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양도세 완화 이어 여야 약속 또 파기
“대다수 금융선진국 주식 양도차익 과세”
금투세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 원칙 부합
“건전재정 외치며 총선용 감세는 자기모순”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2022년 12월 여당과 야당이 주식과 펀드 등 금융상품에 투자로 생긴 소득에 대해 오는 2025년부터 과세하기로 합의했던 약속을 파기하겠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주식 투자자들이 반길 만한 정책이다. 그러나 좀 더 깊게 보면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라는 조세 원칙을 훼손한 것일 뿐 아니라 일반 투자자보다는 일부 주식 부자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또 다른 형태의 부자 감세라고 할 수 있다.
금투세 폐지는 자본시장 선진국들이 주식 거래제를 낮추거나 폐지하고 금융소득에 과세하는 흐름과도 상반된다. 지난해 60조 원에 육박하는 세수 결손이 발생했고 올해도 서민과 취약층을 위한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그러면서 4월 총선을 겨냥해 대주주 주식 양도소득세 완화에 이어 금투세 백지화까지 부자를 위한 감세를 고집하는 것은 재정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도 맞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한국거래소 서울 사옥에서 개최된 ‘2024년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구태의연한 부자 감세 논란을 넘어 국민과 투자자, 우리 증시의 장기적 상생을 위해 내년에 도입 예정인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금투세 시행 유예가 아닌 폐지를 공식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투세는 대주주 여부와 상관없이 주식과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일정 금액(주식 5000만 원·기타 250만 원)이 넘는 소득을 올린 투자자에게 해당 소득의 20%, 과세표준 3억 원 초과분은 25%를 부과하는 세금이다. 지방소득세까지 합치면 세율은 각각 22%와 27.5%로 높아진다.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이었던 2020년 추진돼 2023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2022년 12월 여야는 2년 유예를 합의했다. 금융투자업계와 주식 투자자들의 반대 여론을 의식한 결정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명분을 얻기 위해 대주주 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을 10억 원 이상으로 정한 소득세법 시행령도 2025년까지 유지할 것을 지금의 여당인 국민의힘에 요구했다. 국민의힘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여야 합의로 금투세를 2년 유예하기로 했다. 금융소득에 과세하는 만큼 모든 주식 거래에 부과되는 증권거래세를 기존 0.23%에서 2023년 0.20%, 올해 0.18%를 거쳐 최종 0.15%까지 내리기로 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처럼 금융소득에 세금을 부과하고 통행세 격인 거래세를 궁극적으로 없애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지난달 시행령을 개정해 주식 양도세 기준을 10억 원 이상에서 50억 원 이상으로 완화했고 더 나아가 금투세마저 백지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윤 대통령은 “과도한 부담의 과세가 선량한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시장을 왜곡한다면 시장원리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며 약속 파기를 정당화했다. 기획재정부도 금투세 폐지가 대통령실과 협의한 사안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기재부는 “지난 대선 공약과 현 정부 국정과제에서 밝힌 대로 주식 양도세 폐지가 기본 입장으로 일관되게 이를 추진해 왔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윤 대통령이 금투세 폐지 이유로 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대해서도 “금투세 폐지가 한국 주식시장과 주가의 불안 또는 마이너스 요소를 불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옹호했다. 기업 실적 등 여러 기준을 봤을 때 한국 증시가 외국에 비해 충분히 주가가 오르지 못하는 디스카운트 요인 중 하나가 주식 양도세 부분인데 금투세 폐지가 이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본시장 선진화와 조세 정의를 외면한 궤변에 불과하다.
기재부는 2020년 10월 금투세 보도설명 자료에서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는 대다수 선진국이 시행하는 ‘국제 표준’이라고 역설했다. 미국과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호주, 한국 7개국 중 주식 양도차익을 전면과세 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며 보수와 진보 정부 모두 자산소득 과세 강화를 위한 대상을 늘려왔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 대주주 범위는 2013년 50억 원 이상에서 2016년 25억 원 이상, 2018년 15억 원 이상, 2020년 10억 원 이상으로 확대됐다. 금투세 폐지는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금투세를 반대하는 논리로 국내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이 빠져나가 주가가 급락할 것이라는 이유를 꼽지만 과장된 주장이다. 금투세는 소득과 손실을 모두 고려해 과세한다. 주식 투자로 손실을 봤을 때도 내는 거래세와 달리 일정 수준 소득분에 대한 세금이라 조세 원칙과 조세 정의에 부합한다. 또 금투세 시행과 더불어 거래세를 점진적으로 낮추기 때문에 주식 투자자가 내는 세금이 경감되는 효과가 있다. 금융 선진국들이 거래세를 없애고 주식 양도세를 도입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는 윤석열 정부의 주식 양도세 완화와 금투세 폐지에 대해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 가능성, 거래세를 없애고 양도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가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경제개혁연대는 “정부 스스로 과세의 당위성을 부정하는 결과가 돼 논란만 키울 것”이라며 “금투세가 좌초되면 기존 세원마저 포기한 결과가 될 것이고 고소득층 세금을 일시적으로 면제하여 부당하게 특혜를 준 결과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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