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통해 영국의 모순 날카롭게 비판
저항 문화 아이콘…기후시위까지 영향
생전에는 홀대 받아 팔린 시집 몇 권 뿐
명작 '예루살렘'은 비공식 국가로 불려
양말가게 아들, 영국의 정신적 지주로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삶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하늘에서 천사를 봤다고 우기며 동네사람들을 당황시켰던 런던 양말가게 아들이, 결국 영국 문학사의 거장이 된 기막힌 사연."
18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한창 들떠 있던 시절이었다. 증기기관이 펄펄 끓고, 공장 굴뚝은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자본가들은 돈 세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블레이크라는 녀석은 뭘 했는가? "어린양아, 어린양아, 누가 너를 만들었니?"라고 물으며 순진무구한 시를 쓰는 한편, "호랑이야 호랑이야, 밤의 숲에서 이글거리는 너"라며 인간 내면의 어둠을 파헤쳤다.
동네 미치광이에서 국민시인으로
블레이크가 살던 당시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봤을까? 솔직히 말하면 "저 아저씨 좀 이상한데?"라고 수근댔다. 4살 때부터 천사를 봤다고 하질 않나, 나무에 예언자 에제키엘(기원전 6세기경)이 앉아 있다고 하질 않나. 요즘 같으면 정신과 상담을 권했겠지만, 18세기에는 그냥 "아, 예술가니까 좀 특이하구나" 하고 넘어갔나 보다.
하지만 블레이크의 진짜 무서운 점은 따로 있었다. 그는 단순히 환상을 본 것이 아니라, 그 환상을 통해 당대 영국 사회의 모순을 칼날처럼 날카롭게 꼬집었다.
자본주의를 향한 예술가의 일침
'어두운 사탄의 방앗간(Dark Satanic Mills).' 블레이크가 산업혁명 시대의 공장을 묘사한 표현이다. 오늘날 영국 노동당(1900년 창당)의 당가로 불리는 '예루살렘'이라는 시에도 나오는 구절이다.
블레이크는 이미 200년 전에 자본주의의 비인간화를 간파했다.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보며 "아, 저게 바로 사탄의 숨결이구나"라고 직감했다. 요즘말로 하면 완전 선견지명 아닌가?
종교와 권력에 대한 통쾌한 한 방
블레이크의 또 다른 무기는 종교 권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었다. 그는 〈천국과 지옥의 결혼〉이라는 작품에서 선악의 이분법을 정면으로 깨부쉈다. "선악을 나누는 것 자체가 악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렇게 당시 영국 국교회가 설파하던 경직된 도덕관념에 정면으로 맞섰다.
특히 그의 명언 중 하나인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한 의도로 포장돼 있다'는 오늘날까지 회자된다. 권력자들의 위선을 꿰뚫어 본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예술과 기술의 결합, 그 선구자
블레이크는 단순한 시인이 아니었다. 그는 판화가이자 삽화가였으며, 무엇보다 혁신적인 출판 기법의 개발자였다. 그가 고안한 '부식 동판법'은 글과 그림을 하나의 판에 새겨 넣는 기술로, 오늘날의 멀티미디어 예술의 선구자 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법이다. 구텐베르크(1400~1468)의 활자 인쇄술 이후 가장 혁신적인 출판기법이라고 평가받을 정도였다. 블레이크는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기술자였다.
낭만주의의 아버지, 아니 할아버지?
블레이크는 영국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바이런(1788~1824), 셸리(1792~1822), 키츠(1795~1821) 같은 후배시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상상력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그의 철학은 낭만주의의 핵심 사상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블레이크 자신은 당대에 거의 인정받지 못했다. 생전에 팔린 시집이 고작 몇 권에 불과했고, 죽을 때까지 가난에 허덕였다. "진주는 돼지 앞에 던져봤자 소용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현대 영국에 미친 영향, 명언의 제왕
블레이크의 진정한 영향력은 그가 죽고 난 후에 폭발했다. 20세기 들어 그의 작품들이 재발견되면서, 영국 문화 전반에 걸쳐 엄청난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그의 시 '예루살렘'은 영국의 비공식 국가로 불릴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 마지막 밤 콘서트나 영국 럭비 경기에서 이 노래가 울려 퍼질 때면, 관중들은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린다. 200년 전 동네 미치광이 취급받던 양말가게 아들의 시가 영국인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반체제 정신의 아이콘
블레이크는 또한 반체제 문화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1960년대 히피 문화에서부터 펑크 록까지, 기존질서에 반기를 드는 모든 문화운동이 블레이크를 정신적 스승으로 떠받들었다.
'분노를 억누르지 말라'는 그의 메시지는 68혁명 세대는 물론, 오늘날의 기후변화 시위대들에게까지 영감을 주고 있다. 마거릿 대처(1925~2013) 정권 시절 반정부 시위에서도 블레이크의 시구들이 구호로 사용되었을 정도다.
미친 천재의 승리
결국 윌리엄 블레이크는 증명했다. 천사를 봤다고 해서 미치광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미치광이 소리를 들어가며 진실을 외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의 자세라는 것을 말이다.
오늘날 영국이 블레이크를 국민시인으로 떠받드는 것을 보면, 그의 승리는 완벽하다. 18세기 양말가게 아들이 21세기 영국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된 것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도 어딘가에서 "나는 천사를 봤다"고 외치는 또 다른 블레이크가 있을지 모른다. 그가 누구든, 그를 미치광이라고 무시하기 전에 한 번쯤 귀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200년 후 그가 우리 시대의 블레이크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이것이 바로 블레이크가 우리에게 남긴 최고의 선물이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