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으로 위장한 역대급 관권선거" 칼럼 게재
'자영업자 이자 환급' '전기요금 인하' 등 "퍼주기"
과거 막걸리·돈봉투에서 "21세기판 현금 살포" 정책
"선거앞둔 망국적 퍼주기· 치명적 포퓰리즘" 비난
언론, 신당·지지율 보도만 말고 '관건선거' 파헤쳐야
10일로 총선이 정확히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주류 언론들은 총선 관련 정치권 움직임을 하루도 빠짐없이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신당 창당을 둘러싼 정치인의 이합집산과 각 정당의 지지율 조사결과는 최근 언론 보도의 단골 메뉴다. 당이 마음에 안 든다고 뛰쳐나오고 새 살림 차리겠다는 철새 정치인 소식, 각 정당과 유력 후보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를 언론은 지겹도록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게 바로 저널리즘 교과서에서 하지 말라고 늘 경고하는 ‘경마식 보도’다. 클릭수와 시청률을 올리는 데 도움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언론 신뢰를 회복하고 유권자에게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돕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언론의 이런 보도를 보면 언론의 자기 성찰이나 자정(自淨)은 역시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에게 묻고싶다. 야당 의원 4~5명의 탈당 결심이 금배지 160명이 넘는 거대 야당을 무너뜨릴 만큼 정말 심각한 ‘야당 분열’인가? 여당은 국정을 이끌고 가는 집권당이다. 언론은 왜 이번 선거에서 집권 3년차 정부·여당의 국정운영 성과 또는 실패를 평가할 수 있는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가? 왜 뜬금없이 정치초보 비대위원장 홍보에만 열심인가? 왜 야당 출신 정치인이 신당을 차리면 ‘야당분열’이고 여당 출신의 신당은 ‘여권재편’인가? 제 역할 못하는 걸 넘어 선거 때만 되면 몰래 정파지 노릇을 하는 언론의 이중성을 재확인하게 된다.
이런 정치공학적, 흥미유발용 보도말고, 선거를 앞두고 언론이 해야할 기본적인 역할이 있다. 예를 들면 정부가 선거에 편향적으로 개입하는지 여부 즉, 관권선거 문제다. 정부와 공직자는 선거에서 절대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 은밀히 또는 노골적으로 여당이 유리하도록 공권력을 남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시골에서 공무원 조직을 이용해 막걸리, 고무신을 뿌리던 관권선거에서 지금은 특정 계층·업종·연령층에게 갑자기 선심을 베푸는 정책을 내놓는 방식의 관권선거가 펼쳐진다. 2년 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 때에는 코로나19로 어려움에 빠진 자영업자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조차 ‘관권선거’로 몰려 욕을 먹었다.
한겨레가 10일 윤석열 정부의 관권선거 문제를 제기했다. 이재성 논설위원이 “민생으로 위장한 역대급 관권선거” 제목으로 쓴 ‘아침햇발’ 칼럼을 보면, 생각지 못했던 이 정부의 관권선거 사례들이 정리되어 있다. 생각지 못한 이유는, 아무도 이를 ‘관권선거’ ‘정부의 선거개입’이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럼을 읽고 나면 이런 심각한 관권선거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데도 왜 그동안 언론들이(이 칼럼을 게재한 한겨레조차도) 조용하기만 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칼럼은 “사회적 약자를 보듬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표가 되는 특정 개인들을 집중 공략할 수 있는 명분으로 변질했다”면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일부에게만 이자를 환급해주는 것으로 귀결된 ‘은행 때리기’가 대표적”이라고 윤 정부의 관권선거 사례를 지적했다.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전기요금 인하, 세금납부 기한 연장, 세금 체납에 대한 압류·매각절차 유예, 부가가치세 간이과세 기준 상향 검토 등 이 정부가 “자영업자에게 정부가 줄 수 있는 카드를 매일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성 논설위원은 “이건 600만 명이 넘는 거대한 표밭에 정부가 직접 현금을 살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정부가 선거에 개입하는 광경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역대급 관권선거가 치러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개발독재 시대의 막걸리와 고무신과 돈봉투가 이자 환급과 전기요금 인하 같은 21세기 판본으로 진화했을 뿐, 국가의 자원으로 유권자를 매수하는 본질은 같다”고 했다.
그는 이어 “‘2024년 경제정책 방향’에 끼워넣은 30가지가 넘는 감세정책은 ‘내수 살리기’라는 미명으로 포장했”고 “김포시 서울 편입뿐 아니라 공매도 금지나 주식양도세 대주주 기준 완화, 금융투자세 폐지 추진 등 1400만 주식투자자를 향한 선심 정책들도 역시 이런 궤적을 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야당으로선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없어 침묵”하고 있고, 정부·여당은 “이런 야당의 약점을 알기에 입법이 필요한 사항까지 모조리 끌어다 일단 질러놓고 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논설위원은 “조세와 국토관리를 볼모로 표를 구걸하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행태는 어떤 최상급 형용사로도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사악하다. ‘퍼주기’나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으로도 부족하다”면서 이를 나라를 수십 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망국적 퍼주기’, 두고두고 상처를 남길 ‘치명적 포퓰리즘’이라고 이름붙였다.
이 위원이 나열한 윤 정부의 여러 정책들은 지난해 말 이후 언론을 통해 계속 보도된 것들이다.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이 나오긴 했으나 그것을 정부·여당의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관권선거’로 비판한 보도는 없었다. 선거를 앞두고 ‘퍼주기’ ‘포퓰리즘’ 정책이 계속 이어져도 언론이 이에 대해 ‘관권선거’라는 프레임으로 보도하지 않은 것이다. ‘빅카인즈’에서 지난 3개월간 10개 주요 신문과 4개 방송을 대상으로 ‘관권선거’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관련 기사는 달랑 9건이다. 그것도 지난 10월 민주당이 제기한 ‘국정원발 관권선거’ 의혹을 제기한 기사가 대부분이었고, 한겨레가 칼럼에서 말하고 있는 정부 차원의 ‘퍼주기 관권선거’를 의제화해 보도한 기사는 단 한 건도 발견할 수 없다.
한겨레의 이 칼럼이 선거를 석달 앞둔 지금 ‘참신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오히려 문제일 정도다. 윤석열 정부의 ‘퍼주기’와 ‘포퓰리즘’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시작되었는데, 어떤 언론도 이를 의제화(아젠다세팅)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 한겨레가 논설위원 칼럼으로 다뤘지만, 한겨레조차도 이를 기사를 통해 의제화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한겨레 칼럼 주장대로, 선거를 앞두고 ‘민생으로 위장한 정부의 퍼주기’ 정책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 언론은 지금이라도 ‘21세기판 세금으로 퍼주는 관권선거’가 진행되고 있는지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 지겹도록 다뤄지는 정치인 탈당, 신당 창당, 지지율 변화 같은 여의도의 ‘정치공학적’ 보도보다는 공정한 선거가 이뤄지는지, 국민이 낸 세금이 올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이 더 중요한 언론의 역할이다. 코로나19 지원금까지 ‘선거용 퍼주기’라고 했던 언론의 그 '불편부당함'과 냉철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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