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침체로 성장률 2% 달성도 힘들어

부동산 PF 뇌관 터지며 아슬아슬 출발

고금리로 가계부채·한계기업도 임계점

글로벌 공급망 분절화·대외 정세 불안

서민 생존 위기에도 정부 재정 역할 포기

PF 부실 아랑곳 않고 총선용 '건설 부양'

“저성장 고착과 물가 불안, 높은 금리, 눈덩이처럼 쌓이는 가계 빚과 기업부채,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 증가, 수출 회복 지연과 쪼그라드는 내수 경기,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정세 불안 지속 등 지정학적 위기와 분절화하는 글로벌 공급망, 이처럼 대내외 위기가 몰려오는데도 총선 표를 겨냥한 건설 경기 부양과 집값 띄우기, 부자 감세에만 매달리는 정부….” 새해 우리 경제가 처한 현주소다. 버스는 벼랑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믿을 수 없는 기사가 운전대를 잡은 모양새다.

 

지난해 한국 경제는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가 이어지며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올해도 수출 회복 지연과 내수 침체로 2% 성장률 달성도 힘들어 보인다. 사진은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있는 부산항. 연합뉴스
지난해 한국 경제는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가 이어지며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올해도 수출 회복 지연과 내수 침체로 2% 성장률 달성도 힘들어 보인다. 사진은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있는 부산항. 연합뉴스

경제성장률 2% 달성도 간당간당

올해도 한국 경제는 저성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부터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고 있으나 수출 회복이 더디고 내수는 고금리와 고물가, 가계부채 급증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며 작년보다 더 침체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도 투자를 늘릴 여력이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건정재정'만 외치며 세출을 줄이고 있다. 경제 성장을 이끌 거의 모든 동력이 힘을 잃고 있는 것이다.

국내외 주요 경제연구기관들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2%를 턱걸이하거나 지난해에 이어 1%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국책 연구기관과 민간 연구소, 국제기구, 증권사 등 20곳이 발표한 올해 한국 경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는 평균 2.0%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연구원은 각각 2.1%, 2.2%, 2.0%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2.1%를 제시했다. 정부가 6개월 전 발표한 전망치(2.4%)보다 모두 낮은 수준이다. 이들 국책 기관은 내수 증가세가 둔화하겠으나 수출이 완만하게 회복되고 있는 것에 가중치를 뒀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관들도 비슷한 전망치를 내놓았다.

이에 비해 민간 경제연구소와 증권사들은 2%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곳은 LG경영연구원이다. 상반기 1.9%, 하반기 1.7% 성장하면서 연간으로 1.8%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성장률을 다른 연구기관보다 낮게 잡은 이유로 올해도 높은 물가가 지속되며 금리를 낮출 수 없는 데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줄일 것이라는 점을 꼽았다. 대한상공회의소의 기업환경 전망에 대한 전문가 의견조사에서도 경기 회복 시점을 올해 하반기나 2025년 상반기로 보는 의견이 다수였다. 

 

관가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책 연구기관과 민간 연구소, 국제기구, 증권사 등 20곳이 발표한 내년도 한국경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는 평균 2.0%로 집계됐다. 연합뉴스.
관가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책 연구기관과 민간 연구소, 국제기구, 증권사 등 20곳이 발표한 내년도 한국경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는 평균 2.0%로 집계됐다. 연합뉴스.

부실 부동산 PF 금융시스템 전이 위험

이처럼 경제 체력이 소진된 상황에서 곳곳에 폭발력이 큰 지뢰가 묻혀있다. 국내 건설업계 도급 순위 16위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 신청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가 올해 첫 위기가 될 확률이 높다. 정부는 부실 PF가 금융시장으로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85조 원 규모의 안정화 자금을 투입할 것이라지만 불안 심리를 불식시킬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PF 부실의 근본 원인은 고금리에 따른 주택 가격 하락과 부동산 시장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다. 올해도 이런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전국 아파트 가격은 지난해 11월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거래가격 하락률 폭이 커지고 거래량도 줄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주택산업연구원은 올해 전국 주택 매매가격이 작년보다 각각 1.5%와 2.0%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부동산 경기가 추락하고 있어 PF 부실화도 빨라질 게 틀림없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34조 원이 넘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만 40조 원 이상 늘었다. 2021년만 해도 0%대였던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3%대를 향해 가고 있다. 저축은행과 캐피탈, 상호신용금고, 증권사 등 비은행권 연체율은 심각한 수준이다.

부동산 PF 대출을 보증한 건설사도 벼랑 끝에 몰려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16개 건설사의 PF 대출 보증액만 총 28조 3000억 원에 달했다.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도 1만 채가 넘는다. 이들 단지는 부동산 PF 유동성 위기를 초래하는 진원지가 될 수 있다.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처럼 공사가 끝났는데도 수익이 없거나 자금 조달에 실패해 사업 추진이 불발되면 건설사의 PF 대출 보증액은 악성 채무로 전환된다. 이런 측면에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은 건설사의 연쇄 부도 가속화와 금융시장 신용 경색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 될 수 있다.

올해 회사채 만기가 집중돼 있는 것도 경제 위기를 촉발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일반회사채와 여신전문금융회사의 여전채 등 회사채 물량이 70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역대 최대 규모로 금융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잔액과 연체율 추이. 연합뉴스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잔액과 연체율 추이. 연합뉴스

폭발 직전에 다다른 가계부채와 한계기업

가계부채는 언제든 터질 수 있는 뇌관이다. 고금리가 장기간 이어지며 부채 상환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 담보로 잡힌 집값은 하락하고 이자 부담이 늘면 빚을 갚지 못하는 가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현재 가계부채는 1900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시행사와 건설사와 협력업체, 금융사, 분양계약자 등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부동산 PF와 비교하면 가계부채는 휘발성이 크지 않다. 그러나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빚을 갚느라 가계가 소비를 줄이면 내수 경기에 치명적이다. 연체율이 높아지고 상환 불능에 빠지는 가계가 많아지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발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가계대출의 신규 연체는 취약 차주와 비은행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가계와 기업 대출 규모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고금리 환경과 맞물려 금융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계기업은 가계대출과 함께 금융시장을 압박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도 충당하지 못하는 업체를 말한다. 기업의 존재 이유인 수익 창출 능력이 없어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 ‘좀비 기업’이라고도 한다.  중소기업 중에 한계기업이 지난해 17%를 넘어섰고 올해는 20%에 달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밀어두었다. 

 

주요국 GDP 대비 기업 및 가계부채 비교. 연합뉴스
주요국 GDP 대비 기업 및 가계부채 비교. 연합뉴스

글로벌 공급망 분절화와 지정학적 위기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촉발한 공급망 재편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 등 대외 변수도 우리 경제를 강타할 수 있는 악재다. 한국은행은 최근 미국과 중국을 양대 축으로 한 글로벌 교역 분절화 현상이 극심해지면 한국의 수출이 최대 10% 감소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공급망 분절화는 주요국들이 두 블록으로 나뉘어 블록 간 무역장벽을 강화하고 블록 내에서도 보호무역 조치를 시행하는 것을 말한다. 중동 정세가 우리 경제이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을 자극할 수 있다. 이는 수입 물가 급등을 초래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인다.

한국 경제는 이미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그러나 정부는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작년에도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여러 차례 비상경제대책 회의를 열었으나 수출 지원과 규제 완화 등 똑같은 처방만 반복해서 내놓고 있다. 입으로는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보호하겠다고 하면서 관련 예산을 동결 또는 삭감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건전재정’에 매달리며 꼭 써야 할 분야에 예산을 투입하지 않으면서 서민들의 삶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에서 첫 번째)이 지난해 11월 15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에서 첫 번째)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책임 있게 경쟁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시 주석은 "충돌과 대치는 양쪽 모두에게 감당하지 못할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화답했다. 2023.11.16. 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에서 첫 번째)이 지난해 11월 15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에서 첫 번째)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책임 있게 경쟁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시 주석은 "충돌과 대치는 양쪽 모두에게 감당하지 못할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화답했다. 2023.11.16. AP 연합뉴스

미덥지 못한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

지금처럼 기업과 가계가 힘들 때는 재정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런 책무를 포기한 것 같다. 내년도 총지출은 올해 대비 2.8% 증가한 656조 6000억 원이다.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로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서민을 위한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법인세와 부동산, 주식 관련 세금은 깎아주고 있다. 이는 지난해 50조~60조 원의 세수 펑크로 귀결됐다. 올해도 세수 부족 현상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불어나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관련 통계를 보면 이런 설명이 무색해진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GDP 대비 4%에 근접했다. 정부가 법제화를 추진 중인 재정준칙 상한인 3%를 넘는다. 국가채무도 약 1200조 원으로 GDP의 51%에 달하고 있다. 세출을 줄여 재정의 경제 버팀목 역할을 축소하면서도 건전재정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 마디로 '뺄셈' 정책으로 경제를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관리재정수지 및 국세 수입 추이. 연합뉴스
관리재정수지 및 국세 수입 추이. 연합뉴스

올해 가장 우려스러운 정부 정책은 고금리를 아랑곳하지 않는, 총선을 겨냥한 건설 경기 부양과 집값 띄우기다. 정부는 작년에도 40조 원 규모의 특례보금자리론을 비롯해 신생아 특례대출 등 사실상 젊은 세대에 ‘빚투’를 권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런 헛발질 정책은 고금리에도 가계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하는 원인이 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집값 하락을 막기 위한 ‘건설투자 활성화’ 대책을 쏟아낼 태세다. 지난달 29일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민간 건설투자 확대를 위한 전방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부실해진 부동산 PF의 유동성 위기에 대응해 건설 부문 투자를 축소해야 할 판에 정반대 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내수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 역할과 일자리 창출 등 여러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집값이 하락하고 부동산 시장 전망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건설 경기 부양은 긍정적인 효과보다 예산만 낭비할 소지가 다분하다.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포기하고 부자 감세와 건설 부양 같은 역주행 정책으로는 당면한 경제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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