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도 초청장도 없는 '무허가 입국'의 원조
칼과 도끼 들고 "이제 우리 땅" 선언한 정착
수도원 약탈, '부의 재분배' '종교개혁' 효과
바이킹식 민주주의…'힘' 있으면 누구나 '짱'
지명·인명에 여전히 살아있는 바이킹 흔적
영국 정치인들이 이민정책을 두고 설왕설래할 때마다, 늘 천 년 전을 떠올린다. 8세기 말부터 11세기까지 영국 땅을 휩쓸었던 바이킹들 말이다. 이들은 현재의 이민자들과는 달리 비자도 없이, 심지어 초청도 받지 않고 드나들었다. 그야말로 '무허가 입국'의 원조였던 셈이다.
바이킹식 정착방법론
바이킹들의 영국 정착과정을 보면, 현대의 이민정책 담당자들이 혈압약을 찾을 만하다. 이들은 먼저 해안가에 상륙해서 "안녕하세요, 저희 정착할 곳 좀 알려주시겠어요?"라고 정중하게 물어보는 대신, 칼과 도끼를 들고 "여기는 이제 우리 땅이야!"라고 선언했다.
특히 서기 865년 '대군단'이라 불린 바이킹 대규모 이주단이 영국에 상륙했을 때, 이들은 현지 적응 프로그램이나 언어교육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대신 검으로 대화하고, 불로 소통하는 방식을 택했다. 어찌 보면 가장 직접적인 문화 교류였다고 할 수 있겠다.
경제적 기여도, 바이킹식 경제 활성화
바이킹들이 영국 경제에 미친 영향은 실로 '혁명적'이었다. 이들은 수도원과 마을을 약탈하며 부의 재분배를 실현했는데, 이는 현대의 세금제도보다 훨씬 효율적이었다. 중간 단계 없이 바로 손에서 손으로 재산이 이동했으니까.
또한 바이킹들은 영국 최초의 '창업 붐'을 일으켰다. 수많은 영국인들이 바이킹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무기제조업, 성벽건설업, 경비용역업에 뛰어들었다. 실업률이 한순간에 뚝 떨어졌다. 물론 그 이유가 많은 사람들이 바이킹에 의해 '조기 퇴직'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점은 넘어가자.
언어와 문화의 융합,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바이킹은 영국 언어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현재 영어에서 쓰이는 수많은 단어들이 바이킹의 고향인 북유럽 언어에서 온 것이다. 'sky(하늘)', 'knife(칼)', 'husband(남편)' 같은 일상어부터, 'berserk(광전사)', 'slaughter(도살)'처럼 그들의 특기를 보여주는 단어까지.
특히 ‘남편’('husband')라는 단어가 바이킹 언어에서 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바이킹 남성들이 영국 여성들과 결혼하면서 생겨난 말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저 사람이 우리 집에 정착한 바이킹이야"라는 뜻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현대의 국제결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정치적 변화, 바이킹식 민주주의
바이킹은 영국 정치사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바이킹의 법률제도는 '씽(Thing)'이라는 자유민 집회를 중심으로 했다. 이는 지역, 지방, 그리고 아이슬란드의 경우 국가 차원의 자유민 집회로서 정부와 법의 기본 단위였다.
씽은 고대 노르웨이어 'þing'(집회)에서 나온 말로, 초기 사법과 행정제도였다. 이는 혈투와 폭력만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대신 중립적인 장에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대의제를 도입하려는 시도였다.
또한 바이킹은 영국 역사상 최초로 '실력주의'를 도입했다. 왕족이나 귀족 출신이 아니어도 충분히 센 사람이면 누구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다만 그 '실력'이 주로 남을 칼이나 도끼로 베는 능력이었다는 점이 현대 사회와는 다르다.
종교적 영향, 강제 종교개혁
바이킹의 종교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은 영국의 가톨릭 수도원들을 습격하면서 의도치 않게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수도원들이 쌓아놓은 부와 권력을 해체시킨 것이다.
물론 이들의 방법은 조금 과격했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 '95개조 반박문'을 써서 토론을 제기한 것과 달리, 바이킹들은 '95개의 도끼'로 직접 행동에 나섰다. 효과는 확실했지만 과정이 좀 시끄러웠다.
사회적 통합, 바이킹식 다문화주의
놀랍게도 바이킹은 영국 사회에 상당히 빠르게 융화되었다. 초기에는 약탈과 정복에 여념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농업에 종사하고 상업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현대 이민자들의 사회 적응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문화적 충돌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간다. 다만 바이킹의 경우 '문화적 충돌'이 말 그대로 칼과 칼의 충돌이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바이킹 유산의 현재적 의미
오늘날 영국 사회 곳곳에는 바이킹의 흔적이 남아있다. 영국 북부지역 지명의 상당수가 바이킹 언어에서 온 것이고, 영국인들의 성씨 중에도 바이킹 계통이 적지 않다.
지명에 새겨진 바이킹의 발자취
영국 북부 요크셔 지역만 봐도 베크홀름(Beckholme), 커크비(Kirkby), 펠커크(Felkirk), 스카길(Scargill), 스켈데일(Skeldale), 커크토프(Kirkthorpe), 스렐켈드(Threlkeld) 같은 이름들이 즐비하다. 이런 이름들은 영국 남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북쪽나라' 특유의 이름들이다.
바이킹 지명의 특징을 보면 그들의 정착 유형이 보인다. '-by'로 끝나는 지명들은 바이킹어로 '마을'을 뜻하는 'byr'에서 나왔다. 그림스비(Grimsby), 휘트비(Whitby), 럭비(Rugby) 같은 곳들이 대표적이다. '-thorpe'는 '작은 마을'을 뜻하고, '-thwaite'는 '개간지'를 의미한다. 바이킹들이 어떤 곳에 정착했는지 지명만 봐도 알 수 있는 셈이다.
성씨에 숨어있는 바이킹 혈통
9~10세기에 노르웨이 침입자들이 영국북부 대부분을 지배했고, 현재 데인로(Danelaw)라고 불리는 지역에 북유럽 계통의 성씨들을 남겼다.
앤더슨(Anderson)은 북유럽 이름인 안데르손(Andersson)에서 나왔고, 칼슨(Carlson)은 칼손(Carlsson)에서 파생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겉보기에 북유럽 계통이 아닌 것 같은 성씨들도 실제로는 바이킹 혈통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존슨(Johnson), 윌리엄슨(Williamson), 로빈슨(Robinson) 같은 '-son'으로 끝나는 성씨들도 북유럽 전통에서 나왔다. 이는 '아무개의 아들'을 뜻하는 북유럽 명명법이다. 현재 영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 중 하나인 존슨(Johnson)을 가진 사람들이 설마 자신이 바이킹 후손일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스미스(Smith), 브라운(Brown), 화이트(White) 같은 직업이나 외모를 나타내는 성씨들도 바이킹 시대에 형성된 것들이 많다. 특히 영국 북부에서는 이런 성씨들이 바이킹 정착민들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경우가 흔하다.
언어 속에 살아 숨쉬는 바이킹 정신
더 놀라운 것은 현재 영어 일상어 중 상당수가 바이킹 언어에서 왔다는 점이다. 'get', 'give', 'take', 'call', 'want' 같은 기본 동사들부터 'egg', 'cake', 'knife', 'husband', 'sky' 같은 명사들까지. 심지어 'they', 'them', 'their' 같은 3인칭 대명사들도 바이킹 언어에서 왔다.
이는 바이킹들이 단순한 침입자가 아니라 영국 사회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는 증거다. 언어는 문화의 가장 깊은 부분이고, 그 언어가 이렇게 광범위하게 섞였다는 것은 두 문화가 완전히 융합되었다는 뜻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영국인들이 바이킹에 대해 갖는 이중적 태도다. 역사 교과서에는 침입자로 기록되어 있지만, 대중 문화에서는 용감하고 자유로운 전사로 그린다. 영국 사회가 외부 문화에 대해 갖는 복잡한 감정을 보여준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바이킹의 영국 침입사를 돌아보면, 이민과 문화융합이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천 년 전에도 '외국인'들이 영국 땅에 들어와 기존 사회와 충돌하고 적응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다만 바이킹의 방법은 현재의 이민정책 담당자들이 벤치마킹하기에는 너무 과격하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 정착할 테니까 땅 내놔"라고 하면서 칼을 휘두르면 곧바로 경찰서로 직행할 것이다.
하지만 바이킹이 보여준 적응력과 융화능력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났을 때 충돌은 불가피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더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교훈 말이다.
그러니 다음에 영국 정치인들이 이민정책을 두고 논쟁할 때, 바이킹들을 떠올려 보자. 그들도 결국 영국사회의 일부가 되어 오늘날까지 그 흔적을 남기고 있지 않는가. 물론 그들이 현대의 비자 심사를 통과했을 지는 심히 의문스럽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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