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하늘이 정한다'는 맹신 벗어던진 홉스
“공화정이 답이다” 청교도혁명 이끈 크롬웰
절대왕정에 집착하다 결국 처형된 찰스 1세
'만유인력의 법칙' 증명해 세상을 깨운 뉴턴
국부론 '보이지 않는 손' 규명한 아담 스미스
여성해방운동 밑바탕 만든 울스턴크래프트
'의심하는 용기'와 '질문하는 자세' 큰 유산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켠 영국인들
17~18세기 영국은 마치 오랫동안 어두운 방에 있다가 갑자기 전등을 켠 것 같았다. 계몽주의라는 이름의 전등 스위치를 누르자, 그동안 "왕님 말씀이 곧 진리"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잠깐, 정말 그럴까?"라며 의심하기 시작했다.
철학자 존 로크(1632~1704)는 "인간의 마음은 백지와 같다"고 했는데, 당시 영국인들의 머릿속이야말로 진짜 백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백지 위에 '이성'이라는 펜으로 새로운 글씨를 쓰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글쎄,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다.
왕권신수설에 균열이 생기다
그전까지 영국 왕들은 "내가 왕인 건 하늘이 정한 일이야!"라며 당당했다. 하지만 계몽주의가 퍼지면서 백성들이 "정말요? 증명서 좀 보여주세요"라고 묻기 시작했다.
토머스 홉스(1588~1679)는 〈거대괴물〉(레비아탄, Leviathan)이라는 책에서 사회계약설을 내세웠고, 존 로크는 "정부가 제대로 안 하면 갈아치워도 된다"고 말했다. 이는 마치 "사장님이 회사 망치면 주주총회에서 쫓아낼 수 있다"고 하는 현대적 사고의 시작이다.
찰스 1세(재위 1625~1649)는 이런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나는 절대왕정이야!" 하다가 목이 잘렸고, 올리버 크롬웰(1599-1658)이라는 청교도가 "공화정이 답이다!"라며 나타났다. 물론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지만.
과학혁명, 뉴턴의 사과가 영국을 깨우다
아이작 뉴턴(1643-1727)이 사과나무 아래서 "아야!"하며 떨어지는 사과에 머리를 맞았을 때(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영국인들도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 덕분에 사람들은 '세상에는 법칙이 있구나!'를 깨달았다.
왕립학회가 생기면서 귀족들도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별은 하늘에 구멍이 뚫린 거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저게 다 태양 같은 별이라고?"라며 놀라워했다. 마치 평생 2차원 세계에 살던 사람이 갑자기 3차원을 발견한 것 같았다고 할까.
경제사상의 변화, 돈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아담 스미스(1723-1790)가 〈국부론〉을 쓰면서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조정한다"고 했을 때, 영국상인들은 "그런 손이 정말 있나?"라며 하늘을 올려다봤을 것이다. 중상주의 시대에는 "금과 은을 많이 모으면 부자야!"라고 생각했는데, 스미스는 "아니야, 생산과 교역이 진짜 부의 원천이야"라고 일깨웠다. 이는 마치 '통장 잔고보다 월급이 중요하다'는 현대적 깨달음과 비슷했다.
영국은 이런 사상을 바탕으로 자유무역을 추진했고, 결국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됐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른 나라들에게는… 음, 좀 미안한 일들이 많았지만 말이다.
종교와 관용, 신에 대해 좀 더 합리적으로
존 로크의 〈관용에 관한 편지〉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다. '서로 다른 종교를 믿어도 죽이지 말자'는 당연한 이야기가 그때는 혁신이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안타깝다.
영국국교회(성공회), 가톨릭, 청교도들이 서로 "우리가 정답이야!"라며 싸우던 시절에,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다들 좀 진정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라고 중재에 나섰다. 비록 완전한 종교의 자유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교도라고 바로 화형시키지는 말자"는 정도의 진보는 있었다.
교육의 변화, 라틴어만이 답은 아니다
그전까지 영국에서 교육이라고 하면 '라틴어 외우고, 그리스 고전 읽고, 성경 암송하기'였다. 하지만 계몽주의가 퍼지면서 '수학도 배우고, 과학도 배우고, 현실적인 것도 배우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존 로크는 〈교육에 관한 고찰〉에서 "아이들을 빈 그릇 취급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도록 도와주자"고 주장했다. 이는 마치 '주입식 교육보다는 창의성 교육'이라는 현대적 교육관의 시작이었다. 물론 여전히 평민들에게는 교육 기회가 제한적이었지만, 그래도 '교육받을 권리'라는 개념이 싹트기 시작했다.
정치 개혁, 민주주의의 씨앗
명예혁명(1688년)은 계몽주의 사상의 정치적 실현이었다. '왕도 법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원칙이 확립되면서, 영국은 입헌군주제의 모범을 보였다.
의회의 권한이 강화되고, 권력분립의 개념이 자리 잡았다. 물론 여전히 투표권은 일부 부유층에게만 있었지만,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원칙은 나중에 미국 독립전쟁의 구호가 되기도 했다.
사회변화, 여성도 이성이 있다고?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는 1792년에 출간한 〈여성의 권리 옹호〉에서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이성적 존재야!"라고 주장했다. 당시 남성들은 "정말? 그런가?"라며 의아해했지만, 이는 여성해방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물론 진정한 성평등까지는 갈 길이 멀었지만, 적어도 '여성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여자가 책을 읽으면 뇌가 과열된다'고 진지하게 믿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래도 엄청난 진보다.
계몽주의의 명과 암
계몽주의는 영국사회에 많은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성적 사고, 과학적 방법, 종교적 관용, 정치적 자유 등은 모두 소중한 유산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가장 문명화된 민족이야!"라는 우월감도 심어주었다. 이는 나중에 제국주의와 식민지배의 논리적 근거가 되기도 했다. "미개한 민족들을 계몽시켜주는 게 우리의 사명"이라는 생각말이다.
오늘날에 주는 교훈
계몽주의 시대의 영국을 보면,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과 동시에 그 한계도 보인다. '합리적 사고'라는 도구는 분명히 소중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오늘날 우리도 '가짜뉴스' 시대에 살면서 "무엇이 진실인가?"를 묻는다. 18세기 영국인들이 "왕의 말씀이 진리인가?"를 의심했던 것처럼, 우리도 "인터넷에 나온 게 다 진짜인가?"를 의심해야 하는 시대다.
결국 계몽주의가 영국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의심하는 용기'와 '질문하는 자세'가 아닐까.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켠 이성의 촛불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깜빡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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