. 그의 대표작 <악몽>(The Nightmare, 1781)은 말 그대로 영국사회에 악몽을 안겨주었다. 잠든 여인 위에 앉은 괴물과 커튼 사이로 비치는 말머리의 조합은 당시 신사숙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하지만 바로 이 '불편함'이 퓨젤리의 무기였다. 영국인들은 표면적으로는 그의 그림을 비난했지만, 몰래몰래 보러 왔고, 복사본을 사들였고, 살롱에서 수군거렸다. 마치 오늘날 넷플릭스의 공포 드라마처럼.
셰익스피어를 팔아 명성을 얻다
퓨젤리는 영리했다. 영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셰익스피어를 소재로 잡았던 것이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기괴하고 환상적인 화풍으로 재해석했다. <한여름 밤의 꿈>의 요정들은 더욱 기이해졌고, <맥베스>의 마녀들은 한층 섬뜩해졌다.
"우리 셰익스피어를 이상하게 그리는군!"
영국인들은 투덜댔지만,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퓨젤리가 셰익스피어의 어둡고 신비로운 면을 누구보다 잘 포착했다는 사실을.
왕립미술원을 정복한 이방인
1788년 왕립미술원 정회원이 된 퓨젤리는 1804년부터 1825년까지 회화과 교수를 지냈다. 스위스 출신 이민자가 영국 미술교육의 핵심자리에 앉은 셈이다. 그의 제자들 중에는 후에 유명해진 화가들이 즐비했다.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도,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블레이크는 퓨젤리의 환상적 화풍을 계승해 영국 낭만주의 미술의 한 축을 이뤘다.
빅토리아 시대를 미리 내다본 예언자
퓨젤리의 진정한 영향력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드러났다. 빅토리아 시대(1837~1901)의 억압적 도덕관 아래서 사람들은 퓨젤리의 그림에서 금기된 욕망의 출구를 찾았다.
그의 작품들은 19세기 내내 은밀히 복제되고 유통됐다. 정숙한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의 서재 깊은 곳에서, 신사들의 서재 벽장 뒤에서 퓨젤리의 관능적이고 몽환적인 그림들이 숨 쉬고 있었다.
정신분석학의 선구자, 프로이트보다 100년 앞서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꿈의 해석을 들고 나오기 100여 년 전, 퓨젤리는 이미 무의식의 세계를 캔버스에 옮기고 있었다. 그의 <악몽>은 후에 프로이트 학파들에 의해 성적 억압과 무의식적 욕망을 다룬 선구적 작품으로 재평가받았다.
"퓨젤리가 없었다면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억압된 욕망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현대의 미술사학자들이 던지는 흥미로운 질문이다.
현대 영국문화의 숨은 아버지
퓨젤리의 유산은 오늘날 영국 대중문화 곳곳에 스며있다. 고딕소설의 전통, 공포영화에 대한 영국인들의 특별한 애정, 심지어 몬티 파이튼(Monty Python)의 기괴한 유머까지도 퓨젤리의 DNA를 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팀 버튼(Tim Burton, 1958~)의 영화나 닐 게이먼(Neil Gaiman, 1960-)의 소설을 보면서 "아, 이 기묘함이 어디서 왔구나" 싶을 때가 있다면, 그 뿌리를 200년 전 런던의 한 스위스 화가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이민자가 만든 영국다움
헨리 퓨젤리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영국적인' 것을 만들어낸 이방인이었다. 그는 영국인들이 스스로 인정하기 어려워했던 어둡고 기괴한 면을 드러내 보였고, 그것이 곧 영국 문화의 독특한 색깔이 됐다.
오늘날 브렉시트를 외치며 이민자를 경계하는 영국인들이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영국 문화의 상당 부분이 바로 이런 '이방인'들의 기여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퓨젤리처럼 말이다. 스위스에서 온 이 기묘한 화가는 영국인들의 꿈속에 악마를 심어놓고는 결국 그들의 마음을 정복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프트 파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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