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 폭주·건설 부양…‘건전재정’과 역행

정부, 민생 명분 연일 선심성 정책 발표

법 개정 필요 사안인데 일단 던지는 식

R&D 예산 줄여 놓고 “내년엔 대폭 증액”

“오락가락 경제 정책 그 피해는 국민 몫”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3개월도 남지 않은 총선을 겨냥해 즉흥적으로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입으론 '건전재정'을 외치면서 마구잡이로 세금을 감면하고 건설 경기 부양에 수십조 원을 투입하는 등 모순투성이 정책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과학계 전체를 카르텔로 몰아 올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더니 내년에는 다시 대폭 늘리겠다고 한다.

기업 활동을 활성화해 민간 주도의 일자리 정책을 펼치겠다고 해놓고 16일에는 올해 상반기에만 정부가 직접 114만 명 이상을 채용하는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쏟아내는 정책 중엔 국회에서 법안을 개정해야 시행할 수 있는 것도 많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실행될 수 없다는 뜻이다. "총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일단 던져놓고 보겠다는 속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최 부총리,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2024.1.4. 연합뉴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최 부총리,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2024.1.4. 연합뉴스

정부, 민간이 일자리 만든다며 총선 직전 70만 명 직접 채용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약자 복지와 일자리,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중심으로 올해 상반기 중에 역대 최대인 65% 이상의 재정을 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영건설 워크아웃과 지방 건설사 연쇄 부도를 촉발하고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데도 그는 "상반기 전체 SOC 예산의 75%인 15조 7000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공공기관 투자 사업 예산도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인 3조 9000억 원을 집행하기로 했다. 이 같은 경기 부양은 예산의 비효율적 사용도 문제지만 부실한 건설 사업장의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설 연휴 전후에 정부의 직접 일자리 사업으로 70만 명을 채용하기로 한 것도 그동안 윤석열 정부가 말했던 정책과는 결이 다르다.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자리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만든다고 했다. 이런 논리로 대기업 세금 감면 등 지원 명분으로 내세웠다. 국민의힘은 야당 시절 문재인 정부가 공공 일자리를 늘리자 ‘세금으로 만든 일자리’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똑같은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16일 발표한 ‘일자리 사업 추진 방향’을 보면 1월 중 노인 일자리 63만 개, 자활사업 4만 개, 노인맞춤돌봄서비스 3만 5000개를 만들기로 했다. 이를 포함해 정부 직접 채용 인원은 1분기 105만 5000명(올해 전체 117만 명의 90%), 상반기까지 114만 2000명(97%)에 달한다. 

경기 침체로 민간 부문 고용이 감소하면 공공 일자리 사업을 활성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극심한 불황이 덮쳤을 때 공공 일자리를 늘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어떤 정부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 정부를 비난하기 위해 공공 일자리 정책을 평가절하한 것은 자가당착이 되고 말았다.

 

 정부 직접 일자리 사업 내용. 2024.1.16. 연합뉴스
 정부 직접 일자리 사업 내용. 2024.1.16. 연합뉴스

소상공인 이자 감면·신용 대사면…연일 총선용 선심성 정책 발표

올해 들어 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거의 매일 총선용 선심성 정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해 제2금융권 이자를 덜어주는 방안을 발표했다. 또 취약계층 365만 호에 대한 전기요금 인상 유예를 추가로 1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지난 11일에는 2021년 9월부터 올 1월까지 2000만 원 이하의 연체자 중 5월 말까지 전액 상환하면 연체 기록을 없애는 대책도 발표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신용 대사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성실하게 빚을 갚은 사람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되는 데다 모럴 해저드를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많다. 

이에 앞서 영세 소상공인 전기요금 감면과 지역 의료보험 가입자의 자동차 부과 기준 폐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대주주 주식양도소득세 완화, 다주택자 중과세 철폐 등 많은 정책을 공표했다. 정부 예산만 투입하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충분한 논의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할 사안도 적지 않다. 특히 세제와 부동산 관련 정책은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예컨대 준공한 지 30년만 넘으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허용하는 등 파격적인 규제 완화 방안을 담은 ‘1.10 주택 대책’은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 또 부동산 하락기인 지금은 집값에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다시 금리가 내려가는 등 시장 환경이 바뀌면 집값 급등을 촉발하는 악법이 될 수도 있다. 장기적 안목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를 즉흥적으로 던졌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개인 신용사면 내용. 2024.1.15. 연합뉴스
 개인 신용사면 내용. 2024.1.15. 연합뉴스

세수 감소 아랑곳하지 않고 대기업 감세 폭주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의 한 축은 ‘건전재정’이다. 그런데 총선용으로 발표한 대책들은 세수 감소를 유발하거나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지난 15일 경기도 수원 성균관대 반도체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업무보고를 겸해 진행된 토론회에서 밝힌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연장도 그렇다. 윤 대통령은 이를 두고 ‘대기업 퍼주기’라는 비판에 “세액공제로 투자가 확대되면 반도체 생태계와 기업 수익, 일자리, 국가 세수가 늘어나게 된다”고 했다. 단선적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세액공제만으로 기업이 투자를 늘리지 않는다. 세액공제로 인한 세수 감소는 즉각 나타나지만 세액공제로 기업 투자가 늘어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정부 R&D 예산에 대한 윤 대통령의 말과 태도 역시 오락가락해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과학계를 뜬금없이 카르텔로 몰아 올해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더니 이날 토론회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윤 대통령은 “올해 R&D 예산을 줄여서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은 데 걱정하지 말라”며 “내년도 예산을 만들 때는 R&D 예산을 대폭 증액해 학생과 연구자를 우수 인력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올해 R&D 예산 삭감으로 대학원 학생과 젊은 연구자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지난해 세수는 예상보다 59조 원 넘게 부족했다. 올해 예산안을 보면 작년보다 세수가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의 ‘건전재정’은 빈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 정책은 일관성이 있고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과 가계 등 경제 주체들이 혼란을 겪지 않고 재정도 효율적으로 집행될 수 있다. 이것이 국가 경제 정책의 기본 문법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기본을 지키지 않고 있다. 좌충우돌식 경제 정책으로는 민생을 살릴 수도 없고 건전한 재정도 지킬 수 없다. 무엇보다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는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국세수입 전망
국세수입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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