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임명 인사들 추풍낙엽 속 고군분투

감사원, 국힘, 친윤 부위원장들에게 포위된 형국

"법률로 신분 보장된 기관장 모독…허위조작 감사"

권익위 업무 독립성 사수 위해 가열찬 반격 눈길

조직 내에서도 의지할 만한 우군 거의 없는 처지

임기 6월 27일 '고지' 얼마 안 남아…"중꺾마" 다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3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권익위 감사와 관련한 본인 입장을 직접 소명하는 '대심'에 출석하기에 앞서 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대심 제도는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거나 견해차가 큰 사안에 대해 감사받은 당사자들이 감사위원들에게 본인의 입장을 직접 소명하는 제도다. 2023.5.3. 연합뉴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3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권익위 감사와 관련한 본인 입장을 직접 소명하는 '대심'에 출석하기에 앞서 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대심 제도는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거나 견해차가 큰 사안에 대해 감사받은 당사자들이 감사위원들에게 본인의 입장을 직접 소명하는 제도다. 2023.5.3. 연합뉴스

밖으로는 감사원과 집권여당의 집요한 공격에 시달리고, 안으로는 '친윤석열' 부위원장들에게 포위된 형국.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외롭지만 끈질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장관급 및 공기업 인사들이 추풍낙엽처럼 날아가고 기존 권익위 부위원장들 역시 견디다 못해 하나둘씩 떠나간 마당에도 윤석열 정권을 상대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그는 자리 보전에만 목적을 두고 쥐 죽은 듯 지내는 게 아니라 권익위 업무의 독립성과 중립성 사수를 위해 수시로 가열찬 반격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시키는 투쟁을 지속하는 전 위원장은 임기가 6월 27일까지여서 이제 '임기 완수'라는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국민의힘 측의 사퇴 압박은 날이 갈수록 그악스러워지는 형세다. 이번엔 정책위의장까지 나섰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4일 페이스북에 '반(反)정부 정부기관장, 무슨 미련 있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감사원 감사 거부하고 감사원 앞에서 출두 쇼하는 권익위원장" 등을 거론한 뒤 "정부 기관은 전 정권 충신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숙주가 아니다. 반정부 노릇하면서 정부에 몸담는 것은 공직자 본분에 반하는 이율배반적 행위"라고 거칠게 비난했다. 또 "정부와 반대로 가면서 정부 월급 타 먹는 것은 국민 세금 도둑질"이라며 "양심에 털 난 사람들, 이제는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원색적인 표현들을 여과 없이 동원했다.

이에 전현희 위원장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국민의 세금이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쌈지돈인가?"라고 묻고 "대한민국 헌법 질서에 의해 법률로 신분과 임기가 정해져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기관장들을 모독하고, 세금 도둑이라고 폄훼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바로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고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맞받았다. 나아가 "기관장들의 명단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사퇴를 압박하는 이러한 행위야말로 법에서 금지되는 명백한 사퇴 압박 블랙리스트"라면서 "과연 이러한 일이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는 국회의원의 역할인지를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고 박대출 정책위의장을 직격했다.

이처럼 전 위원장은 윤석열 정권의 전방위적 압력에도 별 동요 없이 꿋꿋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감사원으로부터 근태와 업무 관련 감사를 받고 있는 그는 지난 3일 감사원에 직접 출석해 "이번 감사는 불법 조작 감사, 직권남용 감사"라고 직설적으로 항변했다. 전 위원장은 이날 감사원에서 진행한 '대심'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나 "(의혹을 제보한) 제보자와 (조사 과정에서 증언한) 증인이 동일하다면 이는 증거 조작에 의한 조작 감사라고 볼 수 있고, 조작 감사로 수집한 증거는 법률적인 효력이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감사위원들에게 이번 감사 과정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를 구성할 수 있고, 감사원이 언론에 피감 사실을 흘린 것은 명예훼손을 구성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3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권익위 감사와 관련한 본인 입장을 직접 소명하는 '대심'에 출석하기에 앞서 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2023.5.3. 연합뉴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3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권익위 감사와 관련한 본인 입장을 직접 소명하는 '대심'에 출석하기에 앞서 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2023.5.3. 연합뉴스

전 위원장의 감사원 출석은 오후 2시로 예정됐으나 그는 낮 12시 50분쯤 미리 도착해 '제보자를 증인으로 둔갑, 감사원 조작 감사 사죄하라!' '불법·조작 감사 피해자 권익위 직원 징계 철회하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약 7주간 이어진 자신에 대한 특별감사를 두고 "사퇴 압박용 표적 감사를 위한 허위·조작 감사라고 생각한다"며 "감사원은 비위 의혹의 증거가 나오지 않자 거의 감사를 종결하려는 시점에 제보자로 강력히 의심되는 분을 증인으로 둔갑시켜 그 내용으로 수사 요청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목청을 높였다.

대심 제도는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거나 견해차가 큰 사안에 대해 감사받은 당사자들이 감사위원들에게 본인의 입장을 직접 소명하는 제도다. 전 위원장은 지난해 8월 감사가 시작된 뒤 9개월 만에 이 대심 제도를 통해 감사위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직접 설명할 수 있었다. 대심 현장에서 전 위원장은 최재해 감사원장이 권익위 감사 결과를 심의하는 절차에서 제척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최 원장과 설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 최고 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 위원은 최 원장을 포함해 총 7명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8월부터 전 위원장의 근태와 출장비, 유권해석 업무 등을 문제 삼아 감사를 진행했다. 또 지난 2020년 9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특혜 의혹에 대한 권익위 유권해석을 발표하는 과정에 전 위원장이 부적절하게 개입했다고 보고 검찰에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를 요청했다. 현재 세종경찰청이 이 사건을 대전지검에서 이관받아 전 위원장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에 전 위원장은 최 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이 표적 감사를 했다며 직권남용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무고 등 혐의로 이들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한 상태다.

전 위원장은 지난달 4일 고발인 조사를 위해 과천에 위치한 공수처에 출석할 때도 "유례없는 정치적 감사에 철저한 수사로 경종을 울려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후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권익위원장과 방송통신위원장 등에 대한 사퇴 압박이 있었다"며 "대법원 '블랙리스트 판결' 등에 비춰보면 이는 명백한 직권 남용"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감사원은 제대로 된 사실 규명 노력 없이 제보자의 허위 증언만을 바탕으로 권익위원장을 감사하고 수사를 요청했다"면서 "법률에 임기가 보장된 장관급 기관장의 거취를 정권의 입맛에 따라 흔들고 있다"고 현 정권을 정조준했다.

국무조정실이 주도한 작년도 정부 업무평가에서 국민권익위원회가 최하 등급인 'C등급'을 받았을 때도 전 위원장은 "불공정한 평가"라고 정면 반박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월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자리에서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관련 질의를 하자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기관장이 있는 권익위, 방송통신위원회, 이 정부에서 폐지하려고 하는 여성가족부가 사실상 가장 꼴찌 등급을 받았다는 것은 의도가 있는 평가"라고 지적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26일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공공재정환수제도 운영과 부정수급 신고처리 기능 통합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4.26. 연합뉴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26일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공공재정환수제도 운영과 부정수급 신고처리 기능 통합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4.26. 연합뉴스

전 위원장에게는 권익위 내에서도 의지할 만한 우군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과거 국민고충처리위, 국가청렴위, 국무총리행정심판위 3개 기관이 합쳐진 권익위는 3명의 차관급 부위원장을 두고 있는데 전 위원장처럼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됐던 부위원장 3명이 윤석열 정부 들어 모두 물러난 상황이다.

예컨대 안성욱 전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2월 23일 사퇴하면서 "현재 조직 안팎으로 닥친 혼란과 위기는 법치와 상식이 무너진 결과"라며 "사무처장으로서 조직 업무 수행에 어려움이 있다면 임기제와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소신은 끝내 양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이례적인 이임사를 남겼다. 안 전 부위원장 임기는 원래 내년 6월까지이지만 그는 지난 2월 17일 사표를 제출했다.

이렇게 해서 권익위의 정무직 4명 가운데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는 전 위원장 한 명만 남게 됐다. 공석이 된 부위원장 자리에는 강경보수 성향으로 유명했던 김태규 전 부산지법 부장판사,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선거대책본부에서 일하다 공약집에 '오또케'라는 표현을 써 물의를 빚자 해촉됐던 검사 출신 정승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지난 대선 때 국민의힘 캠프에서 일했던 판사 출신 박종민 변호사가 윤 대통령에 의해 차례로 임명됐다.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고충처리부위원장이 25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장애인 국가유공자 활동 지원 강화방안 제도개선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2023.4.25. 연합뉴스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고충처리부위원장이 25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장애인 국가유공자 활동 지원 강화방안 제도개선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2023.4.25. 연합뉴스

특히 김태규 부위원장은 지난 1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정무직이란 그 임명 과정에서부터 철학과 가치관이 고려되는데 정반대의 가치관을 가진 구성 분자가 한 조직안에 있으면서 그 조직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면 당연히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 정부의 정무직이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정권의 재창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믿기 쉽지 않고, 현 정부의 정무직이 문재인 정부의 철학과 가치관을 추종한다면 그것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보인 선택을 배신하는 것이 된다" "현행법이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정무직 공무원은 정권이 교체되면 의당 사직하는 관행이 있었던 듯하다" "전 정부 정무직들이 용단을 해줬으면 한다" 등의 주장을 폈다.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전현희 위원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취지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김 부위원장은 현직 부장판사 시절 '사법농단 판사 탄핵'을 결의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오히려 "탄핵하자"고 요구하고,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비판하는가 하면, 대북 전단 살포 제한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등 강성 보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왔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김 부위원장이 임명됐을 때 그가 일간지에 썼던 '민주당 솔직해져라' '민주당의 불순한 검수완박' 제목의 칼럼 등을 들어 "정치적 편향성이 아주 강한 분"이라며 "정치 판사였고, 편향 판사였고, 민주당 공격 칼럼만 썼던 인물에 대한 보은 인사"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전 위원장은 연초에 권익위 직원들을 대상으로 발표한 신년사에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카타르 월드컵 국가대표팀 응원 문구처럼 남은 임기 동안 위원장으로서의 맡은 직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고립무원의 처지에서도 그가 끝까지 '중꺾마'의 심지를 지켜내 임기를 완수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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