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투자세액공제에도 설비투자 4조 줄어
이명박 정부 때도 기업 사내 유보금만 쌓아
그런데도 정부는 실패한 감세 정책 고수
이대로 가면 향후 5년간 92조 ‘재정 펑크’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감세’다. 지난해 법인세와 부동산 관련 세금을 파격적으로 내린 데 이어 올해도 대주주 주식 양도세와 기업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연장 등 감세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는 기업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면 투자와 소비가 늘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논리를 펼친다. 그러나 이는 희망사항일 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정부와 여당이 주도해 한시적으로 도입한 임시투자세액공제가 단적인 예다.
임시투자세액공제의 목표는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늘리도록 하는 것이다. 예년보다 늘어난 투자분에 대해 10% 세액공제를 추가로 해주는 게 주요 내용이다. 세금을 더 깎아주면 기업이 투자를 늘릴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지난 3일 ‘2024년 경제정책방향 협의회’에서도 이런 논리를 근거로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올해 말까지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해 기업들의 설비투자 실태를 보면 정부와 여당의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산업은행은 최근 종업원 50인 이상인 1만 9190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비투자 현황과 계획을 조사했다. 그 결과 지난해 설비투자액은 217조 8000억 원(잠정치)으로 전년보다 4조 원 이상 감소했다. 이는 세액공제가 실제 투자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설비투자를 꺼리는 이유로 ‘불확실한 경기 전망’을 꼽은 기업이 가장 많았다. 정책금융을 확대하고 세금을 줄여주면 투자하겠다고 답변한 기업조차도 실제 투자를 결정하는 최종 기준은 사업 전망이었다. 지난해 설비투자가 감소한 것도 반도체 등 주력 산업 수출이 부진하고 내수 경기가 침체했던 탓이 크다. 올해 국내 기업의 설비투자액은 총 225조 3000억 원으로 예상됐다. 지난해보다 3.4% 늘어난 규모다.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면서 투자를 늘리겠다는 곳이 증가한 것이다. 산업은행 조사는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 여부와 상관없이 실적과 경기 전망이 기업 투자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감세가 경기 부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건 이명박(MB) 정부 때 명확하게 드러났다. MB 정부는 2008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췄다. 기업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면 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져 국민 모두에게 감세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낙수 효과’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 이후 통계를 보면 감세 정책이 국민에게 돌아가기는커녕 대기업과 부자들 주머니만 채운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2014년 발표한 ‘MB정부 감세 정책에 따른 세수 효과 및 귀착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세수 감소액은 62조 4000억 원에 달한다. 이중 법인세 인하로 줄어든 세수가 37조 2000억 원이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귀속분이 28조 원이고 중소기업은 9조 원가량 혜택을 본 것으로 분석됐다. 감세 효과가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집중된 셈이다.
그렇다면 법인세 인하 후 기업들은 투자를 늘렸을까? 이전 시기에 비해 오히려 투자를 줄였다. 2009년부터 4년간 투자액은 약 23조 원으로 직전 4년인 2005년부터 2008년 34조 원보다도 10조 원가량 적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는 대신 사내 유보금을 쌓은 결과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업의 사내 유보금은 2배 이상 증가했다. 감세는 기업 투자와 거의 관련이 없고 투자를 결정하는 요인이 실적과 경기 전망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문제는 무분별한 감세 정책이 세수 부족으로 이어져 사회안전망 강화와 경기 부양을 위해 쓸 예산을 줄인다는 점이다. 임시투자세액공제를 1년 연장하는 것만으로 세수 감소액이 약 1조 45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에 의뢰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연장하면 기업의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액은 2조 8743억 원으로 연장하지 않았을 때 공제액 1조 4234억 원과 1조 4508억 원의 차이가 났다.
여기에 일반 연구개발(R&D) 증가분의 세액공제율을 한시적으로 높이는 것까지 계산하면 추가로 1539억 원이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양경숙 의원은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가 투자 유인이라는 취지와는 달리 실제로 설비투자 증대에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세법 심사 때 효과가 불분명하면서 세수만 줄이는 정부 감세안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말부터 윤석열 정부가 쏟아낸 감세 정책은 한둘이 아니다. 시행령을 기습적으로 개정해 대주주 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을 한 종목당 10억 원에서 50억 원으로 대폭 상향했고, 증권거래세를 줄이는 대신 도입하기로 했던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증권거래세는 계획대로 내리겠다고 한다. 이로 인한 세수 감소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서민을 위한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세제 혜택을 확대하기로 한 것도 감세 정책에 속한다. 여기에 더해 상속세 완화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무분별한 감세 정책은 보수언론조차 우려의 목소리를 낼 정도다. 조선일보는 22일 자에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표한 자료를 근거로 감세 정책을 비판했다. 지난 2017년부터 2022년까지 국회를 통과한 법률로 인해 추가되는 재정 적자 규모를 조사해 봤더니 연평균 10조 원 안팎으로 추산됐다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감세 법안을 밀어붙인 결과 향후 5년간 약 92조 원, 연평균 18조 3527억 원의 ‘재정 펑크’가 날 것으로 분석됐다. 경기 부양 효과가 불명확한 감세 정책으로 나라 살림이 거덜 날 수 있다는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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