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 새해 예산안 톺아보기] ① '건전재정' 기조 적절한가?


세출 639조…전년 최종 예산보다 6% 줄어

의무지출 53.5%로 급증…운용 신축성 한계

취약계층 지원 등에 적극적 재정 절실한 시점

새해 예산에 대한 국회 심의가 본격 단계에 돌입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그동안 종합정책질의와 각 부처 예산에 대한 심사를 마치고 17일부터 예산안조정소위원회를 가동했다. 예산조정소위가 개별 예산 항목에 대한 증감액 심사 등 ‘피말리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예산안의 법정처리시한은 12월 2일이지만 현 정국 상황에 비추어 지켜질 수 있을 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이 때까지 국회 통과가 안되면 처음으로 '준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창간 기획의 하나로 현재 국회에서 심의되고 있는 새해 예산안을 둘러싼 주요 이슈를 주제별로 살펴볼 계획이다.

정부가 제출한 새해 예산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전체 예산 규모다. 기획재정부는 새해 예산안 발표 보도자료의 첫머리에 “따뜻한 나라, 역동적 경제, 건전한 재정”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실었다. 그러나 구호는 구호일 뿐이고 사실 여기에서 주목할 단어는 ‘건전재정’이다. 기재부 스스로 “새해 예산안은 재정기조를 ‘확장재정’에서 ‘건전재정‘으로 전환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재부의 이런 방침은 이미 지난 3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 확정해 전 부처에 전달한 ’예산안 편성지침‘에서부터 낌새가 보였다. 각 부처의 기재부에 예산요구를 할 때 기본 토대가 되는 이 지침이 지난해에는 “활력·혁신·포용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재정운용”에서 올해에는 “민생안정 공고화 등을 위해 필요한 재정 역할 수행”으로 변경됐다.

’적극적‘이 ’필요한‘으로 바뀐 것은 단순한 수사(修辭)의 변화가 아니다.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에 대한 강한 암시를 담고 있다. 내년 예산은 건전재정 기조확립을 천명하면서 역대 최대 규모인 24조원의 지출 재구조화를 했다. 그만큼의 지출을 잘라버렸다는 뜻이다. 총 지출 규모도 639조원으로 전년 본예산 대비 31조원 5.2% 증가에 그쳤다. 전년도 증가율 8.9%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더구나 올해 추경(2차례, 72조원 규모)을 통해 늘어난 최종 예산 679.5조원인 것에 비하면 오히려 40조원 6%나 줄어든 수준이다.

예산 증가율이 전년보다 낮다거나, 심지어 최종 예산 대비해서 감소됐다는 점을 강조하는 정부의 의중에 ’꼼수‘도 엿보인다. 국내 경제여건이나 해외 경기상황 등을 고려하면 내년에도 상당한 규모의 추경 예산편성이 불가피해 보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추경을 통해 예산증가가 뻔한 상황인데도 추경 가능성은 말하지 않고, 건전재정 기조를 강조하는 배경에 부자감세의 불가피성과 민생 예산의 감축을 합리화하려는 속셈이 깔려 있는 듯하다.

새해 예산안에 담겨 있는 다른 문제점은 의무지출 예산 비중이 전년도 49.9%에서 53.5%로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의무지출이란 국민기초생활보장, 4대연금 등 복지분야의 법정지출 등 법률에 따라 지출 의무와 규모가 결정되는 지출을 말한다. 전체 재정지출에서 의무지출을 뺀 나머지를 재량지출이라 한다. 2023년도 의무지출 예산안은 전년 본예산 대비 38.6조원(12.7%) 증가한 341.8조원이며, 재량지출 예산안은 전년 본예산 대비 7.2조원(2.4%) 감소한 297.3조원으로서 총지출의 46.5%를 차지하고 있다. 새해 의무지출 비중은 최근 10년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26년까지 의무지출 증가율은 연평균 7.5%로 전망돼 같은 기간 총지출 증가율 4.6%를 크게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재량지출의 여력이 줄어들면 경기침체, 재난 재해 등 국가 위기상황 때 신축적인 재정운용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새해 예산안에 담긴 재정긴축 기조에는 기재부 특히 예산 관련 공무원들의 건전재정에 대한 ’미련‘을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경제기획원과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예산 관계 공무원들에게 건정재정, 즉 ’세입 내 세출‘ 의지는 신앙 수준이었다. 문재인 정부 막바지 전 국민, 온 나라가 코로나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추경 편성 요구를 그토록 악착같이 묵살했던 것도 건전재정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재정위기와 국가간 경제 갈등이 심화하고, 특별히 코로나 발생 잉후 세계 주요 국가들은 정부 재정의 역할을 중시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 중국 등이 앞다투어 국가주의 경제를 더욱 강화하는 추세다. 이렇게 강대국들의 신보호주의와 신산업주의가 만연한 상황에서 우리만 건전재정을 강조하면서 재정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은 자칫 저성장의 늪에서 더욱 빠져 나오기 힘든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민간의 시장 경제를 활성화하면서도 재정의 적극적인 투자와 지출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보수'라는 이념 지향에 집착하기보다 실질적인 정책 효과를 추구하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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