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 새해 예산안 톺아보기] ③ 보건·복지·고용 예산
철지난 ‘약자복지’ 내세웠지만 자연증가 수준
올해보다 4.1% 그쳐…총예산 증가율 밑돌아
공공임대주택, 노인-청년 일자리 삭감 아쉬워
정부가 새해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유달리 강조한 분야는 ‘복지’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25일 2023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약자복지’를 화두로 제시했다. 보편복지 개념이 일반화되면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개념인 약자복지를 들고 나온 것은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려는 집착을 보이면서도 피폐한 민생을 아주 외면할 수는 없다는 정부 당국의 고충이 엿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제출한 새해 예산안을 살펴보면 보건 복지 고용 분야 예산은 226.6조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8.9조원(4.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총예산 증가율(5.2%)을 밑도는 수준이기도 하고 물가상승도 반영하지 못할 것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 5년간 평균 증가율 10.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증가율이다. 더구나 법정 자연증가분이 상승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실질적 복지예산은 오히려 감소한 수준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복지 지출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기초연금 등 공적연금사업이다. 이들 연금에 필요한 재원 규모는 노인 인구의 증가와 물가상승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2023년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5.7%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물가상승률도 5%대를 훌쩍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다.
내년 공적연금 의무증가는 8.3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여기에 물가상승을 반영한 기초연금 증가분을 더하면 복지분야 예산증가액은 연금부문 자연증가분을 충당하기에 급급한 수준이다. 따라서 내년에 사용할 복지예산의 실제가치는 줄어드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내년도 예산안에 담겨진 사업 가운데 올해보다 증액된 사업은 4,281개(83조원)이며, 감액된 사업은 3,616개(51.6조원)이다. 복지 분야에서 증액된 세부사업은 24조원, 감액된 부분은 13조원 등이다. 정부 예산당국과 여당은 증액된 부분을 미화하고, 야당은 감액된 부분을 비판한다. 양쪽을 모두 균등하게 평가해야 마땅하지만 앞에서 살핀 것처럼 증액된 부분은 대체로 법정 자연증가분이 차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복지 분야 예산 가운데 가장 비판받는 부분은 공공임대주택 예산 대폭 삭감과 노인일자리사업 예산 삭감이 꼽힌다. 공공임대주택은 주거복지 영역에서 재정이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분야이다. 올 여름 홍수 때 반지하 대형 참사를 겪은 뒤 높아진 주거복지에 대한 관심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고용 부문에서도 노인일자리사업이 소득보장적 기능과 노인들의 사회참여라는 부수적인 성격을 감안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밖에 청년 고용을 지원하는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청년채용채용특별장려금,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예산 등도 대폭 칼질을 당했다. 청년 세대의 취업난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예산 지원마저 줄이는 셈이다.
야권은 공공임대주택 등 올해보다 삭감된 복지 분야 예산을 대폭 원상복구하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정부 여당이 강한 태도로 맞서고 있어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는 최근 노인일자리사업 등 일부 수정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여야간, 예산당국과의 인식차가 상당히 커서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올해보다 증액된 복지분야는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기초연금 등 공적연금이다. 이들 3개 사업에만 10.4조원이나 된다. 그러나 이들 사업의 예산 증가는 모두 법상 의무지출이고, 노인인구 증가와 인플레이션에 따라 당연히 생기는 영역이다. 인구 증가와 물가 상승에 따라 자동으로 늘어난 것이어서 정책적 의지로 미화되기 어려운 일이다.
예산 당국이 내년 예산안에서 야심차게 내세우는 복지 증대 부문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소득이 기준중위소득을 밑도는 서민들에게 제공하는 생계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 등을 말한다. 정부는 2023년 중위소득기준을 5.47% 올려서 기초생활보장액이 증가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이미 2020년 당시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정한 수준을 그대로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 겨우 물가상승률 수준으로 인상해 놓고, 그것도 전임 정부가 정한 스케쥴대로 이행하는 정도를 놓고 공치사가 지나치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기존 일반회계에서 책정해 온 총 24개의 사업, 예산 약 1조원을 국가균형발전 특별회계로 이전했다. 지역간 차별없이 보편적으로 시행돼야 하는 사업들임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전반적으로 건전재정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복지 확대에 대한 요구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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