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국힘, 영국 경제지 인용…자화자찬

근원물가 등 5개 지표 단순비교 평가에 불과

수출부진·내수침체 …체감 경기와 괴리

내년도 고금리·고물가…고통 가중될 듯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호에서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의 경제성적을 평가하며 한국을 그리스에 이어 2위에 올렸다. 이 뉴스를 보고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올해 내내 이어진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로 경제성장률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보다 더 추락했고 고금리와 고물가 여파로 서민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와 기업 부채에 더해 언제 터질지 모르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부실화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낼 수 없는 한계기업 급증 등 위험 요인이 한둘이 아니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2등이라는 이코노미스트의 경제 성적표를 믿기 힘든 이유다.

 

외국계 투자은행들이 우리나라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일제히 올렸다. 물가상승률 CG. [연합뉴스TV 제공]
외국계 투자은행들이 우리나라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일제히 올렸다. 물가상승률 CG. [연합뉴스TV 제공]

대다수 언론은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화제성으로 짧게 다뤘다. 깊이 있게 분석할 만한 가치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 평가 항목은 근원물가지수와 인플레이션 변동 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고용 증가율, 주가 수익률 등 5개다. 통계 자료를 단순 비교한 데다 각국의 부채 현황 등 중요한 항목은 평가하지 않았다. 5개 지표 중 2개가 물가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 굳이 의미를 두자면 각국 정부가 물가 관리를 얼마나 잘했는지 피상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은 근원물가지수 3.2%, 인플레이션 변동 폭이 –13.3%로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물가 관리를 잘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리스에 이어 2위를 기록한 것도 두 항목의 점수가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다. GDP 성장률 1.6%, 고용률 증가율 1.1%, 주가 수익률 7.2%로 다른 평가 항목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이코노미스트도 “한국은 선제적 금리 인상 덕분에 물가가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를 두고 엄청난 경제 성과를 거둔 거처럼 홍보하기에 바쁘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국무회의에서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언급하며 “정부가 견지해 온 건전재정 기조 아래 민간 주도, 시장 중심의 경제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한 것에 대한 평가”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유의동 정책위의장도 이날 원대 대책 회의에서 “우리나라는 물가 오르는 것을 막아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했고 박수영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제성적 2위’라는 제목으로 비슷한 글을 올렸다.

그러나 이는 낯 뜨거운 자화자찬이다.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3%대로 목표치를 웃돌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고물가 상황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특히 국민 체감도가 높은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 상승률은 떨어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은 지난달 말 기준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의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평균 3.7%로 봤다. 한 달 만에 0.1~0.3%포인트 올린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의 경제 성적표와 달리 한국의 인플레이션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소비자 물가 추이와 주요 품목별 가격 등락 추이. 연합뉴스 
   소비자 물가 추이와 주요 품목별 가격 등락 추이. 연합뉴스 

대외 여건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물가 관리를 한국이 잘했다는 평가도 실제 내용을 보면 허상일 수 있다. 이탈리아와 노르웨이, 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은 이코노미스트 경제 성적표에서 하위로 밀렸다. 그 이유는 에너지 가격 급등에 맞춰 전기요금을 큰 폭으로 올리면서 물가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와 달리 한국은 전기료를 묶어두며 에너지 가격이 물가에 반영되는 것을 차단했다.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한 조치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시장 가격에 개입해 인위적으로 물가 상승을 억제하다 보니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부담을 모두 떠안은 한국전력은 총부채가 200조 원을 넘어섰고 정부 눈치를 보며 가격을 올리지 못한 식품업체들은 제품 용량을 줄이는 꼼수를 쓰고 있다. 최근 정부와 식품업계가 ‘슈링크플레이션(용량 축소)’을 두고 벌이는 공방은 블랙코미디를 연상케 만든다. 윤 대통령은 “시장 중심의 경제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 가격을 통제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정부가 무리수를 두고 있는데도 생활물가가 잡히지 않는 것은 정책 엇박자 때문이기도 하다. 물가를 잡으려면 돈줄을 조여야 하는데 한국은행은 올해 한 번도 금리를 인상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부동산 대출 규제까지 완화하며 가계와 기업 모두 부채가 급증했다. 한국 경제에 눈덩이처럼 쌓인 빚은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뇌관이 되고 있다.

 

경제성장률 추이 (2023년 3분기)
경제성장률 추이 (2023년 3분기)
IMF 한국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전망
IMF 한국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전망

한국 경제는 내년이 더 문제다. 올해 금리를 올리지 않았으니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릴 여력도 없고 고물가와 고금리가 지속되며 내수 침체도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반도체 위주의 수출 회복에 기대를 걸고 있으나 경제 전체에 온기를 불어넣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가계부채나 부동산 PF에서 신용 경색이 일어나거나 대외 돌발 악재가 발생하면 경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지금은 근거가 빈약한 경제 성적표를 보고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 최악의 경우까지 가정한 위기 대응 방안을 수립해 내년에 덮칠지도 모를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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